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더하기 빼기
트럼펫을 불고 싶어 하는 소년이 있습니다. 이 소년은 재즈클럽에서 비상계단에 앉아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를 들으며 상상 속에서 자신만의 트럼펫을 연주합니다. 간혹 연주자들의 연주 모습을 볼 때도 있습니다. 소년(벤)은 재즈 클럽의 주변을 맴돌며 트럼펫 연주에 대한 꿈을 꿉니다.
피아노를 치고 있음에도 나의 귀는 옆 방에서 들려오는 바이올린 소리를 따라가고 있었다. 지금이야 바이올린 정도는 방과 후 특강, 문화센터 등 손쉽게 접할 수 있지만 내 어릴 적 보통의 아이들은 동네에 있는 피아노 학원만이 유일하게 악기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끝날 무렵, 분명히 우리 학원에서는 피아노만 가르쳐 주는데 낯선 언니가 와서는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다. 그 언니가 누구인지 궁금하기보다는 공연장 멀리서 희미하게 바라봤던 그 악기가 내 눈앞에 있다는 사실만이 내 눈과 귀를 사로잡을 뿐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보는 그 언니를 그렇게 몰래 훔쳐보게 되었다.
바이올린이 자꾸만 눈 앞에 아른거린다. 나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자식들 공부시킬 때는 빚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실 엄마지만, 딸 셋 피아노 시키는 것만으로도 벅차 보이는 엄마에게 차마 바이올린을 가르쳐 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온 마음을 다해 간절하게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요? 어느 날 벤에게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소망하던 트럼펫을 재즈클럽의 트럼펫 연주자에게 선물로 받게 되지요..
바이올린을 연모하기 시작한 지 일 년이 지났을까? 선생님께서 엄마한테 전화를 넣으신 모양이다.
내게 몇 가지를 물으신 엄마는 좀 생각해 보자는 말씀을 남기셨다. 그 뒤 거짓말처럼 내 앞에 바이올린이 나타났다. 산타할아버지에게 소원을 빌면 원하는 것이 나타나는 줄 알았던 어린아이 마냥 마법처럼 나타난 바이올린을 품 안에서 애지중지했던 일이 생각났다.
살면서 온 마음을 다해 간절하게 바란 일이 있을지 생각해봤다. 기억을 더듬어봐도 초등학교 시절 그렇게 갖고 싶었고, 배우고 싶었던 바이올린이 내 손에 쥐어졌던 일 말고는 별다른 에피소드가 생각나질 않는다. 갖고 싶은 건 크게 기다리지 않고 손에 넣고 살았던 것 같기도 하고, 바라는 모습은 그냥 주어진대로 수동적으로 행하며 살아왔기에 그냥 밋밋하게 지내 온 걸 지도 모르겠다.
지금에 와서 내가 간절하게 바라는 건 무엇일까?
사회의 정의를 위한다거나 인류애를 실천하고 싶다거나 뭐 좀 근사한 생각이 떠올랐으면 좋겠는데 너무나 현실적으로 지금 보다 돈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고,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동안 건강하셨으면 좋겠고, 아이가 뭐든 잘했으면 좋겠고.... 지극히 속물적인 바람만이 먼저 떠오른다.
"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무언가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때문이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게 이 땅에서 자네가 맡은 임무라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 나오는 구절이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20대 때는 앞의 구절만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20년을 세월을 훌쩍 살아낸 중년에 와서
꽂히는 문장은 뒷 문장이다.
"그것을 실현하게 하는 게 이 땅에서 자네가 맡은 임무라네."
살아보니 그렇더라. 기적 같은 행운도 내가 열심히 했을 때 일어나는 것이었다. 말로만 원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 내가 원하는 지극히 속물적인 개인적인 바람도 이루어지고 싶으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 누구와의 비교도 말고 내가 간절하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오늘도 묵묵하게 한걸음 내디뎌 본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악기를 꺼냈다. 원했던 걸 오래 못 시켜 줬다는 것이 마음 한 구석에 오랫동안 남아 있었던 엄마는 대학 입학 선물로 새 바이올린을 사 주셨다. 나와 함께 한지 20년도 넘은 악기.
어린날의 간절했던 소망처럼 다시 간절한 마음을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