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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도서 서평

사탄탱고

작정하고 어렵게 쓴 소설

by 채PD
확실해.
이건 일부러 어렵게 쓴 책이야.


내가 그동안 읽은 책 중 가장 어렵게 읽은 작품이었다.

번역 탓인지, 아니면 문체의 고의적 난해함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다.

이야기의 중심이 사건보다 인물의 내면 묘사와 풍경의 세세한 기술에 맞춰져 있어서, 읽는 내내 마치 발이 푹푹 꺼지는 진흙탕 속을 걸어가는 기분이었다.

중간에 몇 번이고 읽기를 그만두려 했지만, 독서모임에서 선정해 읽게 된 책이라 끝까지 오기로 다 읽었다.

게다가.

이 소설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이 아니던가!

자연스레 '내 지적 수준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지'라는 자조 섞인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완독 후에는 어렴풋이 핑곗거리가 하나 떠올랐다.

혹시 이 책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그 자체가 작가의 의도이기 때문이 아닐까?


작정하고 어렵게 쓴 소설
"읽기의 고통, 그 자체가 메시지?"


이 작품을 읽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건 문체였다. 문장이 끝없이 이어지고, 대화와 독백, 묘사가 뒤섞여 흐른다. 피로감이 계속 쌓인다.

등장인물도 딱히 감정이입을 할만한 캐릭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인물들은 악하거나 약하거나 둘 중 하나다.

구성상에서도 극적인 반전이 있어서 눈길을 끄는 것도 아니다.

시스템이 붕괴된 농장과 그 안에서 적당히 사악하고 적당히 무기력한 사람들. 그들이 희망을 품었다가 좌절하게 되는 이야기를 무미건조하게 그려낸다.

결코 술술 읽히는 책이 아니다. 읽기 힘들다.


이 책은 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을 현실적으로 그려냈고, 그 안에서 구원과 절망이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한다는 철학적인 메시지까지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문체도 이 작품의 메시지를 담아내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피로감이 누적되고 혼돈스러운 문장들.

바로 그런 활자의 구현 자체가 작가가 그리고자 했던 세계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너진 사회와 인간의 무력함을 ‘읽기 어렵게 쓴 문장’으로 표현한 건 아니었을까.

어떤 블로거는 "작가 크러스너호르카이의 문체가 매우 독특한데, 이는 카프카와 베케트의 영향을 받은 포스트 모더니즘적 장치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도 평가했다.

음.. 해석이 더 어려운 건 기분 탓이겠지?


하여간 그의 문체와 표현이 분명 예사롭지 않은 건 사실이다.

읽으면서 독자가 느끼게 되는 피로감, 혼란, 무력감이 어쩌면 작가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감정의 장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사탄탱고]는 줄거리를 이해하는 책이 아니라, '이해 불가능한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경험'을 체험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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