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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바비앙 Jul 05. 2021

내 자식이 먼저라서 미안합니다.

일상의 더하기 빼기



“무슨 말을 하든지 상상일 거야.”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딸아이의 나지막한 이야기를 용케 알아들은 나는 무슨 일인지 놓칠세라 아는 척을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극구 숨기는 아이가 수상했다. 평소의 나라면 몇 번 묻다가 답답함에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그날은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스멀스멀 올라오는 짜증을 억누르며 최대한 친절한 모드로 아이에게 대답을 유도했다.


“ 태권도에  OO 언니가 있는데 언니 손목에 상처가 있는 거야. 그래서 다쳤냐고 물어봤거든.

아니라고 하더니 수업 끝나고 언니가 나를 불렀어. 사실은 요즘 마음이 힘들어서 죽고 싶대. 그래서

손목에다가…….”


여기까지 듣는데 소름이 돋았다. 도대체 그런 이야기를 왜 동생한테 하는지, 하필이면 왜 우리 아이한테 했는지 혼란스러웠다. 아이 앞에서 호들갑을 떨면 안 될 것 같아 별일 아닌 것처럼 행동해야 했다.


“ 사춘기가 최고에  달한 그 나이 언니, 오빠들은 순간순간 마음이  변해. 그래서 마음에 없는 말도 막 할 수 있는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별일 없을 거야.”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이야기를 아이에게 털어놓고는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음료수를 사줬단다.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고 했다는데 음료수까지 받아먹어 놓고 비밀을 발설해서 언니한테 미안하다는 아이는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했다.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싶다가도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요즘 아이들이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금방이라도 큰일이 날 것 같았다. 토요일에 언니가 만나자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고 했다. 아이의 말에 급기야 당분간 태권도를 쉬자는 말을 건넸다. 같이 붙어 있으면서 어떤 말을 할지, 그 아이의 우울한 감정을 우리 아이가 받아주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한시라도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아이를 건져 내야 할 것만 같았다. 안 그래도 요즘 부쩍 피곤해해서 좀 쉬게 하고 싶었는데 운동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아이라 망설이고 있던 참이었다. 아이가 받았다는 한통의 문자 메시지는 내게  강력한 실행력을 발휘하도록 만들었다. 거센 반발을 하는 아이에게  나의 걱정스러운 염려를 솔직하게 전달해야 했다.


"엄마는 우리 딸이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게 싫어. 누구보다도 밝고 건강하게 키우려고 애쓰고 있는데  밖에서 우울 가득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다고 생각하면 엄마는 엄청 속상해. 그 언니 피하라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당분간 쉬자." 싫다고 고집을 피우던 아이도 이내 수긍했다.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선선한 가을에 다시 가자는 말로 일단락 지었다. 그동안 언니의 감정도 제자리로 돌아와 있을 거라는 알지도 못하는 말을 주저리주저리 떠벌리고 있는 내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비겁해 보인다.



급한 불은 껐다고 생각했는데 무언가 찝찝함이 밀려왔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 네 새끼기만 보호하면 그만이 냐, 그래 놓고도 네가 아이들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겠냐’는 질책이 들러붙은 껌딱지 마냥 끊어지질 않았다. 며칠 전 힘들다고 스스로 목숨을 져 버린 고3 학생의 뉴스가 뇌리에 스친다. 만에 하나 나쁜 일이 생기면 알고도 모른 척 한 어른, 제 자식만 귀하다고 여기는 이기적인 부모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섣불리 판단하고 행동하기도 어렵다. 아이의 말만 듣고 확대해석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괜스레 호들갑 떨어서 멀쩡한 아이를 불량 청소년으로 몰아가는 건 아닌지... 별의별 생각이 들지만 일단은 내 자식부터 단속하는 게 맞겠다 싶은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선생님께는 적당히 다른 이유를 둘러대고 당분간 운동을 쉬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아이한테 혹시 언니한테 문자가 왔냐고 물어봤다. 혹시 언니가 연락 와서 왜 안 오냐고 물으면 당분간 쉰다고 하라며 일러두었다. 언니가 진짜 나쁜 생각을 하면 어떡하냐는 아이의 말에 태권도 선생님께 언니 좀 잘 살펴보시라고 말씀드리겠노라며 안심을 시켜놨다.


확대해석이라고 해도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 자식만 다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은 갖다 버려야 할 타임이다. 모르면 몰랐지 알고서는  도저히 그냥 있지 못하겠다. 오지랖이라고 혹여나 그 집 엄마한테 욕을 먹더라도 말이다. 찝찝한 기분을 떨쳐 버릴 수 없었던 건 아마도 모른 척 내 집안 단속만 하려고 했던 나의 비겁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아이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동생한테 그런 말을 했을까' 싶은 마음을 먼저 읽어주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하다. 혹여나 내 자식한테 나쁜 영향을 끼칠까 두려워 방어태세부터 앞세운 못난 에미라고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내일은 모르는 척 찾아가 그아이 손에 과자라도 한 봉지 쥐어주고 와야겠다.



2021.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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