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X 우리가 한식] 외할머니와 사골국
겨울철 별미였던, 그 맛을 되새겨 보며 할머니를 떠올린다.
외가 쪽 식구들은 입맛이 없는 게 내력이다. 필자의 어머니 또한 빼빼 말라서
옛날 사진을 보면 안쓰러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매번 외가댁 식구들은 식사 시간이 되면 식탁 앞에서 의도치 않게 명상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입맛이 너무 없는 나머지 밥상 앞에서 모든 행동이 정지하는 모습이 보였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외할머니의 요리 솜씨가 잘난 정도가 아닌 특출 나 망정이었지, 갈 곳 잃은 어린양처럼 헤매지 않고, 감칠맛 나는 반찬이 그저 인도하는 대로 항상 밥을 맛있게 먹었다. 할머니는 그렇게 입이 짧은 사 남매를 키워냈다.
외가댁에 놀러 가면 기억나는 것이
할머니가 당신의 두툼한 손으로 요리 재료를 항상 정성껏 손질하고 계신 모습이었다.
대표적으로 겨울철엔 할머니는 사골국을 끓이시느라 연신 바빠 보였다. 사골국은 익히 백해무익하다 알려져서 영양가가 없지만, 추위가 찾아오는 겨울이면 시골집이 따뜻하지 않은 탓인지 할머니는 사골국(곰국)을 해서 나와 외가댁 식구들에게 먹였다.
큰 들통에다 피를 뺀 고기가 물렁물렁해질 정도로 푹 고았고, 뼈만 2~3번 따로 끓인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그 고운 색이 참 인상 깊었다. 쌀 씻은 물 중 처음 씻은 가장 진한 빛깔의 그것과 진배없었다.
그러한 색을 내기 위해서 사골국(곰국)을 요리하는데 인고의 시간이 든다.
충청도에서 평생을 사신 할머니는 '데 간 하다(고되다)'라는 표현을 하시곤 했다.
사골국을 끓인 후, 그 시절 나름 젊었던 할머니도 힘에 부쳐서 하시던 기억이 난다.
사골을 든 들통이 커서 어지간히 무거웠는데도 불구하고, 마당과 부엌 사이를 들락날락하시며 계속 고았다.
할머니는 낮에는 마당에서 간이 버너로, 밤에는 부엌에 들여와 전자레인지 위에 새벽 내내 끓였다.
또한 끓이는 내내 위에 생성된 기름기를 국자로 살포시 걷어야 했는데 성가시고 반복적인 행동을 늦은 밤까지 하시곤 하였다. 특히 겨울밤 부엌에 서서 허리가 아프신지 삐뚜름하게 서서 기름기를 걷어내는 모습이 안쓰럽게만 보였다.
어린 기억에도 새벽에 깨셔서 그깟 국이 뭐라고 열심히 끓이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뇌리에 남아 어제 본 것처럼 생생한 느낌이다.
물론 할머니의 표현에 의하면 ‘데 간한(?)작업’ 끝에 탄생한 깊고 진한 국물의 맛은 일품이었다.
뽀얀 국물에 파를 넣어서 먹어야, 국물 맛의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는 느낌이었다.
풀의 생사가 왔다 갔다 하는 상태, 정말 죽은 것도 아닌 생 날 것도 아닌 그 중간단계의 아삭아삭 씹히는 파 맛이 일품이기에 파는 꼭 필수로 넣어서 먹었다.
소금 간은 처음에는 안전하게 반 스푼을 넣고 그다음에도 싱겁다 싶으면 반 스푼 더 넣으면 안성맞춤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구수하고 고소하며 간도 적당히 맞는 외가댁의 겨울을 책임지는 맛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곰국은 겨울철 추위로 입맛을 잃은 외가댁을 책임지는 별미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렇게 가타부타할 말없이 가족들 모두는 곰국으로 입맛이 있든 없든 겨우내 두고두고 먹었다.
남은 여분이 있으면 냉장고에 두었다 해동해 먹어도 여전히 구수한 맛은 사라지지 않아 요긴하게 식사 때마다 챙겨 먹었다.
우리가 그리도 잘 먹는 모습을 보여주니 할머니가 그 고생을 사서 했나 싶다. 잘 먹는 손녀 모습이 보고 싶고, 많이 먹여주고 싶어 애타는 마음에 힘든 인고의 시간을 거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고생하셨던 모습이 떠올라 나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어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닐는지.
뭐 아무렴, 지금 정상 체중을 넘어 너무 건강하게 지내는 필자는 이제 그저 당신의 노고가 고마울 뿐이다.
곰국은 모전여전이라고 어머니 역시 잘 끓이시고 겨울철 우리 집 별미로 자리매김했다. 그래도 여전히 어머니의 고소함보다 할머니의 구수함이 배어 난 곰국이 그립다.
하지만 할머니는 요즘 몸이 성치 않아 그때 맛을 내기는커녕 당장 끼니를 때우시기도 힘들 테다. 장성한 손녀딸이 밥 한 끼 대접해야 하는데 아직도 할머니 손맛을 그립다고 생각하는 걸 보니 철이 한참 덜 들었다.
물론 맛도 그립지만, 그 큰 뼈가 들어 무거운 들통을 들고서도 기운이 넘쳤고,
지금 엄마의 나이보다 적었던, 그 시절의 젊은 할머니와 한 번쯤 조우해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한 것이리라
할머니의 곰국은 맛도 맛이지만 겨우내 시골에 놀러 가 지냈던 어린 시절의 나와 할머니의 추억이기도 하니 말이다.
올해에는 코로나 19 사태로 충청도에 내려가지 못하고 할머니와 전화로만 연락하는 터라 그녀가 더욱더 그립다. 남아 선호 사상 때문에 '친손자가 더 귀중하다' 말씀하시지만,
집에 혼자 있으면 30줄 들어선 필자에게 무섭지 않냐고 집으로 걱정 어린 전화가 오는 그녀가 그립다.
옛날 같았으면 다 커서 시집가서 애를 낳았을 나이인데, 마냥 애로 보이시나 보다. 내가 아이로 생각되시냐 물으시면, '그렇다' 말씀하시는 당신이 글을 쓰면서 그리워져 몇 번이고 눈물이 차올랐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할머니 또한 먼 훗날 그리워하게 될 날이 올 것을 알기에 당신의 목소리를 하루라도 더 빨리, 한 번이라도 더 듣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오늘 당신의 사골국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니 “곰국이 먹고 싶으냐? 예전 같았으면 해 줄 터인데 할미가 기력이 달려서 이젠 못해”라며 아쉬워하신다. 먹고 싶다는 오해를 살까, 괜히 아쉬운 마음을 사는 질문을 한 것은 아닐까 하다 사실대로 “글 쓸 게 있어서, 옛날 얘기 좀 써보게요.”라며 대충 둘러댔다.
항상 바쁘단 핑계는 허울 좋은 효를 실행하지 못하는 자기 방어적 기제의 변명이기에, 보고 싶다고 전화를 건 겸에 얼떨떨하게 말해보았다. 연락을 자주 하지 못해 면피하려고 용돈을 가끔 드리는 행동은 내 마음 편하게 하자고 하는 것일 거다. 할머니가 정성으로 우려낸 사골국물에 비하면 인스턴트 음식처럼 참으로 한없이 초라하고 영양가 없는 행동이기에 죄송할 뿐이다.
사골국은 그녀와 얽힌 추억 중 단편적 추억에 머물러 있지만, 당신을 기억하고자 하는 마음은 항상 그녀가 끓였던 사골 국보다 더 진하게, 더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