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유년에.
“아빠를 너무 미워하지 말아요. 본인이 아빠를 많이 닮았어. “
지난겨울이었다. 서울을 떠날 나의 미래를 상담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사주 선생님은 이 한마디로 나를 울렸다. 이렇게 훅 들어오시다니. 재미로 보는 거라며 사주에 의지하지는 말아야지 싶지만 가끔 보는 사주 선생님들은 이렇게 허를 찌르시기도 한다.
‘아빠를 이해할수록 스스로를 잘 이해할 수 있다’라는 조언. 나는 다른 나의 인생 얘기는 제쳐두고 이상하게 이 말이 계속 맴돌았다. 남아있었다. 예전에 오디오 클립에서 은유 작가님이 전한 말이 떠올랐다.
“‘무수히 많은 말들 중에 나가지 않는 것’을 떠올려 보세요. 그건 분명 자신에게 풀어야 할 문제일 거예요.”
한동안 나의 단점과 장점을 스스로 생각할 때면 아빠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내가 그의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한참을 미워했던 그 행동들을 조금은 이해하기 시작한 순간, 잘잘못과 가치판단을 떠나 내가 닮은 그 마음을 추측해버렸다. 어느새부턴가 나는 아빠에게 인정을 구하기 위해 잘난 모습을 과장하지 않았다. 그저 아빠의 젊음을 떠올리며 어린 아빠와 대결을 하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내가 더 멋져. 더 어른스럽게. 그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아. 후회하지 않는 멋진 선택을 할 거야.’ 여전히 스물일곱의 아이다.
내가 아는 우리 아빠는 엄격하시고 자신감이 넘치셔서 호탕하면서도 위태롭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기도 하는 듯하다. 내가 아는 그의 장점은 그런 리더십과 자신감이고 그건 때로 대책 없는 자신감과 이기심 같아 보이기도 한다.
내가 아는 나의 가장 큰 단점은 사람과 인정을 너무 좋아해서 대책 없이 퍼주거나 일을 벌이는 것인데 나는 언젠가부터 우리 아빠한테 나의 모습을 본다. 우리는 꽤나 겉멋과 허세가 있다. 그것도 가득히. 허세 가득한 아빠의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그가 말하지 않는 것들을 상상해보다 이내 두려워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