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민재 Dec 21. 2022

걱정, 긴장 그리고 기대

우물 밖 세상 유럽 편 #002

체코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나니 온갖 생각이 들었다. 해외여행 안내사항 정독을 소홀히 한 것은 없을까, 그로부터 말미암아 입국거부상태를 맞지는 않을까, 혹은 생각보다 배낭여행이 낭만적이지 않아서 우울해지지는 않을까, 그렇게 발생한 모든 문제와 불행은 온전히 홀로 짊어져야 할 책임인데, 과연 내가 그것들을 안고 갈 깜냥이 되기는 하는 걸까...



심지어는 배가 아파왔다. 출국 직전까지 입맛이 없었다. 티켓을 취소하는 방법을 알아보려고까지 생각했다.



장거리 비행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목이 조여지듯 극심해지는 허리통증은 나를 편히 재우지 않았다. (이때부터 시작된 허리 통증은 현재진행형이다. 괜히 돈 더 주고 비즈니스 타는 게 아니다.)



독일 뮌헨 공항에서 환승 절차를 밟아야 했다. 이제부터 한국어는 통하지 않는다! 이 단순한 사실이 처음엔 얼마나 큰 불안으로 다가왔었는지는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당연하게도 한글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난생처음 보는 단어들이 도처에 적혀 있었다. 독일어였다. 다행히 영어가 함께 적혀 있었지만 안심이 되진 않았다.



공항의 물가는 상상 이상이었다. 도매가가 마치 전설 속 도시국가 같았다. 말도 안 되게 비싸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물과 음식을 사지 않을 수는 없었다. 밖에서 사 오는 건 시간적으로 손해였다.



미친 뮌헨 공항 물가. 레드불 250ml 캔 하나가 7,000원이 조금 넘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사진 출처: 권민재)



간단하게 살라미 샌드위치를 시켰다. 영어로 주문하는 것은 내게 하나의 전투와 같았다. 실전은 난생처음이었기 때문에 매우 떨렸다. 순조롭게 주문을 하고 카드결제를 하려는데 유로화로 할 건지 달러화로 할 건지 묻더라. 처음 겪는 상황이라 순간 사고회로가 정지했다. 뭐가 어떻게 다른지 몰라 유로화로 결제했다. 샌드위치의 가성비는 역시 나빴다. 



뮌헨 공항에서 사 먹은 살라미 샌드위치(약 9,500원)의 영수증. (사진 출처: 권민재)



살라미 샌드위치의 맛은 나쁘지 않았다. 데워달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걸. 그때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데워달라고 부탁하려면 이렇게 말하면 된다.


“Can you gotta toast this one?”
=> 이거 구워줄 수 있어요?


일례로, 서브웨이(Subway) 주문 중 치즈를 선택하지 않자 “Do you want me to toast?”라고 물어보더라. “토스트? 잘 못 들었나?”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빵"을 뜻하는 “Toast”가 동사로 "굽다”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빵 굽는 기계"를 "Toaster"라고 하지 않는가. 직원은 치즈가 없으니 굳이 오븐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지 모르겠다고 판단하고 물어본 것이었다.



프라하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0시. 9월 말의 날씨라고는 믿기지 않을 추위였다. 입김이 나올 정도였다. 비가 온 직후라서 유독 추웠다.



구글맵스(Google Maps)로 호스텔 몇 군데를 검색했다. 가장 가까운 곳을 우선으로 찾아갔다. 처음으로 찾아간 호스텔은 허탕이었다. 영문은 모르겠으나 운영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초조해졌다. 이러다가 방을 못 구해 첫날부터 노숙하는 거 아닌가 걱정했다. 길에서 자다가 소매치기당하는 상상까지 했다. 서둘러 다음 호스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른 방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가성비는 생각 않고 속히 결제를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호스텔 치고 너무 비싼 가격이었다. 2박에 약 92,000원이었다. 앱으로 검색 좀 해보고 들를걸... 뒤늦은 후회였다.



호스텔을 구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호스텔월드(Hostelworld)나 부킹닷컴(Booking.com) 앱을 쓰는 것이다(Appstore 기준). 인터페이스가 워낙 간단해 쉽게 적응할 수 있다. (무슨 심보에서인지 난 이 앱을 구태여 사용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한바탕 헤매고 앱을 깔았다.)



큰 어려움 없이 6인실 방을 구하고 짐을 푸니 시간은 오전 1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극도의 불안함은 이제 어느새 극도의 피곤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침에 씻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이부자리도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채 매트리스에 몸을 뉘었다. 


호스텔의 특별할 것 없는 매트리스는
이 한 몸 뉠 곳 있음을 감사하게 만드는
신기한 물건이었다. 
이것이 외딴곳에 혼자 놓인 뒤
느낀 첫 감상이었다.



“날이 밝으면 도시를 제대로 돌아봐야지.”
"프라하에 사는 친구를 만들어야겠다."
“이 호스텔에는 어떤 다양한 사람들이 묵고 있을까?”

 

행복한 상상으로 왁자지껄한 내 머릿속은 서서히 정적으로 진입했다. 달콤한 고요였다.



우물 밖 세상 유럽 편 #002 - 마침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Creative Commons, CC)에 따른 본문의 인용을 허락합니다.

원저작물의 저작권은 브런치 작가 권민재에게 귀속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일단 떠나자! 가까운 일본부터? 어라, 근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