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더하기 빼기
친청 엄마는 음식을 잘하신다. 밖에서 먹어 본 음식이 입맛에 맞다 싶으시면 집에 와서 곧장 실습에 들어간다. 덕분에 우리 자매는 어릴 적부터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많이 먹을 수 있었다. 자식이 잘 먹는 모습을 보면 흐뭇한 지라 그 맛에 더 잘해 주셨는지도 모르겠다.
음식으로써의 엄마의 자식 사랑은 우리 세 자매가 결혼을 하고 각자 가정을 꾸렸음에도 변함이 없다.
엄마 옆에 바짝 붙어사는 나는 언제나 엄마의 완성된 맛깔난 반찬과 더불어 손이 가는 식재료까지 아낌없이 받아먹고 있다.
지난번, 가끔 애용하는 먹거리 공동구매 몰에서 데워 먹기만 하면 되는 ‘감자탕’이 팔길래 쟁여 두었다.
사 먹는 음식이 그렇듯 맛은 좋을지 모르나 재료의 2% 부족함을 느낄 때가 많다. 완제품 레토르트 식품의 재료가 얼마나 풍성할까 싶어 엄마에게 SOS를 쳤다.
“엄마 시래기 삶아 놓은 거 있어?”
있을지 없을지 반신반의했지만 역시 보물창고 안엔 적재적소에 쓰일 재료가 출동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역시 ‘엄마의 냉동고는 보물창고다’라며 내심 흡족해했다.
전문점 못지않은 완제품 감자탕에 엄마의 시래기가 합체되어 풍성한 식탁을 이루었다. 넉넉한 양의 음식은 배를 가득 채우고도 조금 남아 다음날 나의 점심 한 끼는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매번 밥을 먹으면서 다음 끼니를 걱정하는 주부에게 맛있게 먹은 음식을 내일 한번 더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찬거리에 대한 큰 걱정을 덜어주는 일이기에 그 기쁨은 두배가 된다.
다음날 출근하기 전 ( 오후에 출근을 하기에 집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나간다.) 여유롭게 냉장고에서 냄비를 꺼내 가스불 위에 올려놓고 방금 막 한 새 밥을 한 공기 떠 놓았다. 좋아하는 감자탕의 시래기를 한번 더 먹을 생각에 입에는 군침이 돈다. 드디어 바글바글 끓은 탕을 냄비 채 놓고 한 젓가락 집어 올린
시래기를 후후 불며 입속으로 가져간 순간.
“어! 맛이 왜 이러지? 상했나?”
사실, 간밤에 남은 걸 냉장고에 넣어둔다는 게 깜빡하고 잠들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냄비가 가스레인지 위에 얌전하게 있는 걸 보며 부랴부랴 냉장고에 넣었다. ‘설마 상하진 않았겠지?’ 싶었던 우려가 현실이 되어버렸다. 못 먹을 정도는 아니고 어제와 다른 뭔가 미심쩍은 맛은 잠시 갈등을 하게 만들었다.
“엄마가 애써 만들어 둔 귀한 건데 버리면 아깝지, 못 먹을 정도는 아니니까 먹자. 아니지 먹고 괜히 탈 나면 고생이니 그냥 버리자.”
시래기가 뭐라고 (사실상 국물과 시래기뿐 인 감자탕) 이 고민을 하는 게 우습기도 했지만 버리려니 자꾸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뭐든 있으면 자식들 주려고 주섬주섬 챙겨 놓으시고, 수고스러운 식재료 준비도 마다하지 않으신다. 다 하고 나선 늘 여기저기 삭신이 쑤신다고 하시기에 그만하시라고 말려도 그때뿐이다. 그걸 아니까 엄마가 주시는 건 뭐라도 남김없이 먹으려고 한다.
오늘따라 이걸 버리면 엄마의 음식을 영영 못 먹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마 건너 건너 아는 지인의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가니 종종 친구 부모님들의 부고 소식을 듣는다. 마치 내 일인 양 그렇게 슬플 수가 없다. 양가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두 떠나고 안 계시니 다음 차례는 ‘이제 부모님 인가?’ 싶은 게 아직은 아니라고 고개를 젓지만 문득 그 생각이 나면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먹기로 결심했다. 그냥 시래기가 아니라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 가득 담긴 것이다. 이 정도 이상한 걸로 버린다면 엄마의 한없는 사랑을 모르는 배은망덕한 딸년이 되는 것 같았다. 아무렇지 않게 냄비를 탈탈 털었다. 먹다 보니 이상하단 생각도 들지 않는다. 역시 생각하기 나름이라며 뒷정리를 했다.
오늘도 엄마의 사랑을 먹고, 일터로 향한다. 이 나이에 엄마 반찬을 매일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고 감사다. 물론 배탈도 나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그냥 시래기가 아니라 사랑을 먹었으니까…
2022. 10.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