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직장 내 갑질로 인해 직원이 비극적인 선택을 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남의 일 같지 않아서 기사를 읽는 내내 그가 처한 상황이 대략 짐작이 되어 고인에 대한 어떠한 위로를 전달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퇴사에도 묵묵부답입니다]
기사를 읽으며 감정이입을 했던 이유는 따로 있다.
내가 회사생활을 하며 본 팀장님”들”이 겪었던 모습과 다를 바 없었으니까, 그들의 바로 위 상사의 온갖 모욕적인 처사를 견디며 그들은 “퇴사”를 암묵적으로 강요받았다.
한 직장에 2년이 되지 않는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4명의 팀장님을 떠나보내야 했다. 차라리 그들이 나에게 모질게 대했더라면. ‘너도 나쁜 놈이니까, 나간 거겠지’ 자기 합리화를 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 척 마음의 짐도 덜 수 있었을 거다.
내가 만난 팀장님들은 합리적이고 친구였으며, 때론 스승이었다. 직장 특성상 만나기 어려운 좋은 성격의 인물, 그래서 더 아쉽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상황을 지켜본 내가 방관자 같아 가슴이 답답해 견딜 수 없다.
[마른오징어를 짜도 물은 나오니까.]
같이 근무한 팀장님들은 위 상사 한 명의 온갖 괴롭힘과 폭언과 모욕을 참아가며 지내셨다. 소위 진실의 방이라고 불리는 회의실을 따로 잡고, '그'상사는 자신이 원하는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으면 상스러운 말과 행동을 일삼는 걸 개의치 않았다. 그 결과, 팀장들은 하나둘씩 일터를 떠나가기 시작했다.
그 상사는 팀장들에게 업무시간 외에 지속적으로 메신저와 전화를 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저녁 늦은 시간까지 사적인 연락망을 통해 업무 얘기로 들들 볶아 댔다. 대략적으로 듣고 보아 온 걸 종합해 봐도 인간 이하의 쓰레기였다.
‘쥐어 짜내서라도' 성과를 내야 하는 ‘그’ 상사의 직성을 만족시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초인적인 인간이 와도 못할 양의 일감을 몰아주고 끝없이 프로젝트를 벌려야 직성이 풀리는 듯 보였다. 그 덕에 집안의 가장이 줄줄이 일터를 떠나야 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떠나는 것도 네 탓이야.]
놀라운 점은 퇴사의 주된 원인을 제공한 상사는 사내에 그들이 나간 이유를 자신이 아닌 외부에서 찾아 소문을 퍼뜨리고 다닌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 타인의 감정에 공감 못하는 ‘소시오패스’였던 것.
자신의 위신과 승진을 가장 중요시 여기고 아랫사람들은 가차 없이 즈려밟는 자비 없는 행동을 하면서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것으로 보아 합리적 의심이 아닌 확신이 든다.
[퇴사자의 마지막 선물 그리고 기억]
필자는 성격이 본디 물러 터진 걸 알아 내색하지 않았다. 나 자신에게 사회에서 맺은 인연은 별개 아니라 끊임없이 세뇌하고 위로했다. 하지만, 갑질에 의해 퇴사하는 팀장님을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은 뇌리에 박혀 잊히지 않을 것 같아 착잡하다.
퇴사한 팀장님은 어느 날, 자투리 시간에 책을 읽는 나를 보며 물었다.
“책을 좋아하냐”라고 그래서 그렇다고 답해 드렸다. 그리고 팀장님은 마지막 근무 날,책 선물을 건네주셨다. 그런 분이셨다. 자신이 갑질에 의해 퇴사당하면서도 팀원들에게 선물을 주시는 태도. 그래서 더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고, 이 땅에 좋은 사람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 같아 헛헛한 기분만 든다.
그리고 주신 책을 일부러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 두었다. 그렇게 팀장님이 퇴사 한 후로 그 책을 펴보지 못했다. 그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동료를 한 명씩 떠내 보내는 기분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슬프다. 책상에 짐을 챙겨 떠나는 이를 엘리베이터 앞까지 가서 배웅하는 장면을 몇 번을 재생해야 이 지옥 같은 꿈에서 나올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