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초등생활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아이들이 집에 가는 순간까지, 온종일 나를 따라다니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마치 그림자와 같아서 내가 어디에 있든, 누구와 이야기를 하든 항상 나의 곁을 지키고 있다. 내 직업이자 위치, 아이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이기도 한 ‘선생님’ 이 바로 그 그림자이다.
“선생님, 다음 시간 뭐해요?”
“선생님, 00 이가 때렸어요.”
“선생님, 물티슈 써도 돼요?”
(몇 번인지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수없이 밀어닥치는 ‘선생님’의 홍수 속에서 나는 때때로 정신을 못 차리곤 한다. 누가 선생님을 불렀는지 놓칠 때도 있고, 왜 선생님을 찾는지 금방 들었는데도 깜빡할 때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결코 선생님의 상황을 봐주지 않는다. 오히려 더 다급한 목소리로 “선생님!”이라고 외칠뿐이다. 물론 이해는 된다. 선생님 입장에서야 1 : 다수이지만 아이들 입장에서 나와의 관계는 1:1 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역지사지’의 뜻도 열심히 설명해보았지만, 아직 타인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꽤나 힘든 일인 것 같다.
대도시 학교에 발령을 받고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교직 생활을 이어간 지 3년, <아직도 ‘선생님!’ 부름이 밀려올 때 대처방안>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신규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해결방안을 찾아내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가 않다.
우선 현실적으로 [교사당 학생 수] 문제를 맞닥뜨린다. 교육부가 발표한 ‘2019~2030년 중장기 교원 수급계획’에 따르면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2015년 기준 초등학교 16.8 명인데 이 수치를 2022년까지 15.2 명에 맞추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16.8 / 15.2라는 수치는 ‘평균값’이다. 현재 내가 품고 있는 아이들은 24명으로 작년과 재작년(28명)에 비해 인원은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평균값을 웃도는 수치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마, 나 때는 한 반에 50명, 60명씩 지내고 그랬어 마!”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부모님 세대가 학교에 다닐 때는 어떻게 한 교실에 저렇게 많은 인원이 다 들어갈 수 있고 함께 생활을 할 수 있었는지 사실 믿기지가 않는다. ) 아직 20대 후반인 나도 나 때는 한 반에 36명, 38명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현재 24명이라는 학생 수는 참 적게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교육 방식, 교육 환경이 변화하면서 ‘교사당 학생 수’는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교육의 질 문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전과 같은 보편 일률적인 교육이 아닌, 학습자에 따른 맞춤형 수업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특히나 ‘학생 수’ 문제는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수치이자 기준이 되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 깊이 살펴봐야 할 요소들도 많기 때문에 차치하고, 결국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쉬움과 미안함이다. 반 아이들 한 명 한 명 더 신경 써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 말이다. 생각해보면 오늘도 몇 명의 아이들과는 개인적으로 한 마디도 나누지 못한 것 같다. 내게 밀어닥치는 “선생님!”의 부름 속에 그 아이들은 빠져 있었던 것을 나는 미처 알지 못한 것이다. 내게 초능력이 있다면, 24개의 귀와 입이 있다면 날아들어오는 공을 모두 받아치는 것처럼 아이들의 부름에 답할 수 있지 않을까?
내일도 교실에 가면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와 "선생님!"이라고 외칠텐데, 혹여나 내가 놓치는 "선생님"은 없는지 조금 더 신경을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