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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Mar 26. 2023

욕실장 해프닝

'할 수 있을까'가 '해냈다'로 향하는 과정

독립을 했다. 혼자 사는 건 나의 오랜 꿈이었다. 사실 몇 년 전까지는 캐나다에 가서 살고 싶었다. 졸업만 하면 꼭 캐나다 가서 눌러앉겠다며 워킹 홀리데이나 영주권 정보를 찾았다.

 그러다 최근에 집을 나와보고 느꼈다. 나는 캐나다에 가고 싶었던 게 아니라 가족과 떨어져서 살고 싶은 거였구나. 캐나다라는 머나먼 땅으로 향한 나의 욕망은 단지 가족과 거리감을 두기 위한 상황적 핑계일 뿐이었다.


 그토록 가족은 멀리 도망치고 싶은 존재였다. 가족이 싫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계속해서 의지하고자 하는 욕망이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세 살짜리로 머물고 싶은 퇴행의 욕망이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몸도 마음도 편안하게 머물고 싶은 아주 인간적인 애착의 고리였다. 그러나 내가 자라면 자랄수록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인간은 응당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경험하는 것들이 있다. 그 경험이 좋건 나쁘건 그로 인해 배우는 것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인간은 응당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경험하는 것들이 있다.




 처음에 집에 이사를 왔을 때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많았다. 그동안 내가 가장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건 가족이었다. 그러나 엄마와의 명절 전쟁 이후로는 엄마는 물론 언니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아서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입주 청소든 수리든 매번 모든 것이 막막했지만 느리게 느리게 나아갔다. 그때 나는 드디어 홀로 서는 연습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모르면 바로 언니에게 물어보고, 못하면 바로 엄마에게 부탁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보다 훨씬 더 쉽고 빠른 방법이었다.


 가족 내에 보이지 않는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고 나서는 서로를 위해 시간을 갖자고 했다. 그리고 나는 이사 과정을 겪으며 무엇이든 혼자서 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이전보다 훨씬 더 느린 걸음이었다.

 원래 쓰던 음악 작업실 짐은 홀로 여섯 번을 왔다 갔다 하며 옮겼다. 함께 했다면 하루 만에도 끝냈을 입주청소도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우직하게 해냈다.

 혼자 움직이는 속도를 받아들이는 것이 나의 1번 과제였다. 이후에는 성실성 하나뿐이었다. 이전에는 그다지 성실하지 않아도 쉽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언니들과 엄마의 도움이면 대부분은 가능한 일들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내가 바라던 '독립'이었다.




 새로 이사 온 집의 욕실장을 교체하는 날이었다. 가로 세로 1m 내외의 커다란 욕실장을 혼자서 감당하기는 무리인 것 같았다. 벽에 이미 뚫려있는 못 구멍을 정확히 맞추어 욕실장을 고정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심지어 욕실 벽 구멍은 직선으로 맞지도 않아서 수평을 맞출 수 있을지도 막막했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엄마한테 전화해서 도와달라고 할까?"

 "아니면 집주인 할아버지에게라도 도움을 청해볼까?"


 엄마에게 전화하는 건 우선 내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풀릴 일 없을 불통의 응어리가 엄마의 도움으로 엉겁결에 완화될지도 모른다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이완된 관계에는 무심코 침범될지도 모를 틈이 있었다. 내가 이것도 해줬는데 이정도 참견도 못하느냐, 라고 할 거라는 걸 너무 잘 아니까. 그래서 일단 엄마는 패스.

 집주인 할아버지에게 부탁하는 건 더더욱 쉽지 않았다. 이미 싱크대나 세면대를 수리하면서 할아버지에게는 여러모로 도움을 받은 상태였다. 그리고 욕실장 하나로 할아버지를 부르기에는 너무 일이 사소하게 느껴졌다. 또 살림을 이리저리 꾸린 집에 할아버지를 초대하는 것도 왠지 조금 꺼려졌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나는 다짐했다. 그럼 혼자 한 번 해보자.


 무작정  욕실장에 선을 긋고 구멍을 하나 먼저 뚫었다. , 이게 되네? 처음 쥐어보는 전동 드릴이었다. 욕실 벽에 대어보니 다행히  번째 구멍 위치는 괜찮게  맞았다. 사실은 그다음이 문제였다. 0.5cm 정도 아래에 삐뚤어서 뚫린 벽의  구멍이다. 일단 오른쪽이 맞았으니까 이제는 정말 감으로 해봐야지. 왼쪽도 연필로 자리를 잡고 드릴 끝을 대었다.

 대담하게 움직였지만 잘못하다가 새로 산 욕실장에 구멍이 숭숭 뚫릴까 조마조마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실수하면 실수하는 대로 가야지, 뭐.


 욕실장에 왼쪽 구멍을 뚫고 벽에 대보았다. 조금 아래에 뚫렸지만 다행히 미세하게 벽의 구멍 자리가 보였다. 한 번 더 전동 드릴을 쥐고 눌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정 나사를 꼽고 돌렸다. 고민의 흔적으로 그어진 연필 자국들을 지우고, 욕실장을 저 멀리서 바라보았다. 이럴 수가. 수평도 너무 잘 맞고 예쁘게 잘 고정이 되었다. 홀로 감탄사를 마구 연발했다. 혼자서는 도저히 무리라고 생각한 게 고작 30분 전이었는데 말이다.

 이렇게 사소한 성공의 경험이 쌓이다 보면 앞으로도 더 대담하게 스스로 해내는 사람이 될 수 있겠지. 물론 수많은 실패도 있겠지만, 그것 또한 그대로 배움의 과정이었음을 인정하고 나아가면 된다.




 독립을 하니 모든 것을 나만의 속도로 배울 수 있다. 욕실장을 교체하며 전동 드릴을 처음 써보고, 빨래방에서 세탁기와 건조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운다. 집안 온도는 20도에서 22도 정도로 맞추니 살만하구나 하는 것들을 메모장에 적어둔다.

 모든 게 나에게는 첫 번째 경험이다. 엄마에게서, 언니에게서 그동안 손쉽게 얻었던 지혜와 지식과는 차원이 다른 생생함이다. 그래, 난 이걸 원했던 거야. 스스로 익히고 배우는 걸 원했던 거야. 뭐든지 내 것이 되는 생생한 지혜로 나는 배우고 성장한다. 그것은 다른 누군가의 손쉬운 말로 이해되는 것과는 다르다. 그들은 그들만의 경험을 통해 배웠으니, 나는 나만의 경험을 통해 배우고 싶다.


 "네가 돌아가지 않았으면 해서 그러지."

 엄마가 자주 했던 말이다. 엄마 말마따나 내가 길을 돌아가더라도, 그 길목 어귀에서 엉겁결에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마주칠 수도 있는 일이다. 그 꽃은 엄마가 한 번도 보지 못한 꽃일지도 모르지.

 나는 다른 누군가가 깨끗하게 닦아놓은 길을 고상하게 걷고자 살아가는 게 아니다. 나는 단지 내가 되고 싶다. 살아간다는 건 원래 부딪히고 깨지는 것이다. 겁이 나더라도 오로지 스스로 겪는 생생한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성장하고 싶다. 그러면 곧 알게 될 테다. 이거 그렇게 어려운 거 아니었네. 그렇게 겁낼 거 아니었네.

 결국 나는 어떤 경험을 통해서도 배울 사람이라는 걸 안다. 그리고 어떤 순간에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무모하게 나아갈 거라는 걸 안다. 그런 믿음을 기르는 방법이 바로 욕실장에 전동드릴을 한 번 대보는 경험이다. 딱 한 번만 경험해 보면 다음 단계로 쉬이 넘어간다. 만약 실수하면 어때, 그것도 경험인 걸. 그러니 괜찮다. 너무너무 잘하고 있다.


괜찮다. 너무너무 잘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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