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꽃을 보러 갔습니다. 산방산 밑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적당히 사람 없고 적당히 노란 곳이 보여 차를 세웠습니다. 꽃밭입구 앞에는 ‘꽃을 밟지 마시오’라고 쓰여있길래 벌써부터 낙화를 걱정했습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들 사이로 들어가니 노랗게 물든 유채꽃이 다분했습니다. 기분이 묘합니다. 전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전날 비바람이 불었던 탓입니다. 사람들이 걷는 나름의 길이 있었는데 꽃들이 전부 꺾여 있으니 그 길은 소용이 없어졌습니다. 실수로 밟아버리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죽어버릴까 봐 최대한 건들지 않으려고 안달이었더랬죠. 꽃은 쏴아아 소리를 내며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해를 봐야 할 꽃이 바다만 보고 있으니 얼마나 멀미가 났을까요. 사람들이 이리 만지고 저리 만져서 떨어진 꽃들 사이로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요. 나는 손으로 꽃 한 송이를 받쳐 고개를 들어줬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는 말이 있잖아요. 유채라는 게 이리 샛노랗고 부드러울 줄은 몰랐습니다. 마치 나를 쳐다보는 것도 같아서 나도 안부를 물었습니다. 부는 바람이 차갑진 않느냐고요. 떨어진 잎 하나가 보고 싶진 않냐고요.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꺼내는데 이게 웬 걸. 옷과 바지에 노란 것들이 잔뜩 묻어있습니다. 건들지 않으려고 엉기적 걷느라 꽃이 묻은 것도 몰랐습니다. 아무리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길래 그냥 두기로 했습니다. 언젠가 지워지겠죠. 시간이 지나면 스며들겠죠. 아니다. 그냥 지워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조금은, 아주 조금은 묻어있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짧게라도 그 노란 향이 그윽하게 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캐리어를 끌다가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바퀴를 보니 유채꽃 하나가 엉켜있었습니다. 유채꽃. 아. 제주는 여전하네요. 여전히 그렇게 바닷바람이든 꽃바람이든 향수바람이든 휘몰아치다가 흔적을 꼭 남겨주네요. 이건 도저히 지울 수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