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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재 Dec 12. 2022

일단 떠나자! 가까운 일본부터? 어라, 근데...

우물 밖 세상 유럽 편 #001

 전역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여행을 마음먹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굳은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은 지금 떠나야 한다.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하고 싶은 것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은 과거의 나를
두고두고 후회할 거다, 분명히.
인생을 조급히 생각 말자.
이번엔 인생공부를 해보자.



 여행 준비는 어려울 게 없었다. 다만 지루했다. 대사관 안내사항을 하나도 빠짐없이 읽어야 했다.



 유럽 여행을 결심한 계기는 대관절 이러하다.

영어가 되는 유럽이냐, 일본어가 되는 일본이냐! (미국 배낭여행은 고수의 영역이라 판단했다.)

노숙을 해도 좋다! 안코드(Aancod)도 탈없이 잘만 여행해왔잖아!

워크어웨이(Workaway)를 활용해보자.



 안코드(Aancod)는 한때 지하철 버스킹 영상으로 입소문을 탄 세계 여행자이다(링크). 안코드라는 사람에 대한 존경을 가진 것은 <비정상회담>에 그가 출연하면서부터였다(링크 1:39). 정체성과 가치관에 혼란을 겪던 중 무일푼에 피렌체로 노숙을 하러 떠난 그의 이야기는 짧지만 강렬했다. 번듯이 인생을 살아내어 정확히 행복에 초점을 맞춘 채 흔들림 없이 삶을 가꾸고 있는 그의 모습이 바로 내가 동경한 인생의 상상도였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워크어웨이는 연회비를 지불하는 대신 호스트(Host)와 워크어웨이어(Workawayer)를 연결해주는 커뮤니티이다. 호스트의 종류는 다양하다. 베이비시터를 구하거나 농장, 목축 일손을 구하는 호스트에서부터 정원 가꾸기나 배수로 보수 등의 DIY(Do it yourself)를 테마로 하는 호스트, 심지어는 외국어 강사를 구하는 학교 선생님 호스트도 있다.


 

 다년간 탄뎀(Tandem, 언어교환 앱)을 통해 쌓은 경험치를 활용하고자 했다. 세계 이곳저곳에서 단체 언어교환 및 친목을 목적으로 하는 워크어웨이 호스트를 찾을 수 있었다. 신청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지만 막연한 불안감이 은근히 발목을 붙잡았다.  



 솔직히 말해서 필자의 언어 실력은 대단하지 않다. 영어 실력은 고등학교 영어 수준이고, 일본어 실력은 애니메이션 수준의 일본어였다. 하지만 한 가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이 때론 용기와 실천력을 불어넣어 주는 가장 좋은 기폭제가 된다는 사실이다.


     

코로나가 걸림돌이었다.
일본의 하늘길은 나 같은
배낭여행자를 반기지 않았다.



 2022년 9월, ‘주 대한민국 일본국 대사관(한국에 위치한 일본의 대사관)’ 홈페이지의 ‘비자 및 영사’ 안내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별다른 발표가 없는 한 ‘여행사를 끼지 않은 자유여행’을 제한한다."


“여행사를 끼면 솔로 자유여행도 가능하다는 뜻이잖아!”


 '여행사를 포함한 자유여행'을 위해 필요한 준비물을 확인했다. ‘접수필증’이 필요했다. 접수필증이란 외국발 코로나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이 특정지은 증명서로, 코로나 시국에 맞춰 특별히 만든 사증(비자)의 개념이었다. 접수필증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여행사의 사업자번호 등을 입력해야 했다. 여행사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여간 복잡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돈을 주고 여행사에게 대행을 맡기는구나...”


 심지어는 접수필증 하나에 50만 원 받고 발급해주는 부동산업자도 있었다.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접수필증 발급을 대행하는 것이 여행사업자등록 및 수익창출 증명보다는 훨씬 쉽고 빠른 것은 자명했다.



 워킹홀리데이 협력 사이트에서 워홀러임을 증명해서 접수필증을 발급받는 방법도 존재했다. 하지만 워홀은 한 개 국당 평생에 한 번 밖에 안 되니 섣불리 쓰고 싶지 않았다.



 나의 이론이 맞는다면 여행사를 찾아가 수수료를 지불하고 접수필증을 받는 게 가능했다.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이지 않은가? ‘나’라는 고객은 ‘한 달짜리 일본 자유여행 티켓 X 1명’을 필요로 할 뿐이었다. 겉보기에는 충분히 가능해 보이는 이 이론을 실험하기 위해 근처 여행사 두 곳을 방문했다.



 담당자가 말했다.

 “우리는 그런 상품을 판매하지 않아요.”

 “그러면 수수료를 낼 테니 여행사의 사업자번호를 가지고 접수필증 발행만을 대행해주신다면요?”

 “고객님께서 코로나를 의도치 않게 확산시킬 수도 있잖아요. 우리는 그런 리스크를 감당하지 않아요.”

 “...”



 너무 어리석었다. 50만 원이라는 거액을 받고 접수필증을 발행해주는 장사꾼이 있다는 점에서부터 예상을 했어야 했다. 상식적으로 일본의 코로나 정책과 나의 계획이 상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건 이미 여러 번 예상했다. 단지 내 발로 찾아가 확인받고 싶었다. 내 이론이 틀린 게 맞냐고, 나는 돌파구가 보이는데 이게 내 눈에만 보이는 거냐고. 당신이 도와주면 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단지 이해관계 때문에 내 꿈이 잠시 좌절되어야 하는 게 현실이냐고.     


  

 일본 배낭여행은 더 이상 손 쓸 수 있는 게 없어 보였다. 일본에 거주하는 가족이 있다면 초대를 받아 입국할 수 있지만, 그것은 내 이야기가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유럽으로 눈길을 돌렸다.



난생처음으로 바다를 건너는
여정인만큼, 여행에 테마를 두어
알찬 경험을 하고자 했다.



 첫 번째 테마는 스포츠 클라이밍이었다. 아담 온드라(Adam Ondra)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 중 한 명이다. 그의 모국인 체코에서 스포츠 클라이밍을 향한 그의 열정을 간접적으로 느껴보고자 했다.



인스브루크(오스트리아)에 위치한 Black Diamond의 TV 속 Adam Ondra. 그가 여기에 방문했을 적 영상이 송출되고 있다. (사진 출처: 권민재)



 두 번째 테마는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연락만 하고 지낸 외국인 친구들을 직접 보고 싶었다. 이미 알고 지낸 친구들 말고도, 배낭여행하면서 마주칠 우연한 인연을 기대했다.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이든 상관없이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었다. 주욱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실리를 추구하지 않는 순수한 수다를 떨고 싶었다.



 명확한 테마를 정하니 두 달 동안 심심할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를 다 둘러보았다면 클라이밍 센터를 찾아가면 된다. 몸이 지쳤으면 책을 읽으면 된다. 고독이 지겹다면 사람에게 다가가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각오하고 떠나는 배낭여행이기에 겁 낼 이유가 없었다.     



 결심이 서자마자 120만 원짜리 왕복 티켓을 끊었다. 그리고 확신이 들었다. 이 120만 원짜리 결정이 내 인생에서 티끌 하나의 후회조차 없을 선택이 될 거라고.     



우물 밖 세상 유럽 편 #001 -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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