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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선 Oct 08. 2021

'순수미술'과'미술교육'을 비교하며 보라는 로웬펠드

아홉 번째 편지(To. Viktor Lowenfeld)

2021년 10월 7일

경의선 책거리에서


친애하는 로웬펠드 님,


오늘은 레고 브릭의 역사를 찾아봤습니다. 로웬펠드 님이 1947년에 책을 쓰시며 작업할 때 플라스틱 레고가 탄생했더군요. 원래는 덴마크 목수에 의해 나무 모듈로 딸깍 소리를 내며 끼워지는 레고 형태였다가 공장이 전소하면서 플라스틱 레고로 생산라인을 바꿨다고 합니다. 옛날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시작 지점을 살펴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군요. 로웬펠드 님은 제가 대화를 나누는 사람 중 가장 옛날 사람이거든요. 

요즘은 이 레고 기술이 너무 발전해서 성을 짓고, 군함을 만들고... 상상 이상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레고 박스에 있는 그림과 설명서대로만 만들려는 아이들이 많아졌다는데 저는 그게 조금 아쉽습니다. 설명서대로 만드는 것도 물론 좋습니다. 그런데 너무 똑같이만 만들려고 한다더군요. 한번 똑같이 만든 다음에는 레고를 다 섞어서 다른 방식으로도 표현해 보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요. 메타인지라는 것이 화두 던데 메타인지는 레고를 훌러덩 다 섞고 다시 만들 때 이루어지는 것인데 더 말해본들 무엇에 쓰겠습니까? 아참, 우리 집은 똑같이를 잘 못 만들어요. 이것도 문제라면 문제겠군요.


<의자와 낙서> 레고와 조형원리


순수미술(FINE ART)과 미술교육(ART EDUCATION)을 비교하며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미술교육을 조금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이야기 일 수 있어요. 드로잉 워크숍을 진행할 때 순수미술 즉 파인아트의 개념을 물어보면 "그냥 되게 멋진 작품" "비싼 그림" "엄청 큰 그림" "뭔지 알 수 없는 추상화" "유화 그림, 고흐 그림"등으로 답을 합니다. 고도로 훈련된 예술가 또는 미술을 좋아하고 미술을 오랫동안 접한 옆사람의 작업과 선을 처음 그어보는 자신의 그림을 비교하는 것은 순수 미술가와 일반인을 비교하는 것과 같은 것인데 말이죠. 큐레이터로 일을 하면서 느꼈던 이러한 고민들은 의외로 육아를 하면서 답을 찾을 수 있었죠.  아이들을 기르면서 생활 속 예술 즐기는 습관 노하우가 길러졌고, 비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다양한 방법론을 연구한 책이 <의자와 낙서> 이거든요.  자녀에게 실험해 본 결과 아직은 두 자녀에게 효과가 있긴 해요. 비교에서 자유롭기도 하고 자신만의 표현법을 지키고 있으니까요. 사실 그 방법론이라 함이 대단한 것이 전혀 아니었어요. 위 사진을 보면 집에 장난감 레고 같은 것이 많잖아요. 레고 자체가 비싸기도 하고 또 있는 그대로의 모듈이 아름답더라고요. 그런 것을 보기 좋게 만들어오면 조금 확대 해석하면서 칭찬도 하고 대화를 나누는 거죠. '대화와 존중' 그 자체가 미술교육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미술의 대전제는 시각커뮤니케이션 아니던가요. 저는 요즘 청소년들과 이런 대화를 많이 나누고 싶다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예술에 대해 진짜배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기는 초등학교 고학년과 청소년 시기 같아요. 그런데 그런 기회가 주어지기 어려운 현실이지만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거든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예술에 대한 진지한 문답 시간이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봅니다. 머릿속에 비워지는 공간이 있으면 채워지는 것도 쉽잖아요. 예술은 머릿속을 비우게 할 수 있는 멋진 장르인데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요.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겠죠?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 뒷부분부터 먼저 문답을 시작하겠습니다. 앞부분 아동발달단계는 제가 가진 이미지들을 많이 사용할 예정이라 조금 더 연구를 하면서 쓰려고 합니다. 


제11 장 조형요소와 원리


로웬펠드 답: 


레고 이야기 모처럼 재미있게 봤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조형요소와 원리, 즉 미적 준거는 포괄적인 창의적 발달과 분리시켜 논의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특정한 욕구에 따라 발달하며 교육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개별적인 작품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생각합니다. 특히 이것을 하나의 주제로 하여 작품과 분리시켜 이론적으로 지도하면 그 준거는 직관적인 충동을 도와주기보다는 방해하는 죽은 지식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또 조형이 개인적인 욕구로부터 비롯된 것이고 또 학생 스스로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표현하도록 도와주는 하나의 수단이라면 이것은 학생보다는 오히려 교사에게 더 중요한 것입니다. 조형의 의미를 배워야 하는 사람은 교사이지 학생이 아닙니다. 교사가 학생을 지도하기 위해서 작품을 이애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조형요소의 원리 


로웬펠드 답: 


순수미술과 미술교육에 대한 기본 철학 사이의 차이점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순수미술은 창작된 작품 그 자체에 더 관련되어 있는 반면에, 미술교육은 주로 미술과정이 개인에게 미치는 효과를 다루고 있습니다. 즉 순수미술에 있어서 미적 성장은 일반적으로 조형요소 그 자체의 조화로운 구성에 관련되어 있으며 미술교육은 그런 조형요소의 훌륭하고 통합된 조화로운 구성이 개인의 발달에 미치는 효과에 관심을 기울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미적 성장은 잘 조직된 사고, 감정, 지각과 그것에 의한 표현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사용된 매체를 통하여 이런 용어나 공간, 톤, 선, 형, 색, 동세 또는 이런 요소들의 결합인 구성의 표현으로 여러 미술 형태를 다르고 있습니다.  미적 성장은 기준에 외형적인 것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인 것입니다.


1) 선


우리가 하나의 선을 그으면 그것은 하나의 창조입니다. 그것은 매우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창조라고 할 수 있어요. 그 선이 대담할 수도, 검은색일 수도, 직선일 수도 있고, 어떤 특정한 점에서 시작하고 끝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모든 것을 통하여 선의 특성이 결정되죠. 


우리는 서로 관련 도니 다양한 선들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논의하지 않고서는 단순하게 선 그 자체의 의미만을 살펴보는 것은 개인의 삶을 결정하는 상호의존적인 인간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애인과 직접 관련되는 사실만을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흔들선 문:

저는 좀 뒤늦게 272P 선에 대한 부분을 자세히 읽었습니다. 진작 이 파트를 자세히 연구했더라면 <흔들리는 선> 책을 만들 때 좀 끌어다 썼겠다는 아쉬움이 다 남았답니다. 선생님이 쓰신 선 파트는 한 편의 시 같습니다.

다시 언급해 주세요.


로웬펠드 답:


이 부분을 쓸 때는 내 문장에 취하듯 써 내려갔습니다. 논지도 잃어버릴 만큼 선을 상상해버렸죠. 그런데 그게 제가 말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다시 적어보겠습니다.


선(Line)


그 선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아이가 그린 것처럼 어디에서 끝낼지 몰라 희미하거나, 부드럽거나, 떨리거나, 불명확한 것일 수도 있다.


그 선이 어떻게 도착했는지도 모르게 갑작스럽게 어떤 장소에 놓였을 때, 흔히 보이는 헤매는 듯한 선일 수도 있다.

혹은 많은 부분들의 구성으로서 단계적으로 정신적 이미지에 도달하는 선의 종합적인 스케치일 수도 있다.

깊이 생각하여 주의 깊게 구성한 지적인 선일 수도, 조용한 바다의 잔잔할 물결처럼 모든 것이 고요하고 조심스러우면서도 단호하게 그려진 침착한 선일 수도 있다. 


그 선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매우 흥분하게 되었을 때 감정의 기복에 따라 변하여 동작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흥분한 선일 수도 있고, 감정의 변화에 따라 직관적이고 무의식적으로 그려진 느낌에 의한 선일 수도 있다. 혹든 두 지역으로 나누기 위해 어떤 표시를 하려는 건축가처럼 마음속의 실질적인 목적에 의해 그려진 선일 수도 있으며 마이너스 기호처럼 그것의 기능이나 의미만을 생각하여 반복을 통해 일반적인 타당성에 도달한 상징 기호로 생각될 수도 있다. 얼굴에 화장을 진하게 한 허영심이 많은 숙녀의 글씨로도 그녀의 성격을 알 수 있듯이, 연필로부터 그어지는 선에서 그 성격을 알 수 있다.  문장에 단지 몇 개의 짧은 선들을 덧붙여 생각의 연속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 선은 둘 또는 그 이상의 단절된 선의 연속일 수도 있다. 또는 밑줄을 그어야 할 만큼 중요하다 생각되었던 것이나 중요한 전화를 기다리면서 한 낙서처럼 완전히 무의식적으로 그려진 선일 수도 있다. 그리고 디자인할 때처럼 선 사이의 간격을 주의깊에 측정하여 하나의 선을 또 하나의 다른 선에 평행하게 놓음으로써 리듬을 강조하려는 선일 수도 있다. 결국 전반적인 접근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대담한 엇갈림의 선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개인과 그의 작품을 보다 잘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선의 몇 가지 특징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관련된 다양한 선들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논의하지 않고서는 작품에서 선의 의미를 바르게 정의할 수 없다. 


"여러 번 끊겼다가 결국에는 일정한 점에서 만나는 두 개의 긴 선들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가 다시 만나는 두 친구와도 같다."


흔들선 답:

하루 종일 생각날 것만 같은 '선'과 '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존경과 진심을 담아,

흔들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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