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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미세뷰 Dec 26. 2024

신혼의 크리스마스, 잔소리에 쌓인 서운함

잘 맞는 줄 알았건만, 아닐지도.

신혼 크리스마스, 웃음 뒤에 쌓인 서운함

어제 남편과 다퉜다.


크리스마스에 싸움이라니!


정리정돈에 대한 입장 차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너무 무심해서였을까.


어제는 잔소리하는 남편이 미웠다. 크리스마스인데, 좀 더 유들유들하게 넘어가면 좋을 텐데, 그는 자신의 기준과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냅다 짜증부터 낸다.


점심을 먹으러 외출했는데, 크리스마스라 그런지 어디를 가도 인산인해였다. 간신히 찾은 공영주차장은 미로처럼 비좁았다.


1 층당 겨우 다섯 대의 차를 세울 수 있을 만큼 작고,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이 같은 1차선이었다. 통로가 너무 좁아 핸들을 여러 번 돌려야 진입할 수 있었다.


남편이 이런 비상식적인 주차장 설계에 화가 난 건 이해하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난 그의 표정에 나까지 불편해졌다.


겨우 주차를 하고 걸었는데, 야트막한 비탈길이 나왔다. 우리는 침묵 속에 걷고 있었는데, 남편의 훈계가 시작됐다.


"손 빼야지! 넘어지면 어쩌려고."


공격적인 말투에 반항심이 들어 "안 밸 건데."라고 대답했다.


조심조심 걸어가던 중, 남편이 나를 신경 쓰다가 본인이 반쯤 넘어졌다. 손에 들고 있던 물 컵도 엎어졌고, 뚜껑까지 날아갔다.


자기나 잘하지.


그 이후로도 크리스마스 잔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냉장고에 오징어를 뜯어놓고 밀봉하지 않았다고 타박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 밉게 느껴졌다.


"남은 오징어가 다 상했잖아! 이렇게 뜯어진 채로 놔두면 어떻게 해?"


남편의 저음에 울림이 있는 목소리가 나를 더 위축시켰다.

순간 찔리는 마음이 들어 더 서럽게 느껴졌다.

"알겠어."라고 말하고 쌀을 씻으려는데, 이번에는 쌀 씻는 걸로 뭐라 했다.


"왜 쌀 씻은 물을 그대로 밥 하려고 하는 건데!"


이건 뭔 시비인가 싶어서 무시하려 했지만, 남편은 가시 돋친 말투로 계속했다.


"이때까지 밥 이렇게 해왔어?"


억울한 마음에 부랴부랴 설명했다.
"쌀은 보통 물에 두 번 씻고, 정수기 물로 마지막으로 씻어서 밥을 했어."


그제야 남편은 자기가 착각했다며 "알았어." 하고 넘어갔다. 진짜 꿀밤이라도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잘못한 건 죽을죄처럼 몰아붙이면서, 자기 실수는 그냥 "아님 말고"로 치부해 버리는 태도라니.


엄마와 외할머니가 "꼴 보기 싫다"라는 말을 가끔 하곤 했는데, 그 말의 뜻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요즘 남편이 장염에 걸려 내가 밥을 책임지고 있었으니, 그냥 "네가 해라." 하는 마음으로 부엌을 나가고 싶었다. 한 번 욱하면 분을 참지 못하고 씩씩대는 남편과 한 공간에 있는 게 더 불편했기 때문이다.


화룡점정은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오자마자 벌어졌다.


"왜 소분한 쌀 뚜껑을 제대로 안 맞춰 닫았어?"


그의 얼굴이 붉어져 씩씩거리는 모습에 대꾸하는 것도 싫어 내 서재로 도망쳤다.


나는 전업주부가 아니다. 남편과 똑같이 회사 다니고, 퇴근 후 밥도 준비한다. 냉장고를 세세히 정리할 시간 같은 건 없다. 그런데 굳이 크리스마스에 냉장고를 뒤져가며 잘못을 지적하는 남편이 얄밉고 서러웠다. 자기 기준에 맞지 않는 상황에 화를 내는 그의 태도가 답답했다.


결혼 후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 웃음 대신 다툼과 미움만 남았다.


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결혼한 걸까?


MBTI를 보면 우리 둘 다 J로 나오지만, 나는 사회화된 J다.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 정리정돈과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게 미덕이라 배워 실천할 뿐, 사실은 P의 성향이 강하다. '일은 최소한으로 하자'가 내 원칙이다. 하지만 남편은 다르다. '할 땐 제대로 하고, 끝까지 마무리하자'라는 타입이다.


그래서 내 잘못이 더 상대적으로 커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서운한 마음은 감출 길이 없다. 순간적으로 욱하는 그의 모습은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결혼이 이렇게 험난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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