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그 해 우리는 /최우식, 김다미>
웅 : 진짜 아빠가... 놀린 게 맞지
그렇게 어린 애한테 여기 누워서
저기 꼭대기 층까지 세어보라 했으니까
숫자도 잘 몰라가지고
하나 둘, 하나 둘만 세다가 일어났던 것 같애
그랬더니 아빠가 없었어. 아빠가.
연수 : 웅아
웅 : 웃기지
그렇게 버리는 게 어딨어
'그 해 우리는' 11화 에필로그 장면을 보는데 마음이 먹먹했다. 이내 눈물을 토해내듯 울었다. 나는 왜 이렇게 이 장면에 마음이 아팠을까. 그림자는 나의 기억의 어느 저편에 가려져있다가 생각지도 못한 순간 성큼하고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며 존재를 알린다. 내가 잊고 지냈던 '버려진 기억'의 날카로운 파편들이 나의 심장을 콕콕 찔러대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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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살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내 기억속 단칸방에 살던 그 시절 엄마가 나를 두고 집을 나간 적이 있었다. 가끔 찾아와 끼니를 챙겨주던 엄마의 동네 친구인 아주머니가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허기진 마음은 둘째 치고 허기진 뱃속을 따듯하고 채워줬으니까. 시간이 흐르고 엄마는 다시 돌아왔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아빠가 집을 떠났다. 어느날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대학교 등록금은 아빠가 내줄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아빠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으며 또 하염없이 아빠를 기다렸다. 그런데 어느날 낯선 아주머니가 전화와서 말했다. 너네 아빠 다른 여자랑 살고 있으니 찾지 말라고.
어린시절 나는 엄마, 아빠의 가출에 이유를 알리가 없었다.
웅: 네가 나한테 이유를 안 알려주면
난 내 모든 것을 싫어할 수 밖에 없다고
버려지는게 당연한 사람이 된다고, 내가
버려진 이유를 알지 못한 나는 내 자신을 사랑할 수가 없었다. 내 잘못도 아닌데 왜 모든게 내 잘못이라 여겼을까. 왜 모든 화살을 나에게 돌렸을까. 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에 대해 무력함을 느꼈을까.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 중에 버려진 기억은 나를 사랑하기 힘들도록 했다. 관계에 있어서도 의존적일 수 밖에 없었고, 거절하는 것을 잘 못했다. 지금 와서 돌아오면 나는 버려질까봐, 남겨질까봐 두려웠나보다.
객지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집에 돌아와 책을 읽으면서 터져나오는 울음을 감당할 수 없던 시간이 있었다. 내 마음속 서랍 깊숙이 넣어놓은 '아버지'라는 단어는 이렇게 불쑥 잔잔한 내 마음에 커다란 돌덩이를 던졌다. 어린 시절 버려진 기억은 뼛속 깊은 곳에 자리 잡아 구름이 낀 어느 흐린날이나 찬 바람 부는 어느 계절에 시리 듯 아팠다.
드라마 속 웅이에게 '건물' 이나 '나무'는 항상 그자리에서 변하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다른 어떤 것도 그리지 않는 웅이의 내면아이는 어쩌면 여전히 버려진 그 빌딩앞에 머물러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연수가 자신을 버렸을때 그토록 힘들었나보다. 웅이의 내면아이는 건물과 나무를 그리며 자신을 버리고 간 사람들을 하염없이 기다렸던 것 같다. 마치 구조 신호를 보내 듯 그림을 그리며 말이다.
앞으로 웅이와 연수의 관계가 얼마나 더 깊어질지, 웅이의 그림이 과연 어떤 변화가 나타날 것인지 마지막 두 편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마음속에 평생 품고 있는 '미해결 과제'를 잘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고싶고, 또 응원하게 된다.
만약 내가 드라마 작가가 된다면 이런 작품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