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린 마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빈 Sep 27. 2022

생동하는 초록 / 김보희 화백

생의 찬미 (2)


 “나랑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내 그림을 좋아해 주면 그게 제일 행복하죠. 그래서 제가 더 자연을 그리고 구상을 하는지도 몰라요. 추상을 할 수도 있지만 추상에서 더 많은 사람이 느끼는 것보다 금방 봐서 알 수 있는 그림.” - 김보희



구상화는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자연. 얼마나 잘 담아낼 수 있을까 지레 겁먹기 쉬운 대상이다. 하지만 기교 없는 시간과 시선의 아름다움의 경지 앞에서 역시 중요한 건 본질이라는, 인생을 관통하는 교훈을 생각한다.


나는 언젠가부터 본질(本質)에 집착하리만큼 이 단어를 좋아하고 있는데, 국어사전 정의로는 아래와 같다.

1.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

2. 사물이나 현상을 성립시키는 근본적인 성질.

3. 실존에 상대되는 말로, 어떤 존재에 관해 ‘그 무엇’이라고 정의될 수 있는 성질.


집착의 시작은 진로선택이었다. 직업이 나의 본질일 줄 알던 시절,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국어시간에는 억양을 조절해 낭독하는 것을 좋아했고, 체육시간에는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를 즐겼다. 미술시간에는 물감과 마음이 하나 된 듯 몰입했다. 사회시간에는 개인의 행동을 다양한 관점으로 분석하기를 좋아했다. 수학과 과학에는 영 재능이 없었으나 그마저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정말 모든 것이 되고 싶었다. 아나운서, 운동선수, 작가, 사회 선생님, 경찰, 한복 디자이너... 그 많은 꿈 중에 운명으로 정해진 최적의 직업을 가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될 수 없고 세상이 직업을 정해주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상 고민해야 할 것이 넘쳤다. 나는 뭘까, 무엇을 가장 잘하고 어떤 걸 할 때 행복할까. 성공은 뭘까. 그런 귀엽고 중요한 것들. 지금도 고민하는 것들이지만 기준을 모르는 어린 학생은 부모님의 염원과 소망 같은 영향을 받기가 제법 쉽다. 갈림길에서는 늘 현실이 가장 중요했다. 가까운 미래가 보이는 길, 돈을 잘 벌 수 있는 길, 주변을 실망시키지 않을 길, 그래서 그나마 불행해지지 않을 것 같은 길.


그렇게 본질을 생각하느라 무겁게 압도되었던 학생은 길지 않은 몇 년의 시간에 살며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는 샤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을 몸으로 이해한다. 새로 발생하는 어떤 상황들에서 모르던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인데, 궁핍, 풍요, 사랑, 외로움, 분노, 슬픔, 속박, 독립, 여행, 책임의 상황에서.


차가움

이기심

이성

현실성

독립성

강한 추진력

독기

집중력

      따뜻함

      이타심

      감성

      상상력

      사회성

      부드러움

      친근함

      활동성


이 모든 것들은 장점이 되기도 했고 단점이 되기도 했다.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사람은 모든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에 관해 무엇으로 정의하고 어떻게 매일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가야 할까. 우리는 실존하는 이상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그것은 우리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아무리 고민해봐도 명사로 긴 삶을 채우기는 부족하고 어려웠다. 나는 나의 본질이자 지향으로 형용사를 선택하기로 다짐했다.


 ‘생동하는’


생기 있게 사는 사람. 그건 내가 들었던 최고의 칭찬, 놓치기도 했던 이루기 어려운 상태. 생기 있게 살기 위해선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과 주변에 대한 사랑의 시선이 있어야 한다. 세상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물질적 기반이 있어야 하고, 맡겨진 일들 외에도 부지런히 나를 위해 움직일 체력이 있어야 한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과거로부터의 후회에서 나와 현재를 온전히 살아야 한다. 나의 영원한 꿈. 이루기 위한 목록.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기

키우는 식물을 잘 관찰하고 제때 물 주기

하루에 잠깐이라도 땀을 흘리는 운동

자기 전에 인센스와 향초를 피우며 쓰는 일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안부를 묻기.



그렇게 생동하는 것들이 좋다고 생각하며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으로 김보희 화백의 그림을 보다 여기까지 왔다. 평범한 소재로 생동하기가 쉽지 않다고 여기는 나의 생각과 다름없이 그의 그림은 수많은 시간 쌓이고 지속된 노력이 스며있다.

   

“나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린다. 내 생활을 숨기지 않고 정직하게 드러내는 곳이 그림이니까. 내게 예술은 삶 그 자체다. 처음 긋는 선이 삐뚤삐뚤해도 버리지 않고 어떻게든 바로 세우고 다시 살린다. 그러는 동안은 힘들고 속상해도, 좌절하지 않는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그려 작품이 되게끔 만든다.”
- 김보희 , 아트인컬처 인터뷰 발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