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베트 Dec 12. 2020

인간세상의 관찰자 효과

구라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らしょうもん, 羅生門) 보다 

라쇼몽(らしょうもん, 羅生門)은 1950년 구로사와 아키라이 감독한 일본 영화로 1952년 아카데미 외국영화상을 수상한, 영화계의 고전이다. 


'라쇼몽'은 나라시대와 헤이안시대의 수도였던 교토의 성문 이름이다. 이 폐허가 된 성문은 영화 속에서는 비를 피하는 부랑자들이 한 살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무대로 사용된다. 시대는 대략 8세기. 


부랑자들은 산길에서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 사건에 대해 서로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부랑자들이 듣고 본 것은 서로 매우 달라서 관객들은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알 수가 없다. 


라쇼몽 효과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영화 속 네 명의 증인(혹은 피의자)들이 한 가지 살인사건에 대해 각자 다른 증언을 한 것처럼, 관측자의 관점에 따라 스토리나 관찰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고 한다. 


70년 전 만들어진 흑백영화임에도, 미장센이나 편집이 요즘 할리우드 영화와 사뭇 다름에도 불구하고 스토리텔링이 매우 흡인력있다. 더욱이 시대상황만 헤이안시대일뿐, 결국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이야기라 어느 시대 어떤 상황에도 적절하게 들어맞는다. 


영화 자체는 일차적으로 볼 때 2차대전 이후 일본국민들의 심리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인들은 국가의 명령과 지시에 복종해 열심히 일했을 뿐, 일본이라는 국가가 세계 무대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아주 좁고 왜곡된 시각을 갖고 있었던 것처럼, 영화 속 주인공들은 각자 아주 좁은 시각으로 자신이 본 것을 서술할 뿐이다. 


이는 어느날 별안간 원자폭탄을 맞은 후 전범국가의 국민이 되어버린 일본인들 심리상태의 메타포다. 라쇼몽이라는 몰락한 옛 수도의 허물어져가는 대문이 졸지에 부랑자들의 은신처가 되어버린 상황이 바로 그 메타포를 확인시킨다. 라쇼몽이라는 대문은 아마도 영화롭던, 혹은 영화롭다고 여기던 일본제국을 상징할 것이다. 


라쇼몽 속의 등장인물들이 단지 자신의 이익에 따라 뻔히 알면서도 거짓말을 했다고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많은 경우 부지불식간에 거짓말을 한다. 자신의 이익이 무언지 의식하기도 전에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기억이나 인상을 조작해버려서 본인도 본인의 관측이 옳을 거라고 굳게 믿는 경우가 아주 많다. '거짓말쟁이'들이 죽어도 사실을 실토하지 않는 건, 때로 그들이 이미 자신들의 기억을 왜곡시켜 이미 더 이상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분간할 수 없는 지경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뇌는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먼저 속이도록 설계되어있다. 전자기파의 일부를 빨강으로 보고, 대기 중의 정전기가 방전하는 소리를 듣고 공포를 느끼고, 썩은내를 맡고 죽음을 연상하는 건 모두 다 생존을 위해 뇌가 반사적으로 반응하게끔 설계됐기 때문이다.


오락성도 있고 배우들도 매력적이어서 즐겁게 보긴 봤는데, 인간의 원초적인 한계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성찰시켜주는 작품이라 약간 서글프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버지를 죽이지 못한 아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