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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브바드 Mar 05. 2021

브라 원정대 - 2편

결국 돌아 돌아 다시 자연의 상태에 가까워졌다!

https://brunch.co.kr/@lovbod/2







브라, 널 만나고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6) 초면에 제가 영혼까지 끌어모아도 괜찮으시겠어요?

한국에 돌아와 태어나 처음 브라를 사러 갔다. 정말이지 그곳은 충격과 공포였다. 탈의 후 속옷을 입으니 직원이 불쑥 들어와 등에서부터 온갖 살을 끌어와(아니 선생님,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있으실 거 아니에요) 브라 안으로 수납해(이 단어만큼 제격인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주었다. 민망하고 수치스러워서 자꾸만 헛헛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렇게 해서 1미리라도 커지면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는지 묻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그래, 그 사람도 직원일 테니까. 본사의 지침이겠지 싶었다.


그리고 직원에게 된통 혼나기까지 했다. 여태 내가 입던 브라(밑 가슴둘레를 한 사이즈 크게 입었던)는 잘못된 거라고, 가슴 크기에 맞지 않는 브라를 하면 가슴이 처져 못나진다고. 그 말을 듣고는 괜히 미안했다. 나의 편안함 때문에 너의 아름다움을 챙겨주지 못한 것으로부터 오는 미안함. 미안하면서도 의문이 들었다. 지금 내가 느끼는 미안함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미안함인가. 나는 설명할 수 없는 편안함에 마냥 행복하기만 했는데 말이다.



7) 뽕 브라 일일천하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서 첫 뽕 브라를 구매하고 며칠 뒤, 강화도로 여행을 갔다. 태어나 처음 착용해본 뽕 브라는 최악 그 이상이었다. 가는 내내 불편했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수준의 압박감. 가만히 있어도 짜증이 솟구치는데 속이 답답해 짜증을 낼 수도, 갑갑함 때문에 버스에서는 잠을 잘 수도 없었다. 고작 두세 개짜리 후크의 힘이 이 정도인데 대체 중세 여자들은 코르셋을 어떻게 찼던 걸까, 중국 전족은 또 어떻고.


이후 사건은 저녁때 터졌다. 친구들과 고기를 구워 먹는데 몇 조각 먹지도 못하고 가슴께에 고기가 걸린 것. 그렇게 혼자 즐기지 못했던 저녁시간이 끝난 후에야 나를 옥죄던 후크를 푸를 수 있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해방감과 엄청난 스피드로 진행된 완벽한 소화. 친구들은 이 답답한 걸 어떻게 10년이나 입어온 건지 존경심이 들 정도였다. 브라 때문에 음식이 얹힌다는 걸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겪은 건 처음이었으니 그날은 내게 충격 그 자체였다.


이후, 호기롭게 두 개나 구매했던 브라는 여전히 서랍장 어딘가에 처박혀 있다. 정말이지 단 한 번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렇게 구매한 뽕 브라는 일일천하로 막을 내렸고, 나는 다시 노와이어 세계로 돌아갔다.



8) 모두의 아무렇지 않음이 아무렇지 않을 수 없던 

노와이어 세계에서 평화롭게 살던 와중, 반년 간 미국에서 거주하게 되면서 돌아올 수 없는 브라렛&노브라 강을 건넜다. 짧았던 미국 생활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는데, 그곳에서 브라를 하지 않았던 몇 명 친구들을, 또 그들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곳에는 그들의 아무렇지 않음에 놀라고, 또 감탄하는 내가 있었다.


동네 대형 마트에서는 왕뽕 브라보다 브라렛이 훨씬 인기였다. 그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세일하는 것들 중 가장 예쁜 브라렛을 집었는데 세상에, 그렇게나 편할 수가 있다니. 서양의 브라렛(수영복도 마찬가지) 중에는 유두를 가려주지 않는 것들도 꽤 많았다. 아닌 척했으나 뼛속 깊이 K-유교 걸의 피가 흐르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점차 그러거나 말거나 브라렛에 빠져들었다. 조금 더 선택의 폭이 넓어진 기분이랄까.


이후 가끔은 친구들을 따라 용기를 내어 브라를 착용하지 않고 수업에 들어가거나 근처로 놀러 가기도 했다. 그곳에서 마주하던 이들은 성별과 관계없이 유두가 아니라 내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아무도 신경 쓰거나, 눈치 주지 않았다. 덕분에 가끔은 내가 노브라라는 것을 잊을 수 있었을 만큼 내 가슴에 무관심했다. 가끔은 그 무관심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러나 그 편안함도 잠시, 한국에 오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브라를 다시 입게 됐다. 역시나 노와이어 브라였지만, 그 어떤 브라도 노브라의 편안함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9) 참 많이도, 오래 돌아와서 미안해

미국에서 돌아온 뒤 여름이 되면 니플 패치를 몇 차례 붙여보기는 했으나 혹여나 땀이 차 떨어질까 내내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보면 괜히 신경이 쓰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묶었던 머리를 푸르기 일쑤였지만 등과 어깨에 땀이 차지 않는다는 큰 메리트가 있었기에 종종 잘 붙이고 다녔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무봉제 브라렛을 입고 있다. ‘주니어 용 브라 → 와이어 브라 → 노와이어 브라 → 일일천하 왕뽕 브라 → 브라렛 → 노브라 → 니플 패치/무봉제 브라렛’으로의 여정이라니. 현재는 무봉제 브라렛에 완전히 정착한 듯하지만, 최종 목적지는 단연코 노브라다. 언제쯤 아무렇지 않은 세상이 올까. 브래지어가 불편하면 더 편한 브라나 브라렛을 찾을 게 아니라 불편한 브래지어를 벗어던지면 될 것을, 우리는 왜 더 편한 브라를 찾아 헤매야 하는 걸까. 여태 내가 구매하고 버렸던 브라 값만 아꼈어도 내 제정 상황은 훨씬 나아지지 않았을까(그뿐이랴, 생리 용품 값은 또 어떻고.) 심지어 브라는 6개월에 한 번씩 교체해 주어야 한다는데! 내가 발 디딘 이곳은 왜 가여운 우리의 통장까지도 함께 방황시키는 세상인가.




그래서 결론은 노브라? 브라렛? 설마 무봉제 브라렛 홍보?


생각해보면 조금 웃기다. 가슴이 나와서 가슴을 가리는 브래지어를 입으며 불편함을 학습했던 시기를 지나, 그 가슴 가리개를 제대로 가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벌점을 받았던 시기를 지나, 더 크고 풍만한 가슴을 가지기 위해 가슴을 잔뜩 모아 억지로 불편을 감수했던, 또 몇은 가리기에 급급했던 브래지어를 보여주는 행위를 섹시로 치부하던 날들. 이 순간들을 모두 거친 현재에 와서는 여태 학습해온 불편을 기어코 내려놓는 단계에 있다니. 우리는 무엇을 위해 브래지어 착용법을 배우고, 갑갑함을 견디는 법을 체화시켜온 것일까. 결국 브라렛을 입기 위함이었을까. 나는 왜 가려야만 하는 것들을 가지고 태어났나.


혹자는 가슴을 처지지 않게 소중히 감싸주는 것이 내 몸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사람에 따라, 각자의 모양과 크기에 따라 느끼는 편안함의 정도는 다를 테니. 다만 나는 불편함과 갑갑함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인간으로서 꽉 맞는 속옷이 싫었고, 동시에 아토피로 고생했던 인간으로서 밑 가슴 언저리에 찬 땀 때문에 가슴께 피부가 말썽인 것도 싫어 브라로부터 탈출한 것뿐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쓴 목적은 “브라보다 브라렛이 좋은데 브라렛을 입지 않는, 혹은 노브라가 최고인데 여전히 가슴에 무언가를 껴입는 당신이 참 어리석어 보인다! 그거 벗고 당장 브라렛을 입든가! 아예 벗든가 해라!”가 아니다. 각자 순서는 다를 수 있겠지만, 아마 우리는 비슷한 과정을 겪으며 자랐을 것이다. 나의 편안함을 향한 여정을 담은 이 글이 매개가 되어 모두가 자신의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변화하는 몸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N년 간의 브라 원정대 이야기를 간신히 해치우고 나니 오천칠십육 가지 부캐 중 오천이백삼십째 부캐인 ‘생리(월경/정혈) 용품 원정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참고로 이 친구는 벌써부터(혹은 여전히) 다음 달에 있을 원정을 준비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생리(정혈) 용품 원정대의 N번째 멤버가 되어 함께 더 나은, 편안한 삶을 찾을 수 있기를, 아주 간절히 응원한다.





피를 더 잘 흘리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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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여학생들의 체육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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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을 많이 먹으면 정말 손이 노래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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