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지났다. 연휴에는 딸아이가 서울에서 내려왔다. 최선을 다해서 손님을 맞았다. 가족이지만, 내 배 아파서 낳았지만 엄연한 타자이다. 같이 살면 경계가 흐릿하지만 이미 주거를 분리한 지 6년이다. 아이는 그 과정을 잘 견디고 객지에서 뿌리를 내린 것 같다. 씩씩한 아이가 짠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아이가 오기 전에 이불부터 빨았다. 여름 습도에 눅눅해져 있을 터라 개운하게 세탁하고 싶었다. 여름 내내 밀린 청소도 했다. 올여름은 너무 더워서 깔끔하게 청소하지 못했다. 바닥은 찐득했고 소파 위나 선반 위는 먼지가 눅진하게 달라붙어있었다.
아이는 잘 놀다가 올라갔다. 혼자서 보내는 시간들이 녹녹지 않을 텐데 내려올 때마다 잘 영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그 마음 한편에는 설핏 허전함이 뜬다. 애쓰고 붙잡았던 무엇이 툭 끊어진 것 같다. 아이들이 성장해서 떨어져 나가면 첫 마음은 '야호'이다. 홀가분하게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러 가는데 돌아오는 발걸음은 어째 터덜터덜하다. '집에 가서 애들 이거 만들어 주고, 내일 준비물 챙기고...'가 없는 상황이 어색하고 낯설다. 오랫동안 이런 시간을 고대했다. 요가를 하고 책을 읽고 여행하는 시간을 계획했다.
아이들이 크고 자유로워지면, 바로 어딘가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이가 크는 사이에 나이가 들었다. 몸은 통증을 호소하고 머리는 짙은 안개가 깔린 듯 멍하다. 마음은 좀 깊어졌나 생각해 보면 그다지 그런 거 같지도 않다. 시선은 좁아지고 통증이 일어나면 짜증스럽고 집안일은 점점 더 미루고 싶다. 주부인지라 그런 내가 용납되지 않기도 하고 이제는 살람을 다 엎어버리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절기는 바뀌어 서늘한 바람이 분다. 아침나절 강아지 산책길에도 얇은 잠바를 걸쳤다. '여름이 가기는 가는구나!' 손톱만 한 미련도 없는 걸 보면 더위가 어지간히 힘들었나 보다. 하루도 시원한 날씨에 기분이 좋은지 걸음이 사뿐하다. 강아지들도 여름산책을 힘들어한다. 사람보다 체온이 높고 땅바닥에 붙어 걸으니 지열이 더 많이 느껴졌을 거다.
올 가을에는 '융'을 읽을 계획이고 요가 수련 주 3회도 잘 지켜보련다. 글을 좀 쌈빡하게 써 보고 싶은데... 이게 저절로 되는 일은 아니다.
그럭저럭 잘 버텨가고 있는 기념으로 오늘은 아이스아메리카노 말고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