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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제 Jul 30. 2020

흥미진진한 한글

오묘한 문자, 한글

한글은 문자 체계의 갈래로 보면 라틴글자와 가나처럼 소리글자다. 소리글자 중에서도 한글과 라틴글자는 음절(소리마디)에서 자음과 모음을 분리할 수 있고, 가나는 음절에서 자음과 모음을 분리할 수 없다. 뜻글자인 한자는 자음 모음 개념이 없다. 한편 문자 형태를 보면 한글은 한자나 가나처럼 네모틀에 맞춰서 쓰지만, 라틴글자는 자음과 모음 글자를 옆으로 나열해서 네모틀에 갇혀 있지 않다. 문자 연구자들은 한국어가 음절 단위로 끊어져서 글자 또한 네모틀 안에 한 음절을 가둔 것이라고 한다. 


한글의 특질을 정리하면, 한글은 자음 모음이 분리되는 소리글자이고 자음과 모음은 네모틀 안에 상하좌우로 모인다.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보고 배운 한글이기에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한글을 그리는 디자이너의 눈에 이러한 한글의 특질은 흥미로울뿐더러, 디자이너에게 다양한 한글 형태를 상상하게 만드는 근원이다.


한글을 그릴 때, 창제 당시처럼 한글을 네모틀에 맞춰서 그리면 글자의 획 수에 따라서 자음 모음 글자 크기와 공간을 조율하고, 모든 낱글자를 시각적으로 같은 크기와 균형이 유지되도록 디자인한다. 이러한 조율이 완벽하면 낱글자에는 바르고 단정한 멋이 나타난다. 반면 한글을 소리글자라는 문자 특질을 살려서 그리면 획 수와 낱자 수에 따라서 글자 면적이 서로 달라지고, 율동감이 생겨서 경쾌한 멋이 나타난다.


오래전 한글을 네모틀 안에 맞춰서 디자인해야 한다는 쪽과 네모틀을 벗어나야 한다는 쪽이 대립했던 적이 있다. 각자의 경험과 신념 그리고 취향이 뒤섞이면서 무엇을 위한 논쟁인지 모호해진 부분도 있지만, 두 모습 모두 한글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반영한 것이라서 어느 하나만 옳다고 말할 수 없다. 단지 한글을 한자 그리듯이 할 수도 있고 라틴글자 그리듯이 할 수도 있는 선택지가 많아서, 디자이너가 상황과 조건 등에 맞춰 선택할 뿐이다. 


왜 세종임금님은 디자이너에게 여러 선택지를 주셔서 고민하게 하셨을까 생각해 본다. ‘작업’ 중독자인 나에게 한글의 이러한 특질은 다양한 상상을 하게 하고 여러 조형 실험을 하게 만드는 원천이라서 즐거울 따름이다. 한글의 흥미로운 특질을 이용한 다양한 한글 디자인이 나타나 풍요로운 시각 문화를 기대한다.


* 자음, 모음은 소리를 나타내는 말이고, 자음에 해당하는 글자는 닿자, 모음에 해당하는 글자는 홀자라고 한다. 

** ‘ㄱ’ ‘ㄴ’ ‘ㅏ’ ‘ㅑ’ 등의 닿자와 홀자는 낱자라고 하고, ‘가’ ‘각’ ‘간’ 등을 낱글자라고 한다. 


읽으면 좋은 책:: 

제프리 샘슨(Geoffrey Sampson), 『세계의 문자체계』. 신상순(번역) (한국문화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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