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모운 Feb 21. 2023

도전의 이유

 내 배우 프로필에는 영화, 드라마뿐만 아니라 직접 쓴 책도 기록되어 있다. 해서 대부분의 감독님들이 이 부분을 꼭 짚어 묻곤 한다. 어쩌다 책을 쓰게 됐는지. 

조금 특별하게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서를 기록하긴 했지만, 배우로서 매력을 어필하기에도 부족한 짧은 오디션 시간에 책 얘기를 장황하게 하면 안 될 것 같아 "일기처럼 쓰다 보니 한 권의 책이 됐다"라고 간단히 대답하곤 한다. 

 사실 글쓰기는 오갈 데 없는 내 감정의 소용돌이가 외부로 잘못 뻗어나가지 않게 사각형의 책상 안에 머무르게 만드는 일이었으며, 어디선가 인정받지 못했던 가치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구구절절 이유를 적어간 일종의 위로장이었다. 

  하루가 바쁜 일과로 쏜살같이 지나갈 때, 그래서 오늘은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반복되는 하루를 살지 않기 위해 사소한 일이나 대화에서 느꼈던 감정을 기록하며 나날이 다른 날로 기억되게 하려는 노력이었다. 

  또한 치열한 마음이 담겨 약간은 분노에 차 있던 스물아홉의 글과, 이제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무슨 일을 해도 부끄러울 게 없어진 서른여섯의 글의 간극을 통해 개인의 삶이 변화하는 과정을 기록해 둔 성장일기 이기도 하다. 

  그렇게 스스로를 청진하고 치료하며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되새기는 반성문이자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다시 설정하는 내비게이션이 되어준 글쓰기가 선물해 준 것은 검열과 희망이다. 반복되는 실수를 줄이고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게 만드는 일이며 솔직하게 적어 내려 간 글을 세상에 공개함으로써 그 후로는 직접 쓴 글처럼 살아가야 한다는 단속이기도 하다. 

  

작가가 꿈이었냐는 질문을 받으면 꿈이 아니었다고 대답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배우를 하고 싶어 했고 배우에서 파생되어 주로 하게 된 것이 글쓰기일 뿐이다. 하지만 아마추어의 글쓰기가 독립출판물이 되고, 이어 기성출판물이 되어 다른 곳에서 칼럼을 쓰는 일이 생기거나 오디오드라마로 제작되는 과정은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었다. 

  학창 시절부터 배우 일 말고는 다른 일을 전문적으로 해본 적이 없기에 배우로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면 쓸모없는 인간이 되곤 했다. 좌절의 고리는 쉽게 끊어지지 않았고 좋아하는 일이 실패의 연속이 될 때 그것이 포기로 이어지는 것이 두려워 다른 곳에서 가치를 찾아 경로를 잠시 이탈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다행히 이탈한 곳에서 경험한 새로운 일과 감정들이 인간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만한 자양분이 되었고, 이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과, 첫 번째 목표가 아니라 두 번째, 세 번째 목표도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라고 여겨 무슨 일이 되든 최선을 다 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목표가 여럿이 되면 집중이 분산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요즘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효율이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루 열 시간 내내 대본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일보다 두 시간 안에 암기와 해석을 마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엔 온전한 마음까지 가족에게 와 있어야만 어떤 시간이든 진심으로 임할 수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으면 그 어느 시간도 진심으로 살아갈 수 없다. 결국엔 그 자리, 지금 이 시간 내가 놓인 곳에서 최선을 다 하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일, 그래서 실패하더라도 도전한 곳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일이 내가 살아가는 삶의 원동력이 되어 오늘도 희망 한 줌을 가슴에 품고 세상 밖으로 나간다. 

작가의 이전글 확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