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150만원 짜리 인생으로 만든 한 통의 전화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
어렸을 적 나에게는 우스꽝스러운 버릇이 있었다.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을 들으면 자동적으로 울음을 터트리는 버릇. 이런 반응을 보이는 내가 귀여웠는지 엄마는 종종 내게 같은 장난을 쳤고 이 말을 들은 나는 여지없이 울음을 터트렸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나도 내가 왜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눈물이 터져 나왔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몸집이 커진 지금 비로소 그때 내 마음을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다.
언제나 버려질 수 있다는 공포
엄마의 장난 섞인 말은 내게 아마 이렇게 다가왔을 것이다. 이 사실에 그 당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울음으로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이지. 실제로 내가 울음을 터트릴 때마다 장난이라고 해주셨으니까.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울음을 터트리는 방법 밖에 없었다.
25살의 쓸쓸한 겨울, 몇 번의 면접 낙방 경험을 통해 이미 자존감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 버린 내게도 그 당시에는 그 방법밖에는 없었다고 생각했었나보다.
000님 이력서보고 연락드리는데
혹시 면접 가능하실까요?
어떤 곳도 불러주지 않는 나를 먼저 불러주는 곳이 있다니 아직 사회에 나가지도 않은 대학생 신분이었던 나는 감히 어떤 의심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내가 적어둔 이력서의 자기소개서가 담당자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당연히도 나의 대답은 '네. 언제 보러 가면 될까요?'
그렇게 도착한 면접 장소는 고개를 저 위로 올려다보아야 꼭대기가 보이는 높은 빌딩이었다.
17층 면접 장소로 들어선 나는 열중해서 컴퓨터를 응시하며 타이핑을 치는 사람들, 고객과 열띤 전화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 당시의 나에게 그 모습들은 각자 맡은 일에 대한 열정으로 보였으며 솔직히 말해서 나 역시 그 열정 속에 같이 몸 담고 싶은 마음이 가득 들었다.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져 버린 자존감, 사회초년생, 어린 나이의 치기 어린 열의.
그렇다. 나는 그들에게 가장 적합한 인재였던 것이다.
그 당시 면접에서 내가 설명받은 업무는 기본급 150의 인센티브로 다달 월급을 올릴 수 있는 영업직, 아시는 사람들을 알겠지만 일종의 다단계와 비슷한 구조로 구성된 이 회사는 다수의 사람들의 최저 시급이하의 기본급으로 계약해 그 사이에서 막대한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었다.
사회에 아직 적응 못한 초년생들이 그들의 주 타겟으로 일반 근로 계약과 달리 프리랜서로 계약해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게 만들어 젊은 인력을 헐값에 주고 사용하는 그런 사람들.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눈치채고 그 자리에 가지도 않을뿐더러 만약 간다고 해도 운 나쁜 날였다고 치부하고 다시는 먼저 오는 입사 연락은 받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업만 잘한다면 200~300까지도 금방 올릴 수 있다는 있다는 그들의 입발린 말과 실제로 그렇게 행하고 있는 열의에 찬 사람들을 방금까지 눈으로 직접 본 나. 그리고 그 당시의 나의 상황에 다른 선택지는 없을 거라 착각했다.
'아직 어리니까 이상하다고 생각되면 나가야지'
앞선 전화 한 통과 이 안일한 생각은 이후 커다란 나비효과가 되어 내 20대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