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둘러싼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바라며
2019년 6월, 런던 쇼핑 거리에 위치한 나이키 매장의 마네킹이 화제가 됐다. 플러스 사이즈의 마네킹을 매대에 세워 흔히들 칭송하는 ‘마네킹 같은 몸매’의 폭을 넓힌 것이다. 그동안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마네킹 같은 몸을 갖기 위한 시간들이 아닌, ‘내 몸 같은 마네킹’이었다. 나이키는 우리 소비자의 간지러운 부분을 정확히 긁어주었다. 외에도 해외에서는 에어리, H&M, 룰루레몬 등이, 한국에서는 비브비브 등의 브랜드들이 바디 포지티브(자기 몸 긍정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Body Positive Movement(바디 포지티브 운동, 자기 몸 긍정주의)는 획일화된 미의 기준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자는 움직임이다. 정확한 시작일과 계기는 알 수 없지만, 그 뿌리에 1960년대 흑인 퀴어 커뮤니티가 주도한 ‘Fat Acceptance Movement(비만 받아들이기 운동)’와 1990년대
코니 소브잭과 엘리자베스 스콧이 설립한 단체인 ‘Body Positive(바디 포지티브)’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Fat pride, fat empowerment, fat activism이라고도 알려진 ‘비만 받아들이기 운동’은 살집이 있는 사람들이 직면한 사회적 장벽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여 비만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더 나아가 인종과 성별, 성 지향성, 나이 혹은 장애 유무 등에 만연한 편견을 없애고자 했다.
코니 소브잭은 10대 후반부터 섭식장애를 앓았던 동생 스테파니가 서른여섯살에 세상을 떠난 1996년
엘리자베스 스콧과 함께 비영리단체인 ‘바디 포지티브’를 설립했다. 자신 역시 근육질 체형 때문에 오랫동안 고통받았으며, “나에 대한 혐오감으로 남은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들은 부정적인 신체 이미지가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섭식장애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비현실적인 기준이나 목표, 사회적 시선을 버리고 나답게 살 수 있기를 독려하며 현재까지 다양한 캠페인 활동을 하고있다.
2011년 11월, 파리 출신의 패션 모델 이사벨 카로가 사망했다. 그의 사망은 거식증의 위험성을 알리는 캠페인 촬영 이후였기에 더더욱 패션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매체에 따르면 사망 직전의 카로는 165cm에 31kg 가량이었고, 마른 몸매에 대한 강박증으로 오랫동안 거식증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카로의 죽음 이후 모델들은 직업 활동에 있어 신체 건강함을 입증할 수 있는 의사 진단서와 키와 몸무게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BMI를 제출해야 했고, 일부 유럽에서는 포토샵으로 신체를 보정한 사진에는 필수적으로 조작된 사진이라는 retouchee(retouched photograph)를 표시하는 법률이 제정되었다. 당시 그들을 지켜낼 방법으로 법과 벌금이 유일했던 것이다. 그러나 거식증으로 생을 마감한 것은 비단 카로 뿐만이 아니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 이후, 플러스 사이즈 모델 최초로 미국 스포츠 주간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표지를 장식했던 애슐리 그레이엄은 2016년 두꺼운 허벅지가 생명을 구한다(#thickthighsaveslives)는 해시태그 운동을 시작, 마른 몸을 향한 미적 선입견을 깨고자 보정하지 않은 허벅지 사진을 업로드했다. 이후 2019년에는 <굿 플레이스>의 타히니 역으로 잘 알려진 영국 출신 모델 겸 배우 자밀라 자밀의 선도로 ‘아이 웨이(#iweigh) 운동도 인기를 끌었다. 자밀라 자밀은 자신의 가치와 아름다움은 몸무게와 같은 수치로 측정될 수 없음을, 여성을 몸무게와 외모로 재단하는 것은 어린 여성들에게 끔찍한 악영향을 미치는 잣대임을 비판, 강조했다. 자밀라는 자신의 겉모습이 아닌 ‘멋진 친구들과 일에 대한 사랑, 경제적으로 독립된 삶과 여권 신장을 위한 행동’이 자신의 가치이며, 삶의 귀감이 된다고 전했다.
이렇게, 지금도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
1. 비만을 미화한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은 ‘비만을 미화한다’는 비판도 함께 불러왔다. 다소 살이 빠진 플러스 사이즈 모델에게는 ‘당신은 배신자, 당신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등의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으며, 오히려 마른 몸을 가진 사람들을 배척하고 비만을 조장한다는 여론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자기 몸 긍정주의는 사이즈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말랐든, 살집이 있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사랑해보자는 움직일 뿐이다. “뚱뚱하면 아름답지 않다”, “날씬한 모습이 아름답다”는 장벽을 서서히 무너뜨리는 데데 의의가 있는 것이다. 고작 아름다운 실루엣만을 좇으며 살기에 이 세상은 광활하고, 아름다움보다 중요한 것들은 너무나도 많으니까.
2. 여성만을 위한 운동?
미디어는 여성의 신체와 여성의 역할을 오랫동안 객체화해왔다. 자기 몸 긍정주의가 예로부터 여성들에게 강요되었던 외적 편견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외쳐왔기는 하나, 오직 여성들만을 위한 운동은 아니다. 이 운동의 더 큰 의미는 여성의 몸에서부터 나아가 우리를 평가하는 모든 잣대로부터 벗어나 각자의 ‘고유성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이해하자는 것에 있다. 때문에 성별이나 성적 지향, 나이, 장애 유무 등 모든 분야로부터의 자유로 운동의 의미를 확장시킬 수 있다.
3. 자기 관리에 게으른 사람들의 합리화 수단?
나이키가 플러스 사이즈 마네킹에 운동복을 입힌 것은 뚱뚱한 사람은 운동을 하지 않는다는 편견을 깬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올해 6월에는 자기애(love yourself)를 노래하는 미국 가수 리조(Lizzo)가 인스타그램에 운동 영상과 함께 5년 동안 꾸준히 운동을 해왔다는 글을 업로드하며 미국의 다이어트 문화와 타인을 향한 평가, 엄격한 외모 잣대를 비판했다. 한국에서는 운동뚱으로 큰 인기를 끌고있는 코미디언 김민경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운동뚱을 시작할 때 살 빠진 모습을 보여야 할 것 같은 마음에 경락을 받기도 감량 목적의 운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내 경락을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김민경의 운동은 날씬한 몸을 위함이 아니었다. 그저 더 건강한 몸을 갖기 위함, 맛있는 음식을 앞으로 더 맛있게 먹기 위함이었을 뿐이다. 오히려 그는 살을 뺄 생각이 없다고도 말했다. 이들의 이러한 행보는 뚱뚱한 사람은 건강 관리에 소홀하다는 것, 마른 몸을 위한 운동만이 자기 관리라고 여겼던 우리 안의 당연함을 낯설게 바라보게 만든다.
나이팅게일이 현대 간호학을 확립했을 때 몸무게는 얼마였을까요?
파키스탄의 여성 교육 운동가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말랄라 유사프 자이가
파키스탄의 탈레반 지배 지역 소녀들의 삶에 대해 쓰기 시작했을 때
몸무게가 얼마였을까요?
몰라요? 당연하죠! 몸무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거든요.
활발하게 아이 웨이 운동을 이끄는 자밀라 자밀의 인스타그램에서 발췌한 글이다.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저 말을 그동안 무던히도 미워했던 나 스스로에게, 나와 비슷한 시간을 살아온 친구들과 전세계 여성들에게 전하고 싶다. 우리는 가히 숫자로 평가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출처 및 참고자료
A brief history of Jameela Jamil and the Kardashians’ differing views on body positivity / Sonia Rao / The Washington Post / 2019.04.03
Body positivity is everywhere, but is it for everyone? / Alia E. Dastagir / USA TODAY / 2017.08.03
‘마네킹 같은 몸매’ 나이키가 깨부쉈다···뚱뚱한 마네킹 등장 / 황수연 / 중앙일보/ 2019.06.15
“뚱뚱해도 괜찮아” 세계는 지금 ‘신체 긍정’ 열풍 / 홍예지 / 파이낸셜뉴스 / 2018.06.09
조금 뚱뚱해도 괜찮아 / 이은아 / 매경프리미엄 / 2017.06.26
Jameela Jamil | I Weigh / La Norme / 2019. 04. 28
당신의 몸을 사랑하세요? / 김수영 / 여성조선 / 2020.08.08
김민경, ‘운동뚱’ 초반 ‘경락 마사지’ 포기한 이유[인터뷰M] / 장수정 / iMBC / 2020.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