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각개전투의 시대가 도래했다.
3사 방송국이 브라운관을 책임지던 날이 지나가고 종편이 등장했으며,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등 개인 기기의 발전으로 OTT가 성장하고 개인 SNS 채널이나 유튜브 등의 비디오 플랫폼으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영상을 소비할 수 있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소비자가 원하는 시간대에 언제든지 동영상 콘텐츠를 선택하는 온디맨드(On-Demand) 형식이 주요 시청 방식이 되면서 공급자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잘 만들어놓은 콘텐츠를 세상에 던져 놓기만 하면 높은 확률로 성공하던 것도 옛일, 시시각각 유행의 흐름이 변하는 질풍노도의 시기에 흥망성쇠의 원인을 파악하기도 전에 새로운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온다.
배우들은 자연스레 그 흐름에 몸을 맡긴다. 원하는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배우는 수가 많지 않다. 다수의 배우들은 제작이 되는 곳이라면 일단 프로필부터 넣고 봐야 하는 입장으로, 구직을 하기 위해 새로운 플랫폼이나 콘텐츠가 생길 때마다 발을 디뎌야 한다.
콘텐츠가 다양해졌으니 오히려 자리가 많아진 것 아니냐는 말도 있지만 그만큼 배우나 크리에이터를 희망하는 사람도 많아졌고,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자리에 아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작품들이 줄을 서 있어 이미 촬영을 마친 작품들도 대기표를 뽑고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리는 일이 허다하다.
분명 그중에서도 일부 작품들은 순식간에 제작되어 편성까지 꿰찰 것이고, 작품에 참여 중인 배우들 입장에서는 일은 꾸준히 있는데 왜 다들 배곯는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작품을 맡았다 해도 다음 스텝까지의 거리가 길면 위기감이 찾아오는 것이 사실이다. 앞에서 말했듯 세상은 시시각각 변하고 소비자들의 입맛도 빠르게 변화한다. 시청자의 녹을 받아먹고사는 것이 숙명인 직업들은 실력만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인성과 사생활적인 측면에서도 특별히 주의를 기해야 한다.
그런 의미로 배우가 작품에 선정되기 위한 과정은 더욱 복잡하고 까다로워졌으며, 어쩌면 그로 인해 여과 과정을 한 번 거치는 선순환이 되기도 할 것이다.
언제나 그랬겠지만 특히 나에게는 유독 격동의 시기였던 몇 년이 지나고, 소속사와 계약을 해지하고 홀로서기를 시작하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연기만 잘하면 언젠가 세상이 날 알아봐 줄 거라는 기대는 이미 떠나보냈고, 반대로 배우가 장사나 다른 일을 하면 업계에서 멀어지는 건 아닐까 하던 염려와 자존심도 버린 지 오래다. 물에 빠졌으면 일단 살아남아야 육지로 나와 꿈을 꾸든 일을 하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견뎌 온 지금에서야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계산해 보는 중이다.
가게를 운영해 본 경험 덕인지 배우라는 직업을 장사라고 생각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봤다. 일단 맛 보장은 물론이겠거니와 인테리어, 콘셉트, 메뉴도 중요하고, 시장 조사를 통해 주변 매장보다 내가 가진 강점이나 특징이 무엇인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서비스도 좋아야 하니 늘 친절해야 할 것이고 마케팅은 매장 운영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으며 리뷰도 신경 써야 하니 언제나 평가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자신 있는 메뉴를 팔아야겠지만 배우라는 직업 특성상 소비자가 원하는 신메뉴도 언제든 척척 뽑아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배우가 가져야 할 요소를 매장 하나에 비교해 적용시켜 보니 할 일이 태산처럼 많다. 소품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니 마니로 며칠을 고민도 하는 게 매장인데 배우로서는 너무 쓸 테면 쓰고 될 대로 되란 식으로 살아온 건 아닌가 싶은 마음에 반성도 했다.
그래서 지금부터 배우 차영남이라는 매장 하나를 새롭게 오픈한다는 마음으로 임하기로 했다. 주변 동료들은 끼리끼리 크루를 만들어 공연을 올리거나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콘텐츠를 만들기도 하고, 십시일반 돈을 모아 꾸준히 영화를 만드는 모임도 있다. 혹자는 그런 움직임이 대형 OTT 드라마 하나 출연하는 일에 비해 얼마나 영향력이 있겠냐 쯧쯧 혀를 차기도 하지만, 전국 프랜차이즈 매장도 있는 반면 단골손님 가득한 숨은 맛집도 존재하는 법이니까.
무엇을 할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이제부터 내가 소속사고 사장이고 매니저고 마케터고 투자자고 요리사다. 일단 매장 하나 잘 차려놓고 보면 분점도 생기고, 잘 되다 보면 프랜차이즈 되지 말란 법 있나. 우선 허물 데 허물고 리모델링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