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먼 Feb 12. 2024

40살의 병상일기


갑상선쯤은 병도 아니란다. 

쉽디 쉬운 수술이라 나도 쉽게 생각했다. 


회복까지 2주 정도면 된다고 하고, 길어야 한두 달이라고 한다. 

2주, 좋다. 

3월이면 모든 일이 바빠진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기업도 강의를 활발하게 하기 시작한다. 

이 모든 바쁨이 찾아오기 전, 2주의 휴식기를 포함해 일정을 넉넉하게 잡아두었다. 


2주면 된다고 했지만 막상 2주 2일 차에 들어온 8시간 강의를 승낙하기는 쉽지 않았다. 

책임지지 못할 위험을 감수하지 말자는 마음에 강의를 넘겨 보냈다. 

8시간의 출강이면 강사료가 적지 않다. 수입도 수입이지만 고객사와의 관계를 유지하는데 잦은 등장만큼 좋은 건 없다. 

한 번의 노는 프리랜서로 움직이는 나 같은 사람에겐 많은 각오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노를 하고 총 3주의 시간을 널찍하게 띄어놓은 스스로를 칭찬하며 여유롭게 수술대에 올랐다. 


전신마취, 오른쪽 갑상선 제거, 이런 말들은 간단하게 들렸다. 

움찍 눈물이 나는 순간도 잠깐 별 안 걱정이 밀려오는 순간도 있었지만 영화를 많이 본 탓으로 금세 돌리기 쉬웠다. 그만큼 갑상선은 위험한 수술도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하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첫 타임 수술 배정을 받고 잘 다녀오겠노라며 수술실로 갔고, 잘 다녀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겨드랑이를 통한 로봇수술, 6센티가량 절개한 겨드랑이 부위 통증은 사실 미미했다. 

어깨에서 쇄골을 타고 목으로 넘어오며 전해지는 뻐근함은 차차 나아 질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 있었다. 

목소리. 

목소리가 안 나온다. 

이틀이 지나고 삼일이 지나도 가냘픈 공기 소리만 날 뿐

알맹이 있는 힘 있는 소리란 나오지 않는다. 


주치교수님께 목소리는 괜찮은 것인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물었다. 

2주에서 6개월가량, 사람마다 다르며 돌아온다는 것. 

2주에서 6개월?

갭이 너무 크다고 생각했지만 뒷 이야기는 전혀 믿고 싶지 않아 앞에 들은 것을 꽉 붙잡았다. 2주. 2주. 그래 2주.....


그리고 주변,,, 조금이라도 정보를 알 만한 사람,,,

예를 틀면, 주변에 경험자 환자가 있는 친구나 의사인 지인들, 의사의 부모나, 의사의 친구,,, 누구든,,,

2주에서 6개월이라고 했으면 6개월쯤 생각하라는 말에 현실이 조금씩 머리에 들어왔다. 

앞에 두 글자만 붙든 건 나 혼자였다. 모두들 뒤에 숫자에 집중했다. 


목소리를 잃었다. 

아이를 불러도 뒤돌아 보지 않았고, 하고 싶은 말을 아무리 해도 상대는 집중하기 쉽지 않았다. 

나 조차도 긴 말을 이어할 힘도 없었다. 

아. 소리란 이런 거였고가. 


솔직하게 고백하면 내가 강의를 하며 좋은 평가를 받을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목소리가 정말 좋고 딕션이 분명하여 마음속에 와닿는 그런 목소리라는 평가였다. 

예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 문장을 정말 여러 번, 사실 수년간 들어왔다. 

혹자는 나에게 보이스트레이닝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런 건 못한다고 했다. 해본 적이 없다. 

트레이닝일 한 보이스도, 누굴 트레이닝시키는 법을 알지도 못한다. 

거저 주어진 것. 그래서 그냥 누려왔던 것. 

교수법 전공자로 살며 학습자 위주의 세심한 설계와 뇌를 깨우는 특별한 교수법을 오래 공부하고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목소리 빨 이었을지 모름을 이제 와서 고백한다. 

잃고 보니, 거저 가지고 있던 것이 사실 가장 큰 것이었음을 만난다. 


이제 어쩌지. 

누구의 잘못인가는 상관없다. 

일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는 관심 없다. 

방법. 

그래서 앞으로 어쩌면 되는지 그 방법만 중요하다. 

늘 그랬고, 그게 맞다고 생각된다. 회고를 통해 문제점을 분명하게 디파인 하는 이유도

나아가기 위함에 있지 않다면 다 소용없음을 안다. 

타깃을 잡기 위한 디파인이나 책임을 묻기 위한 원인조사에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는지. 그 방법만 궁금하다. 


여유를 가지라는 말에 욱욱 화가 난다. 

3월부터는 겸임교수로 나가게 되는 학교의 첫 학기가 예정되어 있고, 

이미 상반기 스케줄은 꽉 찼을 만큼 강의는 잡혀있다. 

아파서 목소리가 좋지 않다고 하면 이해 못 할 사람 없겠지만,

다시 부를 사람도 없다. 이 바닥이 그렇지 아니한가. 

사실 그것도 다 큰 문제가 아니다. 

누가 다시 불러주지 않을까 두려워해 본 적 없이 서 왔던 자리이다. 

지금 내가 정말 싫은 건, 

알맹이 없는 목소리로 혹시나 누군가 앞에서 리드해야 하는 자리에 서야 할 까봐. 

그렇게 별 볼일 없는 리더로 서야 할까 봐. 

그렇게 단 몇 명이든, 단 몇 회든 내가 만나는 학습자에게 어쩔 수 없이 좋지 않은 학습경험을 나눠주어야 하는 것이 너무 싫다. 

앞에 서기만 해도 풍기던 압도적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었다. 나는 그렇다. 

긍정적인 사고의 수치는 평균값을 훨씬 웃돌고, 늘 에너지 있게, 볼멘소리 없이 방법을 찾아가며 신나게 살았다. 

그러다 보니 그대로 그것이 나라는 사람의 에너지가 되어 몸에도 목소리에도 모두 배어 있었고

그 에너지가 바로 좌중을 압도하는 기본값이 되어 주었다. 


목소리를 잃으면서 그 모든 나의 기본값을 잃은 기분이다. 

결국 수 일 안에 다시 극복하고, 이 글을 지워버리고 싶을 기분으로 새로운 방법을 찾아 들떠 있겠지만(제발 그러길 바란다...)

지금 이 순간의 우울감을 글로나마 남겨두고 싶다. 

어쩌면 나에게 우울함이란 이토록이나 찾아보기 힘든, 만나기 어려운, 익숙하지 않은 감정인지 모르겠다. 


오늘밤이면 연휴가 끝난다. 

내일이면 나는 온갖 이비인후과, 목소리 재활원, 경험자 및 의료진에게 전화를 걸고 있겠지. 

방법을 찾고 길을 만들겠지.


내가 가지고 있던 것. 

쌓지 않았는데 내 몸에 쌓여있던 것. 

그렇다면 주어진 것, 거저 받은 것이라는 건데.

그럼 그걸 나에게 탑재시켜 둔 이유가 있을 것 아닐까...

단 며칠이라도 그것에 집중해야겠다 생각이 든다. 

에너지도 목소리도 잃은 지금,

가장 소중했던 그것이 나에게 있었던 이유를 되짚어 보아야지. 



작가의 이전글 무쓸모가 문제가 아니라 ___ 이 문제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