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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 May 09. 2023

03. 체하지 않게, 조금씩 천천히 자연식물식!

건강, 동물, 환경, 모두를 위한 식단

내가 채식을 시작하게 된 것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서였다. 2021년 1학기, 나는 불면증을 겪었다. 학교 일이 너무 바빴고, 새벽 1~2시까지 해야하는 일을 하다가 잠자리에 들려니 잠이 바로 오지 않았다. 내일에 대한 불안감과 오늘 있었던 일을 반추하는 습관이 날 괴롭혔다. 조금밖에 못 잔 다음 날이면 극단적으로 생각이 흘렀다.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수업에 지각과 결석도 많이 하면서 수면을 잘 컨트롤하지 못한다는 것, 내 삶을 잘 관리하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느꼈다.

그래서 여름 방학 때 다른 일은 집어치우고 내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기로 했다. 행복한 삶에 대한 마음은 절박했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평소 구독하고 있던 셀프케어 유튜버 라홀님의 클래스도 신청했다. 이 클래스는 이너뷰티, 운동, 수면, 스트레스 관리, 자기 자신을 잘 돌보는 법에 대한 총론적인 코칭 프로그램이었다. 가격이 너무 비쌌지만, 이걸로 평생 가지고 갈 습관을 만들고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다면 충분히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가장 처음 배웠던 것이 이너뷰티 식단이었다. 강의에 따르면 장 건강은 피부 건강뿐만 아니라 뇌와도 연결돼있어서 행복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장 속에는 유익균과 유해균이 있는데, 이 좋은 균과 나쁜 균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에 따라 피부가 달라진다고 했다. 유해균은 지방분해를 귀찮아 해서 더 많이 살찌고 그런 음식들을 계속 땡기게 하는 반면에, 유익균은 지방분해를 열심히 해줘서 먹는 것에 비해 덜 살찌게 해주고 건강한 음식들을 더 땡기게 해준다고 했다. 유해균에게 먹이가 되는 음식들은 동물성 식품-고기, 생선, 계란, 우유, 치즈 및 관련 식품들-과 가공식품-기름과 설탕, 합성첨가물이 함유된 음식들-이라고 했다. 유익균에게 먹이를 주는 음식들은 과일, 채소, 현미, 구황작물과 통밀과 같은 건강한 녹말식물식이며, 이것들을 “자연식물식”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이너뷰티, 즉 내면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상태는 셀프케어의 다른 기둥들인 운동, 수면, 스트레스 관리와도 영향을 주고받고 이것들이 다 잘 세워졌을 때, 깨끗한 피부와 날씬한 몸매, 넘치는 에너지는 따라오는 것이라고 했다.


“자연식물식은 동물성 식품을 배제할 뿐만 아니라 기름과 설탕도 최대한 배제하고 최소한으로 요리해 원물 그대로 먹는 거에요.” 이렇게 말하면 그럼 도대체 뭘 먹어야 하냐고 물을 것이다. 나도 당위성만 알고 방법을 몰랐다면 채식을 시작했을 때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러나 클래스는 왜 해야하는지뿐만 아니라, 어떻게 할 수 있는지까지 제시해주었다.


과일식, 통밀빵, 통밀국수, 현미밥, 비빔밥, 김밥, 카레, 구황작물, 요거트, 샐러드, … 레시피들과 재료들의 구입처도 알려주었다. 생소한 식재료들도 많았고 요리도 정말 안 해봤는데 내가 직접 장을 보고 도전해보기 시작했다. 물론 방학 때는 본가에서 살고 있었고 돈도 클래스에 투자하느라 다 썼기에 당장에 여러 가지 시도해보지는 못했다. 초기엔 엄마가 해주는 반찬 먹느라 독소음식 먹을 때도 많았지만 가능하면 비빔밥이나 구황작물을 먹었고 아침 과일식을 지켰다. 또 식사시간 사이에 군것질 하거나 야식 마구 주워먹는 것도 참고, 먹고 싶을 때는 물 마시거나 과일 먹거나 했다.


(왼쪽) 물복숭아 맛있엉 여름이라 먹을 과일이 풍성했다. (오른쪽) 가장 쉬워서 많이 해먹었던 연두부 비빔밥.


2주차 정도만 했을 때부터 눈에 변화가 보였다. 뱃살이 슬림해졌고, 피부도 더 생기있는 느낌이었다. 방학이 끝날 때 몸무게를 재보니 3~4kg이 빠져있었다. 체중감량이 중요한 건 아니었지만 이 결과가 너무 신기했다. 소화가 잘 되는 음식들을 먹으니 매일 아침 일정한 시각에 쾌변을 하게 됐던 게 컸던 것 같다! 대학교 입시 끝나고 살 좀 빼보겠다고 힘들게 운동했을 때는 그렇게 빠지지 않던 살이, 굶지도 않고 많이 힘들이지도 않았는데 쑤욱 빠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찾았냐고 묻는다면 또 그렇진 않다. 일단은 수면과 스트레스 관리도 잘 해줘야 자연식물식도 잘 할 수 있는 건데 가장 내게 필요했던 그것들을 잘 못 했다. 여전히 피곤하고 에너지가 없을 때가 많다. 계속 노력해가는 중이다. 자연식물식도 외식을 많이 하고 피곤할 때 독소음식들이 땡겨서 먹으니 거리가 멀어지기도 한다. 한때는 독소음식이 먹게 될 때마다 죄책감이 너무 많이 들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많이 무뎌졌다. 그리고 내 자신을 비건이라고 정체화하면서 독소음식도 비건이기만 하면 가공이 많이 됐더라도 그래도 식물성이니까 더 낫겠지란 생각으로 많이 허용하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지향하는 방향은 자연식물식이다. 이미 안 좋은 음식들이 내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고 있고, 이제는 좋은 음식들에 몸이 적응해서 안 좋은 걸 먹었을 때 반응도 전보다 더 민감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 거액으로 투자한 만큼 그 전으로 돌아가는 건 바보같이 느껴진다.



비건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환경과 동물을 위해서도 자연식물식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비건과 자연식물식이 다르지만 비건이 그 본질에 더 가까워질수록 자연식물식과 유사해진다. 더 자연상태인 것으로 먹을수록 환경과 동물에 좋은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팜유가 있다. 비건 가공 식품들에 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팜유인데, 팜유가 만들어지는 팜나무를 만드는 데에 엄청 많은 숲이 파괴된다고 한다. 또 조리를 많이 하고 가공을 많이 하면 할수록 물과 불과 다른 자원들이 많이 소비된다. 제철과 유기농 과일 채소는 또 어떤가. 영양이 더 좋을뿐만 아니라 인위적으로 재배하지 않음으로 에너지를 덜 써서 환경에 더 좋다.


비건을 한다고 해서, 방법도 없이 비건 가공식품들을 사먹는 친구들을 보면 안타깝다. 동물과 환경만 위하고 나 자신을 우선순위 뒤에 두는 것은 지속가능한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채식을 하는 우리가 건강해야 이 비거니즘 운동도 오랫동안 할 수 있다. 그리고 채식 문화가 건강하게 이끌어져야 다른 사람들이 채식의 건강하지 않은 사례만 보고 “에잉쯧, 비건 그거 하다 쓰러져.” 이런 소리 안 들을 수 있다.


자연식물식은 돈도 아껴준다. 비건을 하는 게 비싸다고 말하고들 하는데, 사실 그건 남들이 만들어놓은 비건 식품을 사먹어서 그렇지, 직접 채소와 과일을 사먹고 다른 군것질을 줄이면 오히려 더 식비는 아껴진다. 또 자연식물식을 시작하면 고장났던 맛 중추가 회복돼 원물 그대로의 맛을 즐기는 입맛이 된다. 계절에 맞게 찾아오는 과일들과 채소들을 맛보며 자연의 변화를 음식으로 느낄 수도 있게 된다. 이런저런 장점들이 많으니, 그동안 비건만 했다면, 또는 건강하고 지속가능하게 살을 빼고 싶다면, 자연식물식을 해보길 권장한다.


당연히 자연식물식, 쉽지만은 않다. 이 세상이 인간이 700만년 동안 해온 식단이 아니라, 온갖 고기 기름 파티 하는 게 당연하고, 원래 인류가 먹던 대로 먹겠다는 사람이 이상해 보이는 세상이니까. 또 비건식보다도 더 안 알려져 있는게 자연식물식이라 내 식단을 설명하기 어려움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이 내 건강을 위해 옳은 식단이고, 정말 나를 위하고 사랑한다면, 어렵더라도 방법을 찾아야 할 일이지 그만둘 일은 아니다. 


늘 완벽보다는 꾸준함임을 기억하자. 이것 또한 나를 위한 일인데 지속가능하고 행복하게 해야하지 않겠는가. 자연식물식을 먹을 때는 즐겁고 나를 돌보는 마음으로, 어쩌다 독소음식을 먹게 될 때는 그로 인한 결과들에 대한 책임은 내가 감수하기로 맘먹고 이왕 먹는 거 행복하게 먹자. 너무 급한 변화는 몸에도 마음에도 부담이 되니 체하지 않게 시작해보자. 조금씩 천천히, 자연식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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