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월 16일이다. 날은 화창하고 가볍다. 밤에는 적당히 서늘하고 낮에는 쾌청하다. 집안일하기도 좋은 날이다. 미뤄둔 청소를 하고 옷정리도 한다. 안방 침대 아래 자욱하게 깔린 먼지를 보고 저걸 어쩌나 생각하며 시작했다. 부직포로 이리저리 먼지를 긁어냈다. 부끄러운 게으름을 고백하자면 먼지는 층을 이루고 있었다. 부직포를 여러 장 쓰고 물걸레를 끼워 다시 닦아 냈다. 코가 가려웠다. 하지만 역시 일은 시작이 반이었다. 부직포 밀대가 유용하게 쓰였다.
올여름 지독한 더위는 좋은 날씨가 더없는 행복임을 깨우쳐 주었다. 걷어낸 침대 시트를 털고 빨아서 팽팽하게 널었다. 살랑이는 바람에 보송하게 말라간다.
이런 일상을 뒤흔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건 바로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다. 우리나라에 문학상이 나오다니! 깜짝 놀랐다.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아서 아는 것도 없고 노벨 문학상은 막연히 그네들 잔치라고 생각했다.
수상을 축하하며 유튜브에 동영상이 많이 나왔다. 작가의 목소리, 얼굴, 말들을 듣고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오월의 광주에서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을 느꼈다고 한다. 80년 광주 오월, 사진 속 누군가는 사람을 죽이고 누군가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줄을 길게 서서 헌혈을 했다. 아이였던 작가는 그 사진 속에서 화두를 잡은 걸까...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하고 천천히 흘렀다. 이 세상 사람이 맞나 싶었다. 바다 깊은 곳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천천히 떠올라온 딥 다이버(Deep Diver) 같았다. 깊은 바닷속으로 내려간 선수들은 기절한 채 떠오르기도 한다. 다행히 한강님은 기절하지도 좌절하지도 않은 것 같았다.
스무 살 언저리 광주비디오를 보면서 정신이 흐릿해진 순간이 있다. 꽁꽁 싸매어 놓았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나는 그날을 지나쳤다. 못 본 척했다. 어렸던 소년은, 청년시절과 중년시절과 노년을 가질 수 없는 그 아이는 지금 어디쯤 오고 있을까...
한강님은 사진을 보고 나 대신 누군가가 죽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나 대신... '
작가는 그 누구보다 '살려내라, 살려내라'라고 수천 번 쓰지 않았을까...
통증을 견디며 수압을 감내하며 바닥으로 바닥으로, 심연으로 내려간 그녀 글은 잔인함을 폭로하지도, 정의를 목소리를 높이지도, 눈물범벅도 아니었다. 그런데 가슴을 칼로 저미듯 도려낸다.
'그 어린것이... '
긴 시간 동안 그녀가 안고 있던 모순은 조개 속 진주씨앗처럼 살을 헤집고 상처를 덧나게 했지만 그 무엇을 잉태한 것 같다. 그녀 눈, 대기 속으로 퍼져 하늘을 날아 바다를 건너 세상을 안고, 소년을 안고, 나를 안아 주었다.
아이를 안고 오늘을 걸어갑니다.
'한강님, 감사하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