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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브바드 Feb 22. 2021

손끝에 겨울, 손끝에 귤

귤을 많이 먹으면 정말 손이 노래질까?

잘 지내? 귤은 여전히 좋아하고?


초등학생 시절 붙어 다니던 단짝이 있었다. 속상하게도 지금은 그 친구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뭘 하고 지내는지는 통 알 수가 없다. 이제는 얼굴마저 흐릿하지만 그 애와의 시간들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서 숨쉰다. 그 애의 이름은 예림이었다. 예림을 떠올리자면 딱 두 가지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쌍꺼풀 없이 날렵하게 위로 올라간 매력적인 눈매, 그리고 사시사철 노란빛(사실 주황빛에 더 가까웠던 기억)을 띄던 작은 손바닥. 


“예림아, 넌 왜 이렇게 손이 노란색이야?”

“나? 나 귤을 많이 먹어서 그래!”

“……” 


예림의 손바닥에 늘 의문을 품었다. 다른 데는 전혀 아닌데 대체 어떻게 손바닥만 그런 빛깔일 수가 있는 건지, 혹시 어딘가 아픈 건 아닐지. 내가 의아해 하고 걱정할 때마다 예림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단지 자신이 귤과 오렌지를 많이 먹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조금 우습지만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내게 그 무심하고도 쿨한 예림의 답변은 제법 섬뜩하게 다가왔다. 아무리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I am what I eat)’라지만 가끔 그 애의 손을 보고 있노라면 상추를 많이 먹으면 손바닥이 초록색이 되고, 딸기를 먹으면 빨갛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예림을 만난 그해 겨울에는 귤을 조금 밖에 못 먹었다. 어린 나에게 내 손이 노랗게(아니 예림처럼 주황빛으로) 물드는 일은 꽤나 무서운 일이었다. 진짜 귤을 많이 먹는다고 손이 물들 수가 있는 걸까.  






정말 정말 귤 때문에 손이 노랗게 된다고?


예림의 말대로 귤 껍질에는 껍질의 노란 빛깔을 내는 ‘베타카로틴(β-carotene)이 함유되어 피부를 노랗게 물들인다고 한다. 베타카로틴은 적황색 카로티노이드(carotenoid)계 색소물질로, 유해산소화합물을 제거해준다. 그러나 단순히 틴트처럼 피부 겉면만 착색시키는 것이 아니라 섭취 시 혈액을 통해 몸에 퍼져나가기 때문에 귤을 많이 먹으면 상대적으로 지방이 많은 손바닥이나 발바닥, 혹은 피부가 얇은 눈꺼풀 등에 축적되기도 한다. 이 현상을 ‘카로틴혈증’이라고 부르는데 예림의 손바닥이 유독 노란색이었던 이유가 혹시 이 카로틴혈증 때문이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그러나 카로틴혈증은 섭취량 등에 따라 개인차(짧게는 몇 시간~최대 3개월 정도)가 있겠지만 일시적인 변색 현상이기 때문에 귤을 안 먹으면 금방 사라지게 된다. 반면 예림의 손은 귤을 먹지 않아도 사계절 내내 노란 색에 가까웠기에 다시 생각해보면 태어나기를 남들보다 조금 더 노란 손바닥을 가지고 태어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겨우내 귤을 많이 먹어서 피부가 노란 빛을 띈다면 아무 걱정 말고 귤을, 또 겨울에만 마주할 수 있는 귀여운 노란빛 피부를 즐기면 된다. 그러나 만약 앞서 말한 부위 외에 눈의 흰자까지 노랗게 변했다면 간질환이나 갑상선질환 등으로 인한 황달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카로틴은 흰자까지 침투할 수 없기 때문에 황달 증세가 보인다면 빠른 시일 내에 전문의를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안 좋은 일들을 모두 귤 껍질에, 그리고 까먹읍시다


예림의 손이 여전히 내가 기억하는 그 색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는 귤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사계절 내내 손바닥이 노란빛으로 변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 정도는 아는 어른이 되었다. 누군가 귤을 몇 개나 먹을 수 있냐고 묻는다면 일말의 고민도 없이, 아주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다. “앉은 자리에서 반 박스요.” 과일 귀신인 나는 두리안을 제외한 모든 과일을 좋아하지만 그 중 유난히 좋아하는 과일 중 하나가 귤이다. 귤에 더욱 애정을 갖게 된 데에는 가수 김목인이 쓴 책 『음악가 김목인의 걸어 다니는 수첩』에 붙은 띠지의 영향이 크다. 김목인의 책 띠지에는 ‘안 좋은 일들을 모두 귤 껍질에 그리고 까먹읍시다.’라고 써있는데, 그걸 본 이후로 귤을 먹을 수 있는 계절이 되면 속상한 일들을 생각하며 귤을 까먹었다. 그러면 괜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달까. 새콤달달한 맛 때문에 잊혀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 아무렴 어때, 아무 걱정 말고 봄바람이 살랑이기 전까지 뜨끈한 전기장판 속에서 마음껏 귤을 만끽하시길. 올 겨울은 유독 춥고 눈이 많이 온다며 내내 툴툴거려 놓고, 이제야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계절의 끝자락이다. 가는 계절을 붙잡을 수 없으니 냉장고에 남은 귤이라도 붙잡아 맛있게 먹어줘야지. 봄이 되면 사라지는 건 귤 뿐만이 아닐 테니까. 겨울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 그간 우리를 괴롭혔던 시린 일들을 귤 껍질에 넣고 까먹어봅시다. 새 계절에는 새로운 마음으로 뭐든 시작할 수 있도록.     








출처 및 참고문헌


귤 많이 먹으면 손이 노랗게 돼요 / 이현정 / 헬스조선 / 2017.12.27

귤 먹으면 손끝이 노랗게 변해요.. 왜? <건강> / 홍예지 / 하이낸셜뉴스 / 2019.11.23

[생활속의 건강이야기] 피부가 노래지면 황달? / 강재헌 / 한국경제 / 2021.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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