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밖 세상 유럽 편 #004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앱 하나를 통해 모였다. 규모는 어림잡아 10명이 넘었다. 모두의 국적은 제각기 달랐으나 목적은 놀랍게도 같았다. 예기치 못한 사람들과 처음 만나는 것, 그리고 한바탕 수다판을 벌이는 것! 이것이 이들이 말하는 국제 파티였다.
파티는 어느 시끌벅적한 술집에서 열렸다. 넓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형태로 진행됐다. 옆사람과 충분히 친해졌을 즈음이 되면 자리를 섞어 또 한 번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덕분에 지루할 틈이 전혀 없었다.
자기소개를 해야 했다. 생각보다 여러 번, 구체적으로 해야 했기에 적당한 레퍼토리를 정했다.
간단한 자기소개조차 영어로 하니 힘이 들었다. 이러다간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전략을 바꾸었다. 질문을 던져 상대방의 대답을 경청하고자 했다. 얼마나 알아듣느냐는 차선의 문제였다.
지금의 영어실력으로는 듣고 즉각적인 대답을 건 아무래도 힘들었다. 그러나 집중해서 들으면 단어 몇 개는 건져서 맞장구는 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이해를 못 했더라도 한 번 더 말해달라고 부탁하면 되는 일이었다.
기억에 남는 선남선녀 한 쌍이 있다. 멀리 스웨덴에서 프라하까지 닿은 그들은 나보다 어리지만 매우 주체적이었다. 그들은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대학 진학 전 유럽 배낭여행 중이었다. 나처럼 “커리어 중간에 있는 자기계발 기간”을 뜻하는 “갭 이어(Gap Year)” 기간에 세계여행을 선택한 것이었다. 교제 중인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둘이 너무나도 잘 어울렸기에 흐뭇한 미소를 내심 지었다.
또 다른 국제 파티 참여자로, 미국 출신 컴퓨터공학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가 현재 지속하고 있는 삶은 내가 그리는 미래의 모습 중 하나였다. 그는 본인의 기술을 살려 자급자족하는 세계여행을 하고 있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자유로운 여행자를 On/Off 할 수 있는 그의 자질을 닮고 싶었다.
어른들이 누누이 말한 영어의
중요성은 언제나 모호했다.
국제 파티에서 마주한 영어의 활용도는 어른들의 말씀 백 마디를 대변했다. 영어는 만국공용어의 역할을 해주었다.
솔직히 말해서, 영어가 이렇게까지 필수적이고 효율적일 줄은 몰랐다. 말 그대로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영어가 내게 더 큰 꿈을 꾸게 해 줬다. 더 넓은 세상을 탐험하고 세상의 다채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문을 영어가 열어두고 있었다. 원한다면 내 두 발로 걸어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국제 파티에 참여한 모두는 어눌한 나의 영어 실력을 잘 이해해 줬다. 덕분에 충분히 파티를 즐길 수 있었다. 내가 대답할 때 경청해 준 모두에게 감동했다. 제임스가 아니었으면 이 귀한 경험을 못 해보고 지나쳤으리라.
어느덧 정리하고 일어날 무렵, 제임스가 내 술값을 대신 지불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제임스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Your beer is on me. I paid it for you.”
“Thank you man. I’ll have your beer next time.”
“Yeah? Thanks man.”
이 표현은 앞으로도 자주 듣고 또 써먹게 된다. 파리, 로마, 브로츠와프 그리고 질리나에서 만난 은인들이 그 대상이다. 세계가 이렇게 정다운 곳인지 몰랐는데, 두 달 동안 참 자주 피부로 느꼈다. 그 첫 은인은 바로 제임스다.
다음날 아침, 제임스의 특제 아침밥을 먹고 작별인사를 했다. 그가 말하길, 이른바 카우보이 아침식사(Cowboy Breakfast)였다.
체크아웃을 한 뒤 다른 호스텔을 알아보려 길을 나섰다. 같은 호스텔에서 연장을 하지 않은 데에 특별한 목적은 없었다. 여러 호스텔에 묵어보고 싶었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던 것이 이유라면 이유였다.
나만 행운이 따라주는 것일까, 아니면 모든 여행자가 이런 우연한 행운을 겪는 것일까. 의심만 쌓여가던 중에 곧이어 다음 행운을 마주했다.
우물 밖 세상 유럽 편 #004 - 마침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은 가명이며 이야기는 사실을 기반으로 각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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