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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나무 Jan 28. 2023

비밀을 만드는 아이들 4

강율과 은재

4. 강율과 은재    


 

여름방학이 되기 전, 4학년 1반과 2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던 우빈이와 우주 남매의 별명은 개학 후 차츰 사라졌다.

‘나무막대기’ ‘여우’ 이런 소리가 들리면,

강율이가 잽싸게 달려가 소리쳤다.

“안 돼. 그건 내가 저작권 등록한 별명이야. 다른 사람이 쓰면 5,000원씩 돈 받을 거라고.”

“그런 게 어디 있냐? ”

“진짜야. 방학 때 우리 엄마랑 같이 등록하는 데 가서 다 했어.”

강율이가 자기 엄마까지 들먹이면 아이들이 

“피~ 자기가 만들었다는 증거 있나?” 하면서도 우주와 우빈이의 별명 부르며 장난치는 걸 그만두었다.  

   

은재는 우빈이의 별명이 처음 만들어진 이유가 왜 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아이들 입에서 차츰 사라져 가는 것에 강율이의 역할이 있음을 직접 보게 되었다. 강율이는 은재와 같은 유치원을 다녔고 지금도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친구이기도 했다.

“하강율, 너 제법이다. 멋있어!”

강율이는 은재가 자신을 칭찬해 주는 게 기쁘면서도 쑥스러웠다.

“뭘~  내가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우주가 별명을 싫어해서...”

“그러고 보니까 너 요즘 우주랑 자주 노는 거 같더라.”

“응. 그렇게 됐어. 우리는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됐거든.”

강율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뭐? 비밀이라고? 무슨 비밀인데? 너 혹시 도서관에서...”

“도서관?”

“응? 아니, 아니야.”

은재는 서둘러 달아났다.      


강율이는 모처럼 은재와 얘기를 나누게 되어 좋았는데, 아쉬웠다.

강율이는 은재가 말한 비밀이란 뭘까 생각했다. 

‘비밀, 도서관. 그게 뭘까? 도서관에 가면 그게 뭔지 알아낼 수 있을까?’     

강율이는 축구나 게임은 좋아하지만, 책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은재가 도서관에 자주 가는 걸 알기에 가끔 일 없이도 도서관에 가기는 했다. 혹시라도 은재가 있으면 한 마디씩 말도 걸어 보고. 

학교 도서관 입구에는 ‘꿈이룰터’라고 커다랗게 적힌 예쁜 나무 간판이 있고, 새로 들어온 책을 소개하는 게시판이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엔 사서 선생님의 자리와 ‘어울림교실’이 있고, 정면엔 달마다 새로운 주제에 따른 책들이 전시된다.     

강율이가 지난달 독서수업 이후 처음으로 도서관에 가보니 전시된 책이 모두 편지와 관련 있는 책이었다. <초정리 편지> <가을에게 봄에게> <우체부 코스타스 아저씨의 이상한 편지> <편지 받는 딱새> <풍경 편지> <0에서 10까지 사랑의 편지> <젖소가 편지를 쓴대요> <숲으로 보낸 편지> <곰의 편지>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 <숲 속 사진관에 온 편지> <한국사 편지> <행복을 전하는 편지> <잠자리 편지> <우체부 아저씨와 비밀 편지>.

대부분 그림책이고 만화와 동화책도 있는데, 강율이는 <0에서 10까지 사랑의 편지>가 궁금했다. 표지 그림엔 여자 아이와 남자아이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 두 아이 표정이 재미있어 보였다. 더구나 여자 아이 품엔 갓난아기도 있어서 호기심이 생겼다.     


“선생님! 전시된 책도 빌릴 수 있어요?” 강율이가 물었다.

“안 되는 건 아닌데, 두 권씩 있는 책도 있으니까 먼저 서가에 있는지 확인해 보자. 어떤 책 빌리고 싶어?”

“저거 <0에서 10세까지...>”

말하면서 강율이는 공연히 마음을 들키는 거 같아 쑥스러웠다.

“그 책은 아침에 돌아온 게 있어. 저쪽 ‘희망누리’ 서가 첫 번째나 두 번째에서 찾아서 가져와.”

강율이가 책을 찾아 대출 카드와 함께 사서 선생님에게 내밀었다.     

“강율이가 오랜만에 책을 빌리는 거구나.”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저 선생님!”

사서 선생님이 컴퓨터에 대출 기록을 남기다 강율이 얘기를 들으려고 ‘왜?’하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혹시 이 도서관 안에 어떤 비밀 같은 게 있을까요? 여자 아이들이 관심 가질 만한...”

강율이가 혹시 사서 선생님이 은재가 말한 비밀을 알까 싶어서 물어보았다.

선생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조용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글쎄. 그런 게 있을까? 내 생각엔 없을 거 같은데. 비밀에 대한 책은 많지만.”     

마침 그때, 은재가 우빈이와 들어왔다.

“어, 강율이네. 안녕? 책 빌리러 왔어?”

은재가 반갑게 인사했다.

우빈이는 선생님에게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강율이에겐 눈길만 보냈다가 책가방을 선생님 자리 뒤쪽에 놓고 반납한 책을 모아둔 책수레가 있는 쪽으로 갔다.     


“은재야. 너도 책 빌리러 왔니?”

“나는 우빈이가 도서부 활동 하는 동안 책 읽다가 끝나면 같이 갈 거야.”

“그래? 그럼 나도 책 읽다가 가야겠다.” 그러면서 강율이는 은재가 앉은자리에서 두 칸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앉아 책을 보기 시작했다.     

표지는 그림책처럼 보였지만 만화로 된 책이었다. 부모님 없이 할머니와 살고 있는 에르네스트는 집과 학교밖에 몰랐다. 그런데 빅투아르가 전학 왔는데, 에르네스트를 엄청 좋아한다. 빅투아르는 형제가 13명이나 있다. 너무나 다른 빅투아르 덕분에 에르네스트는 완전히 처음 해보는 일이 자꾸 생긴다.  

   

강율이와 은재가 책을 보고 우빈이가 책 정리를 할 때, 사서 선생님이 우빈이를 불렀다.

“우빈아! 내가 너한테 할 얘기가 있어. 조금 더 있다가 가도 되니?”

“네. 괜찮아요. 그런데 은재가 같이 가려고 기다려서...  먼저 가라고 할게요.”     

우빈이가 은재에게 사정을 얘기하자,

“알았어. 그럼 난 먼저 가야겠다.” 하며 가방을 챙겼다. 

그래서 강율이도 가방을 챙겨 은재를 따라 도서관을 나왔다.     

강율이는 은재와 둘이 나란히 걷게 되어 기분이 썩 좋았다. 그래도 말을 먼저 꺼낸 것은 은재였다.

“강율아, 요즘도 축구하니?”

“응. 아침에.”

“수업하기 전에 하면 힘들겠다.”

“그래도 엄마 출근할 때 같이 나가서 한 시간씩만 하니까 괜찮아.”

“재미있어?”

“응. 점점 실력이 좋아지는 거 같아 재미있어. 너도 축구 좋아하니? 보는 거 말이야.”

“나는 싫지는 않지만 막 좋아하는 건 아니야.”

“그럼 너는 뭘 좋아하는데?”

“나? 나는 비밀을 좋아하지.”

은재는 대답을 하며 ‘하하하’ 웃었다.


‘또 비밀!’

강율이가 생각하며 조금 따라 웃다가 말했다.

“너는 비밀을 진짜 좋아하는구나. 그럼 내가 비밀 얘기를 하나 할까?”

“뭐어? 비밀이라면서 나한테 얘기해도 되는 거야?”

강율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너한테 얘기하고 싶어.”

어느새 은재네 아파트 입구였다.     

은재가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말했다.

“좋아. 그럼 다음에 만나면 얘기해 줘. 그래도 나는 내 비밀은 말 안 할 거야. 알았지?”

“그래도 돼. 내일 학교 끝나고 저쪽 놀이터로 올래? 그네 타고 있을게. 거기에서 만나자.”

“그래. 안녕~”

은재가 폴짝 뛰며 아파트 1층 현관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강율이는 큰 결심이라도 하는 양 입술을 꼭 다물었다. 

    

그날 우빈이는 사서 선생님에게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우빈아! 나 네가 나를 속이고 도서관에서 몰래 숨어 있었던 거 엄마한테 들었어. 네가 나에게 거짓말을 한 건 나빴지만 엄마에게 편지를 쓰고 자기가 뭘 잘 못 한지도 알고 적당한 벌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여태 모른 척했어. 그런데, 혹시라도 다른 애들에게 얘기한 적 있니? 그러면 안 돼.”

“아무에게도 얘기 안 했어요. 우주도 몰라요.”

“응. 그래. 너를 믿어. 은재에게도 단단히 얘기해 줘. 나는 보안관 아저씨와 교장 선생님에게 언제,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아직도 결정을 못 했어.”

우빈이는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든 게 죄송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래서 더 열심히 선생님을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음 날, 은재는 웬일인지 우빈이와 놀 생각을 안 하고 인사를 했다.

“우빈아, 오늘은 나 먼저 갈게.”

“무슨 일 있어?”

“아니 비밀이 생길지도 몰라. 후훗”

우빈이는 은재가 여전히 비밀을 만드는 걸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나한테도 비밀이야?” 살짝 서운해서 물었다.
 “글쎄, 그건 나도 아직 몰라.”

“재밌는 비밀 많이 만들어. 그런 다음에 나한테는 얘기해 주고, 알았지?” 하고 우빈이가 눈을 크게 뜨고 살짝 위협하는 모양으로 장난스럽게 말했다.     


은재가 아파트 놀이터에 가니 강율이가 혼자 그네를 서서 타고 있었다.

“비밀이 뭔데 강율아?”

은재도 남아 있는 그네에 올라타고 발로 구르며 물었다.

“이건 우주한테도 비밀이야. 그러니까 우빈이에게도 비밀이어야 해.”

강율이는 다짐부터 받았다.     

은재는 우빈이에게 비밀로 하라는 말에 잠시 망설였다.

“그렇게 중요한 거야?”

“응. 나한테는 엄청. 그러니까 약속해 줘.”

“알았어. 뭔데? 빨리 말해봐.”     

강율이가 그네를 멈추며 그대로 그네에 앉아서 은재를 보며 말했다.

“은재야!  내가 왜 우주랑 우빈이 별명을 만들었는지 모르지?”

“응. 몰라. 그게 비밀하고 상관있는 거니?”

“그런 셈이야.”

강율이는 그네 줄을 두 팔로 그러안으며 오른손과 왼손을 깍지 끼고도 한동안 말을 망설였다.      

은재는 강율이가 이렇게나 뜸을 들이는 걸 처음 봤다. 같은 유치원에 다녔고, 부모님까지도 양쪽 집을 오가며 놀았던 적도 있었다. 3학년 때도 한 반이어서 사이좋게 놀았는데, 2학기가 된 후 강율이의 엄마와 아빠가 헤어졌다. 그 무렵부터 차츰 강율이는 좀 달라진 거 같았다. 

학교에서 매일 얼굴을 보기는 했지만, 강율이가 무슨 까닭인지 은재를 예전처럼 살갑게 대하지 않았다. 은재는 서운했지만 조금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4학년이 되어 반도 달라져 예전처럼 되지 않았다. 

    

강율이가 많이 망설인 끝에 겨우 결심한 듯 조그맣게 말했다.

“네가 맨날 우빈이하고만 노는 게 싫었어. 반 대항 축구 시합 때 너한테 멋진 골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우주가 골을 넣고 너랑 우빈이랑 좋아서 막 소리치는 게 꼴 보기 싫었어.” 

“그래서 화가 나서 그랬다고? 그게 비밀이야?” 

“음.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가 왜 화가 나고 기분이 나빴냐면 내가 너를, 너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란 말이야.”     

그날, 은재는 강율이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강율이는 하고 싶은 말을 어렵게, 어렵게 하고 나서 마음이 후련해졌다.  은재는 뜻밖의 말을 들어 조금 어리둥절하면서도 자기가 쑥 커버린 기분도 들었다. 우빈이를 질투하는 강율이의 마음을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이해해줘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런 기분을 우빈이에게도 당분간은 비밀로 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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