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톰 크루즈에겐 낭만이 있다
많은 사람들을 추억 속으로 빠뜨렸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다들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응답하라> 세 번째 시리즈였던 <응답하라 1988>에서는 주인공 '덕선이'와 친구들이 항상 '택이' 방에 모여 비디오로 영화를 보곤 했었죠. 그들이 봤던 영화 중에서는 80년대 말 최고의 히트작 중 하나인 <탑건>도 있었습니다. <탑건>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톰 크루즈를 그야말로 초대형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어준 작품이었죠. 그런 <탑건>이 무려 36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시리즈 2편 <탑건: 매버릭>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자신을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해 주었던 작품에 다시 출연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탑건: 매버릭>은 톰 크루즈에게도 의미가 남다른 작품일 것입니다.
극 중에서 '탑건'은 나날이 발전해가는 무기들과는 반대로 조종사들의 공중전 기술은 떨어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생도들을 엘리트 파일럿으로 양성하는 학교로 명성을 떨치는 곳이었습니다. 그렇게 1편으로부터 어느덧 36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그때보다도 더 뛰어난 기술을 가진 무기들이 등장했죠. 대표적으로 무인 전투기가 있습니다. 이번 <탑건: 매버릭>은 시작부터 무인 전투기 개발로 인해 신형 극초음속기 다크스타 프로젝트가 지원을 받지 못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스스로의 능력으로 마하 10이라는 엄청난 음속에 도달하는 '매버릭'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게 되는 우라늄 원자로를 파괴하는 임무 또한 GPS 교란으로 인해 무인 전투기는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매버릭'이 임무에 투입하게 될 '탑건' 졸업생들을 교육하게 되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눈에 띄게 발전해가는 과학 기술 속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파일럿들의 가치를 보여주고 있고 인물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파일럿으로서의 자부심은 전투기 조종사에 대한 낭만을 관객들에게 선사합니다.
사실 이번 <탑건: 매버릭>은 1편과 상당히 유사한 이야기 구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프닝부터 특유의 테마곡이 울려 퍼지며 항공모함에서 전투기들이 이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전작의 오프닝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거나 다름없고 중반부는 탑건에서의 훈련 과정, 그리고 후반부는 임무를 수행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까지 전작과 거의 차이가 없죠. 하지만 <탑건: 매버릭>은 그저 단순히 1편의 영광을 등에 업은 채 1편을 답습하려 하지 않고 '매버릭'과 '구스'의 아들 '루스터'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작의 감정선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도 새로운 구도를 그려내고 있죠. 여기에 다양한 개성을 가진 새로운 캐릭터들도 등장하는데 사람은 많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보니 이들 하나하나의 존재감이 뚜렷했다고 보긴 어려웠지만 톰 크루즈의 존재감만으로도 이들의 부족함을 다 커버하기엔 충분해 보였습니다.
수십 년 만에 나온 속편인만큼 전작과의 긴밀한 연결고리를 찾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1편에서 이름만 아주 잠깐 언급되었던 '페니 벤자민'이 1편에서 켈리 맥길리스가 연기한 '찰리'를 대신해 이번 속편의 여주인공 자리를 꿰찼고 '매버릭'의 라이벌이었던 '아이스맨' 발 킬머가 등장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전율이 흘렀죠. 물론 후두암을 앓고 있어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그의 모습은 참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 반전 비행 장면 등 전작을 오마주한 장면들도 있었고 마일즈 텔러가 연기한 '루스터'가 술집에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1편에서 '구스'가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장면과 오버랩되며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만들기도 하죠.
하지만 결국 관객들이 가장 기대했던 것은 당연히 쾌감 넘치는 전투기 액션씬일 것입니다. 톰 크루즈가 직접 전투기를 몰며 찍었던 액션씬들은 올드팬들은 물론이고 이번에 처음 <탑건>을 접한 사람들도 모두 만족할 수 있을 만큼 무척이나 화려하고 멋있었습니다. 위아래 할 것 없이 자유자재로 방향을 전환하며 전투기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스피디한 편집을 통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담아내고 있고 조종석 내부에 카메라를 달고 촬영함으로써 마치 관객들도 캐릭터들과 함께 전투기를 타고 있는 듯한 체감을 느끼게 해주고 있죠. 우렁찬 전투기 사운드도 이에 한 몫했고요. 클라이맥스에 펼쳐지는 액션들은 그야말로 한 순간도 눈을 떼기 힘들 만큼 스케일과 액션의 구성 등 모든 것이 훌륭했고 결정적인 순간에 '매버릭'이 '루스터'와 함께 이젠 고물이나 다름없는 F-14 전투기를 조종하는 장면은 자연스레 1편에서 함께 F-14 전투기를 몰던 '매버릭'과 '구스'를 떠올리게 하며 큰 감동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재밌게 봤던 영화 속 주인공이 세월이 흘러 다시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순간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작년 연말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보면서 많이 느꼈죠. 이번 <탑건: 매버릭>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 시절 <탑건>을 사랑했던 소년, 소녀가 이젠 엄마, 아빠가 되어 자식과 함께 이 영화를 본다면 그 자체로 너무나 뭉클할 것 같네요.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톰 크루즈가 있었기 때문이겠죠. 톰 크루즈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우리에게 있어 낭만 그 자체인 배우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