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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Feb 06. 2024

찬란한 시절

언젠가는 지나가겠지, 좋은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며 지내온 어두운 터널 같았던 20대 시절이 지나고 나니 그 시절이 그토록 빛나고 찬란한 시절이었다는 걸 30대 중반이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책임질 일이 적었던 그 시절엔 언제나 도전과 꿈이 함께 했고, 가진 게 없어 잃을 것도 없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언제나 당당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내가 가는 길이 정답이라고 여기며 불도저처럼 밀고 나갔던 그날의 패기가 그리울 만큼 힘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앞질러가는 주변의 친구들마다 아낌없이 박수를 쳐주던 나는 어느새 손바닥이 아픈 사람이 되었고, 아직 내 차례가 오지 않았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순서가 오지 않고 마감하는 건 아닐까 몇 번이고 번호표를 확인하는 초조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이가 들면 더욱 단단해질 줄 알았는데, 겪고 또 겪은 실패 덕에 더 견고한 마음이 될 줄 알았는데 불안은 더욱 커져만 간다. 

누구나 겪는 고생이니까 힘들다고 징징대지 말고 불행을 혼자 떠안지 않기로 다짐해 놓고도 여전히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 미숙하다. 때로는 속도만 느려진 게 아니라 방향도 잃은 것이 아닌가, 뒤에서 빵빵 대는 차들 앞에 서서 고장 난 내비게이션을 조작하는 사람이 된 기분이다. 모두가 정확한 목적지를 알고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갓길이 나타날 때마다 여기서 빠져야 하나 매번 지도를 확인하는 사람처럼. 

그렇다고 매 순간이 우울하거나 절망적인 건 아니다. 가족을 보살피기엔 여전히 궁핍한 벌이지만 그 시절엔 벌 마음도 없던 돈을 꾸역꾸역 마련한 수 있는 낯 두꺼운 어른이 되었고, 집에 돌아오면 가족이 반겨주니 나머진 다 이루었고 성공만이 남았다는 사실이 나를 위로하기도 한다. 

다행인 건 이렇게 울적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자면 마음속의 긍정회로가 활화산을 뚫고 나오는 용암처럼 피어오른다는 점이다. '짜식아, 별 거 아니야. 힘내'라고 말하듯 가슴속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계속 뿜어내준다. 긍정과 부정의 에너지가 반반 자리를 지키고 있어 정서가 한쪽으로 크게 치우치지 않는 자아를 지닌 게 내게 주어진 축복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새로운 일만 생기면 호들갑을 떨던 예전에 비하면 꽤나 시니컬해졌지만 대신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항상 결핍을 동기로 삼아 빈칸을 채워나가기가 급급했지만 요즘은 지금까지 채워나간 칸들을 다시 복기하며 하나씩 칭찬해주고 있다. 어리석고 어설픈 시절이었을지라도 겁 없이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경험도 해보지 못했을 수많은 일들과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나에게 남겨준 유산들이라 생각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차근차근 수립해 나간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불안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커져만 가는 불안이라는 불씨를 조절할 수 있는 소화 장비가 여럿 준비 되어 있는 게 아닐까. 불만 지필 줄 알지 소화기 사용법을 몰라 발을 동동 구르는 게 나의 이십 대였다면, 이제는 소화기를 다 쓰면 모래를 퍼다 덮고, 그래도 안 되면 물을 길어와 뿌리고, 그래도 안 되면 바지를 벗고 소변이라도 눠서 불을 끄려고 하는 게 오늘날의 모습 같다는 생각을 한다. 

과정이 그리 깔끔하고 멋지진 않겠지만 확실하게 결과를 볼 때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 그걸 책임이라고 부르고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서 바지를 벗고 소변으로 불을 끄는 창피함 정도는 무릅쓸 수도 있는 사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는 오늘날의 나에게, 멋진 어른이 되어가기 위한 과정이니까 바지 벗기 전에 물만 길어와도 불을 끌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고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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