존은 정확히 아침 7시에 눈을 떴다.
더 이상 인간의 삶에는 휴대폰으로 5분 간격씩 맞춰야 하는 알람설정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생체리듬을 간단하게 자동화 시스템으로 일괄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신체에 삽입하여 작동하게 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특권층의 AI 인공지능 사용은 더 다양해지고 용이해졌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그의 몸속에 생체 인공지능은 존의 뇌가 아침 각성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짜인 프로그램대로 분주하게 아침일과를 시작했다.
아침샤워, 개인 건강에 맞춘 영양제식사, 출근준비까지 이 모든 것은 AI 인공지능 자동화시스템 "페이드"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는 시간을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한 그들만의 특권으로 자리 잡았다.
존의 오전 일과는 꽤나 간단했다. 얼마 전 마지막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퇴직하는 자신을 대신해 일해줄 다음 팀에게 인수인계를 해주는 것이다. 존은 업무를 시작하기 위해 자신의 집 내부에 위치한 업무용 서재로 가 책상 위에 앉았다.
그리고 오른손 손바닥을 책상 위로 부드럽게 올려놓았다. 그러자 눈앞에 대형 스크린 하나가 허공에 나타났고, 그를 인식한 인공지능 스크린은 가볍게 존의 신체를 스캐닝하기 시작했다.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인공지능 스크린은 작은 타일로 줄어들더니 뿔뿔이 흩어졌고, 이내 타일들은 다시 커져 각자 공중에서 자리를 잡았다. 곧이어 사각형의 타일들에 팀원들의 얼굴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존은 오늘의 업무를 시작했다.
어느덧 존의 직장생활은 100년을 꽉 채웠다.
대부분 인간의 삶의 영역에는 AI 인공지능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업무의 피로도 지수는 높지 않지만, 존의 직업군은 AI 인공지능을 지휘하기 때문에 보통 130살이 넘어가면서 늦은 은퇴를 시작한다.
하지만 존은 이번 자신의 101번째 생일을 기념하며 빠른 은퇴를 결심했고, 그동안의 삶의 무료함과 인공지능의 피로함, 또 다른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까지 이 모든 것을 채우기 위해 귀촌여행을 계획했다.
AI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간의 삶은 여유롭고 풍요로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즐기지 못하는 몇몇의 사람들은 타락의 길과 지옥으로 빠져들어가며 생명을 잃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존은 삶의 무력감이 찾아올 때마다 더욱이 일에 집중했다. 덕분에 꽤 오랜 시간 자신의 분야에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자신에게도 스스로 이겨내지 못할 한계가 왔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존은 더 이상의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 불편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그는 은퇴를 결심하고, 다른 삶을 계획했다.
존은 땅 위를 맨발로 밟고 뛰던 까마득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때의 내가 그리워. 귀촌을 할 거야."
귀촌여행에서만큼은 유일하게 인공지능을 사용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제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말을 들은 존의 가족들과 친구들은 위험하다며 그의 귀촌여행을 만류했다.
안전하고 편리한 VR 가상 여행과 인공 시골빌리지를 두고 이 시대 현존하는 가장 위험하고 불편한 시골로 여행을 간다고 하니 붙잡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세상 편리한 인공지능을 두고 원시의 경험을 하는 게 말이 되는가. 그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존이었다.
4시간의 짧은 업무를 마친 존은 편한 복장으로 다시 갈아입은 후 또 다른 스크린 앞에 앉았다. 작은 바둑알 모양의 스피커를 귀에 꽂고 손가락으로 한번 가볍게 터치하여 VR을 작동시켰다. 그리고는 모니터 화면을 몇 번 더 터치하자 시야에는 널따란 들판이 보이는 시골 풍경이 들어왔다. 귀촌 여행을 결심하고 매일 해보는 시뮬레이션이지만 아무리 해도,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시골풍경에 빠져있던 것도 잠시 문득 현실을 직시한 존은 위험부담이 높은 귀촌여행에서의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사망 관련 보장 보험가입을 하기로 했다. 여행사에서 보험사를 추천받아 가입 후 금액을 납부까지 마친 존은 여행사 AI직원의 마지막 말을 듣고, 자신의 귀촌여행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페이드의 전원은 출발하시는 당일, 꼭 꺼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여행 보내세요!”
존은 며칠 뒤 가족, 지인들과 짧은 이별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귀촌여행을 출발하기 하루 전날, 침대에 앉아 오랜 생각에 잠겼다. 한참의 생각이 끝났는지 자신의 몸에 삽입되어 있던 인공지능 자동시스템의 전원을 완전히 꺼버렸다. 그리고 모든 준비를 마친 존은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존은 흔적조차 사라져 실종되었다.
또다시 며칠의 시간이 흘렀고, 존의 소식이 발견된 곳은 다름 아닌 인간의 소식을 전하는 또 다른 AI 인공지능 에이트가 전하는 속보뉴스에서였다.
“오늘의 속보입니다. AI인공지능 사회 전문분야인
AI복지사로 일하던 101살 존씨는 며칠 전 귀촌여행을 떠나기로 한 전날 실종되었습니다. 페이드의 시스템이 꺼져있어 5일째 이렇다 할 생활반응도 나타나지 않아 수사의 난항이 예상됩니다….…“
귀촌 여행을 떠나기로 한 존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