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곽기린 Apr 01. 2023

월급 150만원 이야기

모든 게 어리숙했던 어린 날의 기억

150


숫자로 설명하기 좋아하는 한국에서 '150'이라는 숫자는 키로도 몸무게로도 월급으로도 모든 것에 빗대어도 평균과는 아득히 벗어나는 숫자이다. 즉 우리 주변에 충분히 있는 이야기지만 쉽게 들어보지는 못했고 그 누구도 쉽게 말하기 힘든 이야기이라는 뜻이다. 이 글을 통해 그 평균에 벗어나는 삶을 경험했던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보고자 한다.


월급 150만 원, 20년 전 이야기를 하고 있냐고 생각하겠지만 불과 3년 전에 내가 받았던 월급이며 지금 어딘가에서도 누군가는 받고 있을 숫자다.


적지 않은 시간,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일하며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을 받아왔던 나로서는 그때의 그 감정, 기분이 지금도 선명하기 때문에 월급 150만 원의 무게를 알고 있다.


3년 전, 그때가 훨씬 지난 지금 용기 내어 이 이야기를 적어 내리는 이유 역시 위와 같다. 그때의 나로서는 도저히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그 이야기를 풀어내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인생의 기승전결 중 '승'의 단계를 가기 전에는 묵혀두리라고 다짐했고, 기승전결의 '승'의 단계의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지금, 살며시 이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본의 아닌 3년 전 통장 노출..




왜 그 돈 받고 일해?


사실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예나 지금이나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있는 명확한 답변을 낼 수 없다. 아니 어떤 누구라도 평범한 사람에게 월급 150만 받고 일주일 내내 야근하며 일하라고 한다고 네네 하며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일 것이다.


그렇다. 나는 그때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었나 보다.


특별히 불우하지 않은 학창생활, 두 부모님 사이의 아낌없는 금전적인 지원으로 겪어보지 않은 돈 문제, 2남 중 장남. 그나마 내가 가정의 의무를 져야 하다는 생각이 들어야 했다면 장남이라는 점? 이력으로 보면 평범하 그지없는 내 배경에 나는 뭐가 그리 조급해서 젊었던 그 시간을 150만 원짜리 인생을 자처하며 그 고생을 했을까?


생각해 보면 겉으로는 멀쩡했던 그때의 나는 속에서부터 완전히 뭉그러져 있었다.




변변히 끊어진 내 어릴 적 기억 조각들 속에는 항상 깨진 그릇 조각만이 선명하게 보인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부부싸움을 자주 했다. 서로를 향한 날이 선 고함소리, 와장창 깨지는 그릇 소리, 그 소리가 무서워 두 손으로 귀를 막아도 그 소리는 여전히 들려왔다. 오가는 그 소리 속에서 어린 시절의 나는 언제나 무기력했다.  


그때부터인가보다. 내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언제나 불안을 느껴온 건.


자립


내 유아기, 청소년기는 그렇게 평범한 삶 속 언제나 드리워진 불안 속에서 이어졌고 나는 그런 순간마다 언제나 자립이라는 단어를 열망해 왔다.


- 용돈을 받았음에도 내가 20살이 되자마자 알바를 시작한 이유

- 돈을 벌 기회(인턴쉽, 대학교 프로그램)가 생기면 닦달같이 했던 이유

- 어린 나이에 맞지 않게 돈을 아끼는 삶을 살아온 이유


모든 이유가 무력함에서 나오는 무서움에 대한 공포가 어린 시절부터 내재되어 왔기 때문에, 그 무서움을 누구보다 느껴왔기 때문에 혹자는 일찍 철이 들었다고 여겼지만 내 딴에는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다. 물론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일 뿐 나도 남들과 마찬가지도 부모님의 사랑과 아낌없는 금전적 지원을 받으며 살아왔다. 이게 내게 하나하나 부담이 되었을지언정 없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 무력함에 대한 공포에서 오는 불안감은 단지 불안감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것은 언제나 내 자존감을 갉아먹었고 이 낮아질 대로 낮아진 내 자존감은 대학 졸업 무렵 취업 시장에서 어마어마한 작용을 하게 된다.


25살 초겨울, 겨울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정해지지 않은 불안한 미래에 떨고 있는 나의 마음을 더욱 떨리게 만들 무렵, 지금도 그러하듯 뉴스와 매스컴에서는 역대급 차가운 고용시장이라는 헤드라인을 연달아 뽑아내고 있었고, 어렸던 나는 그 소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시기, 이 보잘 거 없는 나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