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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도서 서평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모든 건 때가 있다. 특히 사랑은 더더욱

by 채PD

살아오면서 어른들에게 이런저런 많은 조언을 들었지만, 이처럼 명쾌한 말도 없다는 것을 나이를 먹어보니 알 것 같다.

그렇다. 세상사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공부도 때가 있으며, 열렬히 사랑하는 것도 때가 있으며, 효도도 마찬가지.

물론 공부를 뒤늦게 시작할 수 있으나, 중. 고등학교 시절에 열심히 한 노력의 대가를 나이 먹고 따라갈 수는 없다. 그 가치는 다르게 평가받게 된다.

불같은 연애와 사랑의 감정도 피가 끓는 젊은 시절에나 가능한 것이다. 역시 나이를 먹고 하는 사랑은 그 온도가 다르다.

효도도 마찬가지. 부모님 떠난 후에 후회해 봐야 어찌하겠는가.

어렸을 때 열심히 공부하고, 젊을 때 불같이 사랑하며,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효도해야 한다는 말이 이제는 단순한 훈계가 아니라, 인생의 리듬에 대한 통찰로 다가온다.


그 시기에 해야 할 일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그 시기가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결국 ‘때를 놓친’, 아니 ‘때가 엇갈린’ 두 남녀의 이야기다.

폴과 시몽. 14살의 나이 차를 넘어선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사회적 시선이었다. 폴은 그 시선을 이겨낼 용기가 없었다. 혹은, 시몽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까지 강렬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결국 그녀는 열정보다는 안정, 불꽃보다는 평온을 택했다.

읽는 이들 중에는 그녀의 결정을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도 많겠지만, 그녀의 선택을 이해하는 독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순간의 감정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미래가 이미 그녀의 눈앞에 보였을 테니까.

나 역시 책을 읽는 내내 한 문장이 마음속을 맴돌았다. “그래, 모든 건 때가 있지.”


사랑에도 계절이 있다
봄을 놓치면, 여름의 열기로도
그 빈자리를 메울 수 없다


이 소설은 단순한 삼각관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의 시기와 온도, 그리고 인생의 타이밍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단순한 구성 속에서도, 폴의 마지막 선택을 따라가다 보면 사랑이란 결국 시대와 나이를 초월하지만, 그만큼 시대와 나이에 묶여 있는 감정임을 깨닫게 된다.


덧붙여서.. 소설의 뒷이야기를 어떻게 상상하든 자유 아닌가.

아마도 시몽은 폴과의 기억을 간직한 채 후에 훨씬 더 아름다운 사랑을 하게 됐을 것이다.

폴은? 그냥 그냥 평범하게 살아갔을 것 같다. 그냥 그랬을 것 같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시몽이 폴에게 건넸던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혹자는 이는 사랑의 비유라고 말한다. 브람스의 음악처럼 고요하고, 깊고, 슬픈 사랑을 의미한다고 한다.

"진지한 사랑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나요?"라는 감정의 초대라는 해석도 있다. 어쨌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말은 첫 데이트 질문으로 나쁘지 않은 듯하다.

상대의 취향을 물어보는 것도 좋고, 첫 데이트로 연주회는 조금 무거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있어 보이니까. 패스~

결국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문장으로 매우 훌륭하다.


그러나 시몽의 출발은 좋았지만 과정은 아쉬웠다.

결정적으로 시몽은 너무나 헌신적이었다. 헌신적이기만 했다.

이 점은 아이러니하게도 폴에게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못했던 것 같다. 여자들은 나쁜 남자를 좋아하거든.

자신의 일보다 사랑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여자가 원하는 방향대로만 움직이고 반응하는 남자는 시시하다.


애니웨이.

여성의 심리 묘사가 무척이나 탁월하다고 평가받는 소설이다.

아울러 여자가 어떤 남자를 선택하는지에 대한 고찰까지 해볼 수 있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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