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시작하면서

진면목(眞面目)에 대한 목마름을 눈치챈 사람들을 위해

by 곤 Gon

요즘 우울증 걸린 사람 많죠? 정신건강의학과에만 가봐도 예약 환자, 신규 접수 문의가 넘쳐나는걸 볼 수 있어요. 왜 그런가 생각해봤어요. 저는 이 세상이 점점 제정신으로 살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어요. 미쳐야 그나마 이 사회가 요구하는 페르소나를 입고 살 수 있는 거죠.



우리는 각자 다른 얼굴을 하고 태어났고, 다른 얼굴로 죽을 텐데, 현대 한국 사회는 규격화되고 일정하고 측정 가능한 인적자원을 요구하니까 거기에 맞추어 살다보니 제 얼굴을 잃어버리고 사는 거죠. 인적자원이라는 말도 정말 징그럽지 않아요? 광물이나 석유 같은 일종의 무슨 에너지원처럼 ‘인간’을 자원이라고 부르는 거잖아요. 회사에서도 인사팀을 HR이라고 부르잖아요. 인간 자원. 인간을 태워서, 소비해서 무엇을 돌아가게 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인간을 연소시켜서 작게는 사기업, 크게는 국가와 사회, 체제를 유지하려는 것 아닐까요?


사회가 요구하는 가면을 쓰는 자발성과 속도도 점점 가속화되는 것 같아요. 학구열이 높은 어느 지역에서는 ‘7세 고시’라는게 있다고 해요. 좋은 사교육 기회를 쟁취하기 위해 7살 된 아이들이 치르는 시험이라고 해요. 가능한 한 우리 아이가 누구보다 빨리 먼저 사회가 요구하는 가면 중에 좋은 가면을 골라 쓰는 특권을 선취하고, 그것을 자기 얼굴로 인식하고 적응 잘하면서 살기를 바라잖아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현대만의 현상은 아닌 것 같아요. 일제 강점기 때에는 일제가 원하는 가면을 쓰고, 구한말에는 대한제국이 원하는 가면을 써야했고, 조선 때는 또 조선에서 요구하는 가면을 써야했겠죠.


우리는 언제쯤 자기 얼굴로 살 수 있는 세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되찾을 수? 그런 시대가 있었기는 할까요?



오히려 정신병자가 넘쳐나는, 그러니까 정신병 진단을 받고, 자신의 정신적, 정서적 아픔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사람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이 시대가 가장 희망적인 시대가 아닐까 생각해요. 자기 얼굴을 잃어버렸음을 인식하고 인정한 사람이 많은 시대니까요. 그러니까, 세상이 요구하는 얼굴이 아니라, 잃어버린 내 얼굴을 찾고, 되찾은 내 얼굴로 살다가 죽고 싶다고 외치는 사람이 많아진 혁명의 시대인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저처럼 우울이와 함께 살면서 우울이도 ‘내가 사랑하는 내 얼굴 중 하나구나.’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인간의 자기해방을 위한 혁명의 선구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울한 제 모습을 숨기지 않아요. 사랑하고 자랑합니다. 제가 제 우울이를 사랑해줘야하는데 오랜기간 ‘너는 내 원래 모습이 아니야.’하면서 우울이를 배척하고 혐오하고 학대했거든요.



이제부터 연재할 내용은 제가 우울이를 어떻게 만났는지, 우울이와 어떤 갈등을 겪고, 조정하고 타협하고, 수용하여 함께 존중하며 살게 되었는지, 우울이를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어떻게 시절을 낭비하고 어떤 위기를 겪고, 또 한편으론 성장했는지,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등등을 약 20화에 걸쳐서 나눠볼 생각이에요. 우울이가 다른 친구도 데려온 내용도 담아 볼 예정이에요.



얼굴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여러분, 혁명의 시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02화 부터는 '멤버십 전용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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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