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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 미술관에서의 동상이몽

나에겐 보물, 아이들에겐 그냥 그림.

by 이지영

여행코스

오르세미술관 - 프랑스가정식(feat.에스까르고)-약국쇼핑-셍제르맹 거리(봉마르쉐 백화점) - 개선문


사실상 파리에서의 마지막날이다.

이렇게 빨리 지나가버리다니. 나는 빠리랑 너무 잘 맞는거 같은데...

눈을 뜨자마자 아쉬움이 가득한 넷째날 아침이다.


어제 플렉스한 아침과 달리 오늘은 한식으로 떼우기로 했다. 캡틴의 야심작, 전투식량처럼 생긴 비빔밥과 끓인 라면, 컵라면과 볶음김치 그리고 파리의 맛있는 망고쥬스가 곁들어진 조식이다.


팬시한 까페에서의 브런치도 황홀하지만, 아이들과의 여행에서는 씻기 전에 눈뜨자 마자 부스스한 머리로

눈꼽만 떼고 따뜻한 국물에 호로록 먹는 라면

꿀맛이다.


매일 매일이 눈뜰때마다 행복으로 가득한 여행이다.

이런 날들이 최근 들어 있었던가?

이제는 만나이로도 빼도박도 못하는 40이 되고나니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재미없었었는데,

설레임과 순수한 즐거움 가득채워진 하루를 시작하는게 얼마만인가 싶다.



오늘은 오르세 미술관을 가는 날이다.

대학교 2학년 1학기, 나는 친한 친구의 추천으로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교양수업을 들었었다.

그 수업이 내 인생의 미술사와의 첫만남인데, 그때 이후로 나는 그림이 너무 좋았다. 한때는 학예사를 한번 해볼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대부분 부잣집 딸래미들의 자리이고 나머지 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한다기에 일찌감치 마음을 접고 업이 아닌 취미로 남기기로 했다. 그냥 한번 해볼껄.


지나고나니 그냥 한번 해볼껄 하는 순간들이 참 많다. 그래서 이제라도 매 순간 그렇게 살아봐야지. 생각한다. 아이들에게도 자주 그런 잔소리를 하곤한다. 엄마는 실패가 두려워 포기했던 모든것들이 너무나 아쉽다고. 그러니 너희들은 그냥 눈 딱 감고 해보라고. 창피한 건 순간이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보다 나한테 관심이 없다고.


미술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그렇듯, 나는 변기 하나 가져다 놓거나 혹은 바나나를 벽에 붙여놓고 예술이라고 하는 현대미술 보다는 사진기가 없던 시절 오랜시간을 공들여 실제보다 더 실제같은 아름다움을 표현한 르네상스 고전 미술이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이 좋았다. 인상주의 화가의 그림이 잔뜩 모여있는 오르세미술관은 그런 의미에서 나에겐 이번 여행에서 고대했던, 설레이는 코스다.


우리집 T 캡틴은, 선언했다.


"그날 나는 오랑주리로 갈께. 여보가 1,2호랑 오르세 다녀와. 오르세는 여보가 설명해줘야해."


해석하자면, 그림에 큰 감흥없는 캡틴은 그림으로 잔뜩 채워진 오르세는 가고 싶지 않으니, 모네의 수련

한작품으로 가득찬 오랑주리로 가서 인상파는 살짝 느끼되, 나머지 시간은 혼자 공원에서 즐기겠다, 이말씀.

애들은 파리까지 왔으니 유명한 건 보고 가야 하니 나와 같이 가야 한다는 말씀. 그리고, 오르세는 가이드가 없다는 말씀. 거기까지 돈을 쓰지는 못했다는 말씀.


좋아해서 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이기지 못한다고 했던가. 긴 휴가 전 업무 처리로 바쁜 와중이었지만

유일한 여행준비로, 나는 '나만의 도슨트, 오르세미술관:전문가의 맞춤해설로 떠나는 19세기 미술여행'을 빌려 마침내 파리 도착전에 책을 다 읽어냈다. 비록 술술 설명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오르세가 기차역을 개조하여 미술관으로 만든 곳이라는 것, 인상파 화가의 계보, 전시된 유명작품들에 대한 얕은 지식을 퍼담고

살짝쿵 가이드로서의 부담감을 어깨에 얹고 오르세로 향했다. 이른 시간이어서 인지 거리에 사람이 없었다.


이른 아침 파리의 거리, 나를 찍어주는 캡틴. 관식이 안부럽네 :)

햇볕이 쫘악 내리쬐는 파리의 거리를 걷는다. 아이들도기분이 좋은지 하이텐션이다. 지나치게.

왠지 모를 긴장감을 안고 오르세 개장 시간에 맞춰 줄을 섰는데 뒤에는 삼남매와 함께온 가족이 있었다.

이쁜 딸둘과 듬직한 아들, 고상하고 우아하면서도 젊은 감성으로 옷을 입고 오신 엄마와 아빠.


우리도 20대가 된 아이들과 여행올 수 있겠지? 그땐 누가 캡틴처럼 계획을 짤까? 진짜 잘키우셨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바로 첫째딸과 둘째딸이 투닥거리며 싸운다.


"언니 올린다고 하고 사진 안올리잖아. 무슨소리야 내가 카톡에 사진 다 올렸잖아. 이상하게 말하넹망러;ㅣ마어리;ㅓ아"


음. 어느 집이나 다 똑같은가보다. 누구의 삶이든 즐거움과 기쁨도 있지만 고난과 고통도 있다.

화려한 겉모습에만 속지 말자. 나역시 SNS에 내가 버럭하는 순간은 없고 행복한 순간의 나만 남기지 않나?

사람 사는거 다 거기서 거기다.


쓸데없는 생각에 빠지고 있는 와중에 캡틴은 나에게 입장하자마자 5층에 가서 시계 앞 포토스팟에서 사진을 찍고 5층에 있는 인상파 화가의 작품을 보고 나오면 된다고 동선까지 빠르게 교육시키고 유유히 사라졌다.

오픈런을 위한 줄. 나의 표정은 아이둘과의 관람이 어떠할지 예상한듯 밝지않다. 포토스팟을 알려주고 홀연히 떠나는 캡틴


우리는 입장하자마자 캡틴의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5층으로 가는 엘레베이터를 찾는데 쉽지가 않다.

기차역으로 변신한 미술관으로 내리쬐는 햇살을 느끼기도 전에 인포메이션 데스크로 향했다.


"있잖아, 5층으로 가는 엘레베이터...."

"저기로 쭉가"


이미 많은 한국인들이 물어봤는지, 내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쭉 가란다.


5층에는 이미 우리를 제외한 한국인들이 시계앞에 줄지어 서있었다. 진짜 거짓말 안하고 ONLY 한국인들만

있었다. 기똥차게 사진이 이쁘게 나오는 곳은 맞았다. 미션 수행 후 드디어 작품을 만나러 간다.


벼락치기로 공부한 오르세의 인상파 작품과 작가에 대해 하윤이와 아윤이에게 설명을 했지만, 아이들은

왠일인지 어제의 루브르와 달리 엄마 가이드의 말에는 귀를 기울일줄을 몰랐다. 나원참. 나 열심히 공부했다고 얘들아. 정말 유명한 책에서만 본 작품들이 눈앞에 펼쳐졌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관심 밖이었다.

엄마표 공부가 어려운 이유. 우리가 돈을 쓰며 아이들을 사교육에 맡기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란 말이다.


열정 가득한 K-엄마의 뒤로 2호가 갑자기 자기 말에는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며 기분이 상했다.

이거 말고도 몇번의 고비가 있었는데,

나는 진짜 진지하게, "오늘은 엄마가 정말 많이 기다린 날이고 여기서의 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아"

라고 화냈다. 그래서일까? 2호는 입술은 삐죽거리고 있었지만 기분을 풀려고 준비 중이었고 ㅎ

1호는 내가 주문하는대로 포즈를 취하고 나도 찍어준다. 아이들도 노력중이었다.



고흐, 고갱, 모네, 마네..등등 마스터피스를 마주할 수 있는 순간인데, 사실 나도 가이드로서의 부담감 때문인지 좀처럼 그림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어제의 루브르에서의 감동을 다시금 느끼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이미 지쳐있었다. 정말, 하루종일 오르세에 있어도 될 정도로 많은 작품들이 있었다.


고흐의 그림을 앞에 두고도 다리가 아픈 아이들.




우리는 5층에서의 관람을 마치고 2층으로 내려갔다.

2층에는 로댕의 지옥의 문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로댕이 왠말이겠는가? 차라리 쟤들을 놓고 나혼자

가는게 낫겠다 싶은 결론에 이르렀다.

이건, 12년간 애 둘을 키워온 짬바에서 나온 오늘 제일잘한 선택이었다.


지옥의 문. 문 위쪽에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2층 의자에 앉아있으라고 한 뒤 혼자 로댕의 작품으로 향했다.

지옥의 문 뿐만아니라, 까미유끌로델의 작품도 있어 작품을 함께 감상할 수 있었다.


한껏 감상에 젖어 로댕의 작품을 하나하나 눈에 담고 아이들에게로 돌아가는데, 여기서 2차 빡침이 올라왔다. 그 오르세에서 얘들은 왜인지모를 하이텐션으로 웃고 떠들며 장난을 치고 있었고 그런 나의 두딸을 옆에 앉은 외국인 관광객이 쟤들은 뭐하는건가.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만 또 화를 내고야 말았다. 조용히 좀 하라고. 라고 한 뒤, 인상을 찌푸리고

이내 "엄마 사진 한장 찍어봐"라고 주문헀다.


그리고 우아한 관람객 모드로 사진을 남긴뒤 아쉬움을 꼬리에 꼬리 물듯 남기고 기념품샵으로 향했다.


속으로, 그래 내가 니네들이랑 무슨 미술관이냐. 에라이, 하면서.


어제 루브르 기념품샵에서 만지작거리다 한화로 열심히 환산하면서 에이, 뭘 이런걸 하는 마음으로

내려놓았던 에펠탑 책갈피가 잔상으로 남아 이번엔, 아끼지 말고 여기서만 살 수 있는 것들이라면,

이곳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이라면 과감히 사자! 하는 마음으로 여러개를 집어들었다.

아이들에게도 망설이지말고 파리를 추억할 수 있는 것이라면 사라고 얘기 한뒤 각자 계산하도록 했다.

아이들은 이번 여행에서 용돈으로 직접 계산하는 재미를 톡톡히 봤다. 그 모습이 기특해 사진도 많이 남겼다.



사실, 오르세는 나중에 꼭 한번 다시 파리를 찾아서 방문하고 싶은 곳 중에 하나다.

조금은 여유로운 일정으로 하루정도는 오르세만을 정해두고 온다면 그림도 보고, 박물관 내의 까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하면서 오롯이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나 싶다.


캡틴과의 약속의 시간 11시가 다가와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오늘도 여전히 맑은 파리.

그리고 우리 가족 다시 합체.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굴 표정으로 캡틴에게 한껏 고충을 토로한 뒤

우리는 파리 거리를 걸었다.


날씨가 맑아지니 기분이 한결 상쾌해졌다. 신나서 걸으며 사진을 찍는데, 역시나 진리의 한국인!!!

우리처럼 딸둘과 여행오신 예쁜 분이 마음까지 예쁘셔서 우리를 보자마자 사진찍어드릴까요?

라고 말을 건네주셨다.


냉큼 "네!!"하고 진짜 그림같은 사진을 찍어 주시고

떠나셨다. 우리는 또 단일민족 아닌가. 어쩌면 이런게 한국인의 정서가 아닌가 싶기도.

이 먼 타국땅에서도 얼굴만 봐도 알아보는 우리는,

사진이라도 한장 찍어 주고 마음을 나눈다.


우리의 다음 코스는 프랑스가정식 체험하기였다. 사실 여행 전에 나는 섹스앤더시티 마지막 시즌에 캐리가 이상한 러시아 예술가를 따라 파리로 갔을때, 그의 전처와 함께 식사를 했던 그런 멋드러진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정도는 한끼 해야 하는거 아닌가 생각했었다.


파리하면, 또 괜찮은 디너 한번 먹어줘야 하는거 아니야? 하면서. 그런데 우리의 캡틴은 하윤이가 먹어보고싶다던 에스까르고를 포함하여 코스를 제공하는 가성비 좋은 "프랑스 가정식" 식당을 찾아내었다. 미리 예약까지 마친 그곳으로 향했다.


사실 예약할 필요가 없지 않았나 싶을 정도의 작은 식당이었다. 연세가 지긋하신 노부부 두분과 다소 괴팍해 보이는 유럽 할배 한분이 서빙을 계셨다. 다양한 메뉴로 하나씩 주문한 뒤 기대에 차서 기다렸다.

그래도 나름 코스 요리잖아?

하지만, 우리는 잊지말아야했다.

"가성비" 코스라는 사실을.

에스까르고는 인상적이었지만, 나는 골뱅이가 떠올랐다. 소고기 스튜는 남편입맛엔 별로였지만 고기를 좋아하는 2호는 제법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골뱅이 맛이 나는 에스까르고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고, 결론적으로 "우리는 프랑스 가정식이랑은 안맞나봐" 라는 말을 남기고 나왔다.


한국인들의 리뷰에 많이 올라와서인지 식당 인테리어 시계 세계 중 하나가 SEOUL 의 시간을 가리키고 있어 반가웠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가성비코스가 아니라 프랑스 정통 코스 요리였으면 좀달랐을까? 'ㅡ'a


아쉬운 점심식사를 마친 뒤, 인터넷에 "프랑스 여행"이라고 검색하면 빠질 수 없는 코스, 약국쇼핑과 백화점 쇼핑을 하러 갔다. 제일 유명한 몽쥬약국은 아니었지만 약국 안에는 관광객과 점원들로 가득했다. 원래 사려던 NYM오일을 한 점원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물었지만 없단다. 내가 찾는건 죄다 없다는데, 북적거리는 사람들로 살짝 기가 빨리는 듯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나는 굴하지 않고 다른 점원에게 다시 물어봤다. 이봐 이봐,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지어다! 이번 점원은 친히 그 화장품이 있는 곳까지 나를 안내했다.

여기서 얻은 교훈. 한번만의 시도에 절대 포기하지 말자.


약 몇가지와 한국보다 반이상 싼 샴푸 몇개를 주어 담으니 제법 손이 묵직해졋다. 아이들도 함께 쇼핑을 하고 우리는 이 도깨비 시장을 빠져나왔다.

각자 쇼핑꾸러미 들고.

다음 코스는 파리의 압구정 갤러리아 라는 "봉막쉐"백화점.

원래 오르세 코스에서 캡틴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만큼, 이곳에서는 내가 혼자만의 쇼핑시간을 보내고,

캡틴이 아이 둘을 데리고 근처 공원으로 갈 예정이었지만 아이들은 늘 계획대로 되질 않지.

갑자기 엄마랑 떨어지기 싫다면서 우리는 넷이 함께 백화점으로 향했다. 이미 많이 지쳐 있을 아이들이 내 쇼핑을 망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_ -;;



봉막쉐 백화점은 식료품이 유명하다던데, 그 중에서도 각종버터가 맛있고 진공포장도 해줘서 많이들

사간다고 한다. 백화점은 파리지앵 감성이 잔뜩 묻은 이쁜 옷들로 가득하고 내가 평소 애정했던 이자벨마랑, 꼼뜨와데꼬또니에, 인스타 광고로만 봤던 세잔, 모르는 브랜드지만 컬러풀한 디피로 이래도 구경 안할래? 하며 나를 유혹했다. 하지만, 갑자기 엄마 껌딱지된 아이들 덕택에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고야 말았다.

결국 그 유명하다는 식료품코너는 가보지도 못했다.


기분이 한껏 다운된 1호

캡틴과 아이들을 남기고 '이미지 리퍼블릭'이라는 브랜드의 카드 코너에서 엄청나게 카드를 사재기 하고 옷도입어봤지만 이내 남겨둔 아이들과 캡틴에게로 복귀할 수 밖에 없었다. 이거슨. 엄마의 운명. 그 누구도 빨리오라고 하지 않았지만 기꺼이 돌아간 나는, 잔뜩 삐져있고 서로서로 기분이 안좋은 캡틴과 1,2호를 발견한다.


나 역시 꾹꾹 눌러왔던 감정을 폭발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이렇게밖에 시간을 보낼수 밖에 없다니.

역시 아이들과 쇼핑일정은 욕심이었던 것인가. ㅠ

50살이 되면 파리에 다시 오자고 캡틴에게 몇번이고

말했는데, 이렇게 파리에 다시 와야만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파리의 마카롱으로 아이들을 반짝 일으키도록 당충전을 시키고 우리는 캡틴의 유일한 쇼핑목록,

이강인의 유니폼을 사러 파리 생제르맹 매장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갑자기 충전된 당때문인지 또 엄청난

텐션을 뽐내며 웃기지도 않은 일에 깔깔 거리며 길을 걸었다. 드디어 생제르맹매장으로 캡틴을 들여 보내고

우리는 약간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어디 들어가 간단히 요기거리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샹젤리제 거리 테라스에 있는 까페들은 가격도 사악했지만, 자리도 없었고 그놈에 담배연기가 또

우리를 불편하게 했다. 아이들에게 우리 그냥 저녁을 먹으러 가자며 앉혀 놓고 나는 결정장애가 있는 캡틴의 쇼핑을 도우러 매장으로 들어갔다.

역시. 캡틴은 물건을 들고 꿈뻑 꿈뻑 한참을 고뇌에 잠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카롱과 함께 잠시 잠깐 찾아온 평화

재빠르게 이거 입어봐라, 저거 입어봐라 하고 있는데, 이게 또 왠일이여. 그렇게 업된 텐션으로 죽고 못살

자매들로 앉아있던 아이들이, 이번엔 1호가 엉엉 울면서 "2호가 나 때렸어"라며 매장안으로 들어온다.


"야야야야야!!!!!!뭐하는거야 지금!!!"


나는 또 참지 못했다. 그런 내가 싫었지만, 난 이미 폭주하고 있었다.(난 배가 고프면 더 예민해지는 경향이 있다. ) 애들은 잔뜩 주눅이 들었고, 캡틴과 나는 힘겹게 결제를 하고 택스리펀까지 받고 나왔다.


맛집을 찾을 여력조차 남아있지 않아, 우리는 그냥 눈에 보이는 파스타 집으로 들어갔다.

기본은 하겠지. 파스타인데. 그 와중에 캡틴이 무료로 주는 탭워터와 유료인 스틸워터를 고민하길래

아직 배고픔을 해소하지 못해 예민상태인 나는, 아 그냥 스틸워터 시켜!!! 하고 통크게 스틸워터 한병을 주문했다. 그리고 애들한테는 훈계 아닌 훈계를 하고 있었다.


맛은 없었지만, 아이들은 한국에 돌아온 한참 뒤에 파리에서 먹었던 파스타 맛있었다고 고백했다.

아마 그건 배고픔과 구박 속에서 맛본 파스타 였기때문이었을까?


그렇게 다시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오늘의 마지막 코스 개선문으로 향했다.

가까이서 본 개선문은 그 규모가 압도당할 만큼 웅장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곳.

캡틴은 프랑스의 곳곳에 그 뜻이야 어쨌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들을 기리는 곳이 마련되어 있고, 많은 행사가 있는 것이 참 인상적이라고 했다.


개선문은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었는데, 체력이 저질인 나는 이탈리아 피렌체 조토의 종탑을 생각하며

내가 과연 이 마지막 일정을 해낼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역시 늘 그렇듯 캡틴은 이미 개선문 입장권을

전부 예매해 놓았기 때문에 올라가지 않는 것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걱정을 잔뜩 안고 계단을 헉헉 거리며 올랐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꼭대기에 이르렀다.

조토의 종탑에 비하면 누워서 떡먹기 수준이었다.

개선문 정상에서 바라본 파리시내는 말해뭐해.

노을 진 파리의 전경을 바라보며 눈으로 꾹꾹 눌러담았다. 저 끝에 보이는 에펠탑도, 샹젤리제거리도, 쭉쭉 뻗어 계획된 도시의 자태를 뽐내는 파리의 모든 것들을.


그렇게, 파리의 마지막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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