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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Apr 15. 2023

내 감정을 미워하지 않을 용기

관계의 딜레마는 내 감정의 딜레마다

인간관계를 맺다 보면 종종 딜레마에 빠질 때가 있다. 나의 입장과 상대방의 입장이 다르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다.

 나의 태도나 생각, 행동은 내가 살아온 삶에 기초해 있다. 반대로 상대방의 태도, 생각, 행동 또한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에 달려있다. 내가 나만의 독특한 생각과 행동양식을 갖듯이 그들도 그들만의 자유의지를 갖고 삶을 밀도 있게 채워나간다.


 내 생각과 타인의 생각이 다를 때 우리는 쉽게 다투게 된다. 남의 방식을 이해 못 할 방식이라며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다. 자유의지란 누구나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남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모습으로 바꾸려 한다면 우리는 그의 자유의지를 박탈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권리도 책임도 없는 자리에서 뻔뻔하게 나의 영향력을 행사하려 드는 일이다.


 우리는 때때로 나와 '다른' 사람을 바라볼  '틀린' 사람 취급을 한다. 틀린  아니라 다른 거라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불만스러운 감정이 올라온다. 우리는 상대가 나와 같지 않음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동안 이해하고 살아온  삶의 궤적에 반하는 돌연변이 같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새로움으로 인도하는 것들언제나 상당한 불편함을 준다.

 또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옳고 선하기를 바란다. 내가 옳고 선한 사람이 되려면 남은 틀리고 악한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이 쉽게 저지르는 편협한 사고의 필연이다.


내가 옳고 선한 사람이 되려면 남은 틀리고 악한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이 쉽게 저지르는 편협한 사고의 필연이다




 진실은 이러하다. 우리가 나와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은 혐오감과 역겨움, 또는 질투와 불안이다. 그런 오묘한 감정은 버텨내기 어려운 모호함이다. 세상 너머로 배척하고 싶은 괴로움이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투사한다. 투사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유가 타인에게 있다고 생각하며 원인을 전가하는 방식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다. 예를 들어 내가 타인을 미워하고 있으면서 타인이 나를 미워한다고 믿는 것과 같다. 또는 스스로 자기혐오를 갖고 있으면서 남이 자신을 미워하고 있다고 오해하고 왜곡하는 일이다.


 우리는 왜 투사할까? 내 안에서 일어나는 혐오감이나 불안감을 스스로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앞서 예시로 든 것처럼 '내가 타인을 미워한다'는 진실은 우리가 지금까지 배우고 익혀온 선善에 가깝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그가 미워할 짓을 하는 거라 여겨버린다. 이는 내 감정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면서 자신이 감당할 심리적인 부담을 덜어내려는 시도다. 투사를 도구삼아 나와 다른 타인을 악惡으로 만드는 것이다.

 투사를 통해 순간적으로 우리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악惡을 담당할 타자가 없다면 나는 누구인가? 타인 없이는 나는 더 이상 선善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 안에서 꾸물대는 불편한 감정을 덮어줄 악惡을 담당할 타자를 끊임없이 쫓고 쫓는다.




 이 돌고 도는 운명의 수레바퀴에는 중심축이 있다. 바로 내 안의 감정이다. 관계 속에서 느끼는 자신의 열등감이나 불안감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 오해로 쓴 이야기가 시작된다. 만일 그토록 불편한 감정들을 스스로 용기 내어 직면할 수 있다면 남에게 투사할 필요도 없다. 남을 악惡으로 만들어 내가 선善이 될 필요도 없다.

 감정은 존재하다가 단지 흘러갈 뿐이다. 마치 하늘에 떠있는 구름과 같다. 구름은 있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어딘가에서 불어와 몽글몽글 모양을 잡는다. 구름은 내 손으로 잡아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후후 불어 없앨 수도 없다. 나의 감정을 부정하고 외면하는 것은 하늘에 떠있는 구름을 부정하고 외면하는 것과 같다.


 감정에는 선과 악이 없다. 심지어 우리가 부정적이라 여기는 감정도 그렇다. 불안이나 우울, 외로움도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다. 단지 순간 속에 존재하는 구름과 같을 뿐이다. 구름은 언젠가는 바람을 타고 저 먼 동네로 흘러가거나 그 자리에서 곧바로 흩어져버린다.

 내 감정을 외면하는 것은 구름의 존재를 외면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이다. 구름은 없는 체한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남에게 열심히 투사한다고 해서 내 감정이 없어지는 것도 결코 아니다. 오히려 진실에 등 돌릴수록 감정은 더욱 거대하게 부풀고 곧바로 터져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 휩싸인다.

 감정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삶에서 아주 중요하고도 필요한 일이다. 다양한 모양의 감정으로 인해 우리는 살아있음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감정이 인간에게 필요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이토록 그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이유도 없을 테다.


 책 '마음 가면'의 저자 브레네 브라운은 말한다.

우리는 자신이 수치심을 많이 느끼는 영역에서 우리보다 잘 못하는 사람들을 골라내 쉽게 비판한다. … 자신의 수치스러운 결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판으로 서로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타인을 악惡으로 저당 잡기 전에, 나는 내면에서 순수하게 드러나는 감정을 악惡으로 저당 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무의식적으로 내 안의 수치심, 열등감, 질투, 불안 같은 감정들을 배척하려 드는 건 아닌가.

 나의 감정을 미워하지 않는 방법부터 배워야겠다. 단지 한 점 구름을 바라보듯,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각을 그윽하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힘주어 잡아두든 스르륵 놓아주든 상관없다. 감정은 알아차리는 순간부터 흩어져 저 멀리 둥실둥실 흘러갈 것이다.


나의 감정을 미워하지 않는 방법부터 배워야겠다.



[참고]

· 책 '게슈탈트 심리치료', 김정규

· 책 '마음 가면', 브레네 브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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