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lway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min Jul 21. 2022

7월의 몇 하루

  

 수박을 좋아하지만 더운 걸 싫어하고, 바다를 좋아하지만 물을 싫어합니다. 겨울을 좋아하지만, 7월을 좋아하는데 7월의 모든 날을 좋아하지는 않고, 몇 하루를 좋아해요. 기억에 남는 '하루'가 많은 걸 좋아해서 그렇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기에 적절한 달이기도, 무엇보다 제 생일이 있는 달이기도 합니다. 생일이 올 때 즈음엔 기분이 묘합니다. 생일선물 때문은 아니고요, 그냥 생각이 듭니다. 과거의 이맘때는 어떻게 보냈을까 하고요.


 일을 하다가 배가 고파지면 이른 점심을 먹습니다. 날씨가 좋아 보여서 산책을 하고 싶은 날에는요. 밥을 빨리 먹고 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놀이터에 갑니다. 그 놀이터 앞에는 달달한 수박주스와 와인을 파는 카페가 있고, 그 옆에는 봉숭아 꽃이 바람에 사르르 떨리고 있습니다. 진하게 나는 여름 냄새에 꽃은 여름을 좋아할까 궁금해집니다. 수박주스를 사고 그늘진 벤치로 갑니다. 이 시간에는 이 벤치에만 그늘이 진다는 걸 알아 이제는 몸이 저절로 움직입니다. 앉아서 멍하니 앞을 보다가 하늘을 보고, 구름을 세다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것을 보고서는 이내 눈을 감습니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매미의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햇살이 따듯해 꾸벅 잠에 듭니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덥수룩한 수염, 검은색 선글라스와 샌들을 신은 외국인이 있습니다. 가끔 어린 손녀와 같이 있는 걸 보면 나이가 있으신 할아버지 같습니다. 저는 이곳에 올 때마다 그를 찾아요. 그가 없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거든요. 늘 같은 시간, 같은 벤치에 앉아있습니다. 그래서 늘 궁금했습니다. 왜 항상 그곳에 있는지를요. 그 자리에 있는 것이 그의 일상이라면요. 무엇을 기다리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 모습을 보면 괜히 '나에게도 저런 곳이 있을까'라고 묻게 돼요. 변하지 않는 마음이 저런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는 계절에 상관없이 우산을 가져와 그늘을 만듭니다. 햇빛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데 뒤에는 해바라기가 피고 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날이면 어딘가 들떠보입니다. 표정이 궁금해 고개를 기울어 얼굴을 보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옵니다. 아이처럼 해맑게 웃고 있어요. 사람을 참 좋아하나 봐요. 가끔은 그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날도 있습니다. 날씨가 우중충해 마음까지 울적해지는 날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놀이터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이 그 벤치입니다. 오히려 제가 그를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겨울에는 핫팩을 꽉 쥐고, 가을에는 신문을, 봄에는 책을, 여름에는 부채를 들고 있습니다. 그의 손에는 계절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계절에 맞게 기다리는 마음의 색도 바뀐다는 의미입니다.


 '칠월칠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견우와 직녀가 옥황상제에게 미움을 받아 은하수 거리만큼 떨어지게 되지만 이들을 안타까워했던 까치와 까마귀가 음력 7월 7일, 그들을 위해 오작교를 만들어줍니다. 그렇게 그들은 1년에 하루를 만나 그리움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다가 1년 뒤를 기약하며 다시 헤어지게 됩니다. 살다 보면 그렇습니다. 늘 한 자리에 있다는 것, 익숙하면서도 소중합니다. 그 마음은 감히 흉내 낼 수 없어 그렇습니다. 기다림은 아름다워요. 기다리는 동안 그리워하고, 그리워하다가 이내 만남을 하고 작별을 하는 거죠. 언젠가 만나게 될 날을 고대하며, 몸은 떨어져 있음에도 마음은 점점 진해져 가는 것이에요.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오면 그리워지겠습니다. 나의 7월은 아름다웠을까, 누군가에게 나는 아름다웠을까, 하며 여름 냄새가 은은하게 나는 7월을요.

매거진의 이전글 무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