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민재 Dec 26. 2022

프라하와 美친 형

우물 밖 세상 유럽 편 #003

아담 온드라(Adam Ondra, 유명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 국적 체코) 한 사람만 보고 결정한 프라하행. 인터넷에 검색하기 전까지는 프라하에 어떤 유명한 관광명소가 있는지 전혀 몰랐다. 다행히도 구글맵스(Google Maps)는 유명한 건축물 또는 광장 등 관광명소가 아이콘처럼 표시된 기능이 있어 초보 여행자에게 유용했다. 



프라하 1, 2의 약도와 관광명소 아이콘. 프라하 성, 카를교, 국립박물관 등 주요 관광명소를 알아보기 쉽다. (출처: 구글맵스)



프라하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껴보기 위해 짐은 최소화한 채 길거리를 나섰다. 일교차가 큰 날씨에 애를 먹었다. 입자니 덥고 벗자니 추운, 한국과 다르지 않은 날씨였다.



혼자가 된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길거리에는 동양인이 이상하리만치 없었다. 간혹 작은 마트를 운영하는 아시아인을 볼 수 있었으나, 드라마가 흔하게 비추는 한·중·일 여행객의 모습은 도통 찾아볼 수 없었다. 덕분에 행인들의 사사로운 수다 하나조차 이해하지 못하니 이것이 바로 또 다른 의미의 정적이었다.     



프라하의 길거리는 하나하나마다 모두 예뻤다. 갈래길 하나 들어설 때마다 갈팡질팡의 연속이었다.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작고 예쁜 골목들이었다. 동양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멋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신선한 충격이 계속됐다. 



카를교로 이어지는 프라하의 골목. (사진출처: 권민재)



관광명소는 언제 사람이 붐볐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감히 흘겨볼 수 없는 웅장함을 가졌기 때문이다. 프라하 성과 구시가 광장, 프라하 천문 시계 그리고 블타바 강 위를 지나는 카를교는 모두 명성의 이유를 각기 잘 설명해 주었다. 



어느덧 해는 중천이었다. 홀린 듯 걷는 것도 누적된 피로 앞에는 장사 없었다. 낮잠을 청하려 호스텔로 발걸음을 돌렸다.


 

배낭여행의 묘미는 생각보다 일찍 시작됐다.



3층 침대 두 개가 놓인 좁은 단칸방이었다. 방에는 한 서양인이 침대에 누워 쉬고 있었다. 아직 내향인 모드 ON 상태인 내 모습은 그가 보기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타지생활이 서툰 동양인 청년이었을 것이다. 그는 친절하게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Hey, how are you?”
당황하지 않은 척 나는 답했다. “Good. How are you?”
“I’m good. Where are you from?”
“South Korea.”
“Oh. Anyeong-Haseyo!”
“Oh wow, do you speak Korean?”



예상치 못한 그의 한국어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제임스란 이름의 미국 청년은 나보다 5살 많았다.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그는 군 복무를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한국에서 근무했으며, 통역을 맡은 한국인 카투사(KATUSA) 병사들이 그에게 기본적인 한국어를 가르쳐 준 것!


K-pop, K-movie, K-drama의 위상은 들어봤어도, 이외의 계기로 한국에 인연을 갖게 된 사람을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연스럽게 한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소소하게 서로의 군대 썰도 주고받았다. 제임스와 똑같이 나 또한 군 복무를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해방을 연신 축하했다.



美국에서 온 美친 형이었다.



무모함으로 치면 나도 꿀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제임스 앞에 선 나는 휴양객이나 다름없었다. 훨씬 용감하고 도전적이며 무지막지한 강심장을 가진 사람이었다. 가장 놀란 점은 그가 최근 우크라이나를 여행했다는 것! “예쁘고 물가가 싼 도시였”다고 말하는 그의 무덤덤함에 순간 국제정세를 잊을 뻔했다. 믿기지 않는다며 반신반의하자 그는 “미사일이 어디에 떨어지는지 알려주는 앱이 있”다며 우크라이나 서방의 아름다운 도시 “리비우(Львів, Lviv)”로의 여행을 추천했다. 



솔직히 좀 미친 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심했다. 행복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제임스의 모습을 보고 지금보다 더 무모해져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한바탕 수다가 오고 갔다. 슬슬 장거리비행의 여독이 몸을 뒤덮는 이른 오후였다. 제임스가 “국제 파티”에 참여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건넸다. 자세히 물어보니, 다목적 만남과 친목을 위한 커뮤니티 앱인 카우치서핑(Couchsurfing)에 개최된 파티였다. 당장 친구 사귈 고민만 하고 있었기에 제임스의 호의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파티라면, 정말 다양한 사람이 오는 건가? 정말 내가 한국도 아닌 프라하에서 인생 첫 파티를?” 파티의 분위기도, 파티에 참석해 수다를 떠는 나의 모습도, 어느 하나 전혀 예상이 되지 않았다. 제임스의 말로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 가볍게 술 한 잔 하면서 수다 떠는 자리라고 하는데... 여전히 흐릿했다. 



백문이 불여일견! 부딪혀보자.



“혹시...”로 시작해서 걱정으로 끝나는 종류의 물음표는 접어두기로 했다. 제임스를 믿고, 카우치서핑을 믿었다. 그리고 내 꿈과 바람이 줄곧 가리켜온 방향을 믿었다. 



설레는 마음을 다스린 채 파티가 열리는 술집으로 제임스와 함께 향했다.



우물 밖 세상 유럽 편 #003 - 마침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은 가명이며 이야기는 사실을 기반으로 각색되었습니다.

원저작물의 저작권은 브런치 작가 권민재에게 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Creative Commons, CC)에 따른 저작물의 인용을 허락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걱정, 긴장 그리고 기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