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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탄 Aug 19. 2022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단 하나의 마블 시네마

영웅의 방패 너머의 고독한 인간


마블의 기세가 주춤해진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물론 최근에야 <어벤져스> 5, 6편의 제작이 공식화되었지만, 이전까지 풀어낸 수많은 이야기들을 한곳에 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전에도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가 많았지만  안에서도 하나의 종결점을 준비하고 있다는 연계성이 팬들을 붙잡았다. 흥행보증수표였던 인피니티 사가와 홈스파 3부작까지 갈무리된 지금, 대책 없이 몸만 불려간다는 느낌이 점차 강해진다는 점에서, 마블 스스로도 고민이 깊어 보인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마블 스튜디오의 모든 작품을 빠짐없이 챙겨보던 나도 지금은 심드렁해졌다. 새 작품이 나올 때마다 이젠 기대 반 걱정 반이다. 그만큼 극장에서 울려퍼지는 마블 스튜디오의 팡파레에 순수하게 흥분했던 옛날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 디즈니 플러스의 오리지널 시리즈가 아니라, 하나의 영웅을 필두로 한 거대한 스케일의 영화를 극장에서 마주했을 때의 즐거움 말이다. 물론 영화를 볼 땐 다른 영화들과의 연결점을 찾기 위해 덕후로서 부던히 애를 썼었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더라도 영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던 적이 많다. 그리고 그 중에서는 흥분을 넘어 감탄스럽기까지 했던 작품이 있었다. 나에게 그 감탄을 처음으로 불러일으킨 것은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다.


이 영화가 얼마나 질적으로 훌륭하고, 수많은 MCU 영화들 중에서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갖고 있는지는 이미 수 년 동안 많은 마블 팬들이 입이 닳도록 칭찬해 왔다. 슈퍼 솔저의 능력을 극대화한 맨몸 액션, MCU 내에서 손꼽히게 어두운 스토리, 개인의 자유가 시스템에 잠식당한 시대에 영웅의 역할과 정의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까지. 하지만 이제야 이 영화에 대한 나만의 감상을 얘기하자면 이 영화가 MCU에서 질적으로 가장 우수하고, 개인적으로도 애착이 많이 가는 이유는 주인공의 내면 심리 상황에 대해 그 어떤 마블 영화보다 진중하게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블 히어로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준 그 <아이언맨>보다도 말이다.

 


인피니티 사가의 핵심이었던 세 영웅 중 아이언맨의 심리적 정체성이 '과거에 대한 속죄', 토르의 경우 '상실을 통한 성장'이었다면, 캡틴 아메리카의 정체성은 한 마디로 '이방인의 고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캡틴 아메리카 트릴로지 중에서 그것을 가장 잘 표현한 영화가 바로 <윈터 솔져>다. 물론 캡틴은 전작 <퍼스트 어벤져>에서부터 병약한 몸과 올곧은 성격 때문에 협소한 인간관계를 자랑하는 인물이었지만, 이 작품에서 그가 맞닥뜨린 고독은 전작 이상이다. 사람들은 그를 전설의 영웅이라 추앙하지만, 실상 그는 말 그대로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시공간적인 괴리감부터가 그렇다. <어벤져스>에서 콜슨의 말대로 캡틴은 내외적으로 철저히 올드스쿨형 영웅이다. 굳건하고 정의롭고 올곧지만, 농담과 거짓말을 과하게 못하고, 잘생긴 외모와 달리 썸은 고사하고 여자 대할 때 눈치도 없어 보인다. 영화 외적인 부분이긴 하지만 '캡틴 아메리카'라는 히어로 네임도 사실 서양권에서 군인이나 보수파, '고지식한 꼰대'를 은근히 비꼬는 의미로 쓰인 지 오래 됐다. 이런 세상에서 캡틴의 심리적 위치를 표현하는 데 있어 '박물관'이라는 공간적 소재는 더없이 적절하다. 그의 영웅적인 전과를 기리는 동시에, 세상이 그를 철저히 '과거의 영웅'이라고 한정짓게 되는 것이니까.

 

게다가 요즘 문화 파악한답시고 그가 수첩에 적어둔 것은 달 탐사, 베를린 장벽 붕괴, 스타워즈, 록키, 너바나 등, 그 면면이 사회에 큰 영향력을 주었을망정 2010년대라는 작중 시점과는 갭이 큰 옛날의 문화 현상들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무엇보다 현실에 일정 부분 타협해야 하는 현대인들의 심리와 캡틴은 이미 현실을 받아들이는 속도에서부터 상당한 거리감이 있다.

  


반면 그의 상대였던 히드라는 어떤가. 스티브가 기피하는 그 타협을 무기삼아 철저히 현대적인 체계로 탈바꿈했다. 냉전기의 공포로 선악의 경계가 모호해진 틈을 파고들어 '안전을 위한 통제'를 명목삼아 국가의 핵심 안보 조직을 장악해버렸다. 2차 대전 시절처럼 세계정복이라는 최종 목표는 변함없지만, 수괴인 알렉산더 피어스를 통해 '적성 세력을 사전에 감지, 제거하여 안전과 평화를 이룩한다'는 뒤틀렸을지언정 제 나름의 현실적인 신념까지 탑재하게 되었다. 전체주의가 안보의 탈을 쓰고 부활한 것이다.


이는 과거 911 테러 이후의 미국의 전방위적인 대외 강경책에 그림자 정부 음모론을 절묘하게 결합한 결과뿐만이 아니다. 영화의 개봉년도인 2014년으로부터 불과 1년 전, 오바마 대통령은 사실상 미국판 테러방지법이라 할 만한 '애국자법(Patriot Act)'을 연장하는 데 서명했으며 에드워드 스노든은 NSA의 국민 사찰을 까발렸다. 영화의 설정은 이전까지의, 그리고 이후에 나온 모든 마블 영화 중에서도 손꼽힐 만큼 현실적이고 정치적이었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의 계승작인 <팔콘과 윈터 솔져>에서도 인종차별과 참전용사 대우 등 여러 사회문제들을 가져왔지만 정작 영화의 빌런은 이런 주제와 동떨어져 있어 잘 설득이 되지 않았다. 반면 이 작품의 안전을 위한 감시와 통제라는 질문은 단순하면서도 광범위하고, 알고리즘과 헬리케리어, 세뇌된 암살병기 윈터 솔져라는 시각적 설정들을 통해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렇게 복잡해진 세상에서는 스마트폰도 잘 쓰지 않는 캡틴 특유의 구식 마인드가 오히려 빛을 발하게 된다. 현대 기술력의 첨단을 달리는 헬리캐리어의 한복판에 박물관의 구식 전투복을 입고 뛰어드는 위의 명장면은 시공간적 괴리를 상징함과 동시에 그가 직전 한 연설처럼 '나 혼자만 남더라도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바로잡겠다'는 무언의 외침이다. 잘못된 것이 쉴드, 나아가 미국 그 자체라 하더라도 말이다. 일대일 맨몸 격투장면 말고도 <윈터 솔져>에는 캡틴 아메리카의 다양한 액션을 일부러 멀리서 부감으로 잡는 장면이 많다. 작은 인간에 불과한 그가 잘못된 체제에 있는 힘껏 반작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심산이다.


사실 미국 내외적으로 패권주의의 상징 취급을 받은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캡틴 아메리카는 수많은 시리즈를 거쳐 가며 코믹스 속에서도 많은 변화를 거친 캐릭터다. 미국과 히어로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우려하며 필요할 경우 미국 그 자체와 싸워 원래대로 돌려놓겠다는 꼿꼿한 신념의 소유자였다. 이것을 독선이라 비판할 수도 있지만 그런 비판이 적은 이유는 그가 그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정의로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영화는 스파이물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인지 몰라도 다른 MCU 영화들에 비해 상당히 무겁고 비장한 느낌의 음악들을 쓴다. 엔딩 크레딧의 메인 테마곡인 'Taking a Stand'는 직역하면 '입장을 취하다'라는 뜻인데, 어떤 상황에서도 굳건히 서 있는(Stand) 캡틴의 자세를 중의적으로 잘 표현한 어구다. 영화 전반에서 스티브가 느꼈을 국가에 대한 좌절과 개인의 고독,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무너뜨리지 않도록 끝까지 맞서 싸우는 인간찬가마저 느껴지는 음악이다.

 

또 영화의 주제를 흑백과 적색만으로 간결하게 표현한 크레딧은, 요즘의 화려한 마블 엔딩 크레딧에 비해 그 자체로 감상의 의미가 있는 시각예술이다. 사실 엔딩 크레딧만 따져 봐도 윈터 솔져에 비빌 수 있는 MCU 영화는 없다.


 

하지만 도덕이고 프로젝트 인사이트고 나발이고, 사실 이 상황 속에서 영웅이자 아이콘인 '캡틴 아메리카'가 아닌 인간 '스티브 로저스'의 문제는 따로 있다. 쉴드가 하이드라였다는 심각한 사안에 가려진, 보다 내밀한 문제, 그것은 우리 현대인이 으레 가질 법한 인간관계의 단절로 인한 고독이다. 물론 그 강도는 역시나 비교가 불가하지만 말이다.

 

자신이 데이트 약속을 지키지 못해 70년간 헤어졌던 여인 페기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병실에 누운 채 기억을 잃어가고, 그 죄책감 때문에 자신은 새로운 인연도 쉽사리 만들지 못한 채 정체되어 있다. 그나마 자신의 적성에 맞는 군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임무를 주었던 조직과 함께했던 동료들은 사실 불구대천의 적이었고, 고달픈 시절부터 자신과 함께한 유일한 버팀목이자 전장에서 등을 맡겼던 친구는 적에게 세뇌당해 살인기계나 다름없는 암살자가 되었다. 영웅은 고독한 법이라지만, 여기서 누굴 어떻게 더 만나고 사귀라는 것인가.

 

이런 극단의 심리적 핀치 속에서도 끝까지 보편 정의를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으로 남은 동료들을 신뢰하는 정신력이야말로 캡틴 아메리카만이 가진 진정한 초인간성이다(물론 이 역시 슈퍼 솔저 혈청의 영향력이 있겠지만). 내면적으로 가장 비현실적인 부분이라 관객의 공감대가 벗어날 수도 있는 위험한 지점인 것이다. 그래서 루소 형제는 그를 고지식한 영웅으로 받아들이던 동료들이 점차 스티브를 인간적으로 대하도록 하며, 이전까지 차근차근 만들어둔 고독감의 서사는 버키와의 일대일 격투로 폭발시킨다. 결말에서 캡틴의 헬멧을 벗어던진 스티브의 모습은 현실의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절박한 인간의 얼굴이다.



결국 '난 너와 끝까지 함께할 거야'라는 대사는, 단순히 버키에게 옛 기억을 일깨워 준다거나 친구를 소중히 생각하는 의로운 마음에서 나온 것뿐만이 아니다. 점점 혼자가 되어가는 삶에서 한때 자신과 세상의 유일한 연결점이었던 친구를 다시 만나, 고독에서 헤어나오고자 몸부림쳤던 인간 스티브 로저스의 내면을 훌륭하게 표현한 명대사인 것이다.


옳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고독함이 수반되고, 그에 굴하지 않고 옳은 일을 행하려는 것 자체만으로 인간은 숭고해질 수 있다. 그것이 캡틴 아메리카의 정신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더 나아가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대를 잃지 않으려는 스티브의 절실함 또한 숭고하다고 말하고 있다. 버키가 스티브에게 가지는 의미가 어느 정도인지는, 버키를 지키려다 범죄자가 되어버린 후속작인 <시빌 워>에서 잘 드러난다. 그렇다. 팬들이 농담 삼아 브로맨스 영화라 지칭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인피니티 사가의 종착점인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도 마찬가지다. 타노스의 군대 앞에서도 방패를 질끈 묶고 홀로 나선 캡틴의 모습은 불의에 굴하지 않는 태도 그 자체로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후 수많은 영웅들이 포탈을 통해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감격에 젖는 캡틴의 모습은 반가움과 동시에 그가 이들을 진심으로 자신의 친구와 동료라 생각하게 되었음을, 그리고 그들을 잃어버렸던 고독과 죄책감에서 다소 해방되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기다리는 여자는 아직 마음 속에 남아 있다.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으나 전 우주를 지킨 영웅으로 죽은 아이언맨을 보고, 그는 이전의 캡틴이라면 할 수 없었던 선택을 한다. 시대의 이방인이자 영웅으로서의 삶을 내려놓고, 사랑했던 여인에게 돌아가 춤을 추는 평범한 남자가 되기를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종결한다. 이 얼마나 멋진 이야기인가.



루소 형제가 나처럼 캡틴 빠돌이라서 팬들에게도 마블에게도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캡틴이 가진 영웅의 고결함 속에 숨겨진 인간의 외로움을 알고 있었다. <인피니티 워>에서 범죄자로 낙인 찍힌 그가 텁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기차역에서 등장했을 때 전율이 일었던 것도, <엔드게임>에서 그가 묠니르를 들어올리는 순간 모두가 환호할 수 있었던 것도, 수많은 내로라하는 히어로들 사이에서도 중심이자 상징으로서 형형한 존재감을 발휘했던 것도, 독선과 패권주의의 이미지를 벗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스티브를 재조명했던 이 영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어느덧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를 통해 30번째 장편 작품을 선보이려 한다. 하지만 그중에서 단 하나의 마블 '시네마'를 고르라면 나는 주저 없이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를 고르겠다. 이런 작품을 다시 MCU 안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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