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교실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참 오랜만에 만난 우리. 오늘은 2학기 첫 등교 수업 날이다. 그동안 zoom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우리 반 아이들을 오랜만에 실물로 마주하니 약간 어색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아이들도 오래간만에 보는 내 얼굴이 낯선지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로 인사를 한다.
나만 좋은 건 아니겠지? 여름 방학을 보내고 온 6학년 아이들은 벌써 중학생 티가 난다. 그새 키도 많이 크고, 듬직하니 이제 나로 하여금 곧 이별이 다가오리라는 것을 느끼게끔 만든다.
1교시 : 자리 바꾸기, 대청소하기
"선생님. 다음 주 학교 가면 자리 바꾸나요?"
지난주 금요일 zoom 수업을 마치기 전 한 아이가 질문했다.
"그럼, 당연히 바꾸지. 우리 반 규칙이 한 달에 한 번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리 바꾸는 것이잖아."
그렇다. 우리 반은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학급 임원선거가 있든, 시험이 있든 매 월 등교 첫날에 자리를 바꾼다. 비록 오늘이 9월 6일이지만 9월 등교 첫날이기에 약속대로 자리 바꾸기부터 진행했다. 자리는 무조건 랜덤 뽑기로 결정된다. 좋든 싫든, 자신이 뽑은 번호 자리에 앉는 것이 우리 반이 함께 정한 규칙이다.
아이들 눈이 반짝거린다. 아침 문을 열었을 때 피부로 느껴졌던 무거운 공기는 어느덧 사라지고, 교실 안이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채워진 듯하다. (선생님은 이 느낌이 참 좋다.)
길동이는 바로 옆에 친한 친구가 있어 기분이 좋아 보이는 반면, 길순이는 맨 앞자리에 앉게 되어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앞에 앉을 때도 있고, 멀리 떨어져서 앉을 때도 있는 것이 초등학교 사회생활이니까!
2-4 교시 : (빡빡한 수업은 생략)
5-6 교시 : 마피아 게임
"오늘 수업, 여러분들이 집중했으니 약속대로 5교시는 놀이 시간을 주겠다" (잔업 마치고 병사들에게 개인정비 시간을 부여하는 중대장의 모습..?)
과학-수학-국어 폭탄을 연이어 맞아 번 아웃 직전인 아이들의 눈빛이 다시금 반짝거린다. 참으로 신기하다. '논다' 이 두 글자면 집 나갔던 입맛이 돌아오듯, 학교를 잠시나마 탈출했던 아이들 영혼도 돌아오니 말이다.
오늘 우리가 진행할 게임은 '마피아 게임'. 아마 다들 한 번쯤 들어보거나, 학창 시절 또는 대학생 mt 놀러 가서 해봤을 게임이다. 우리 반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임인데, 그 이유는 선생님을 포함한 우리 반 모두가 참여할 수 있어서라고. (사실 선생님은 게임의 ㄱ 자도 잘 모르는 사람이라 여러분들과 게임을 하기 위해서 늘 게임 방법도 찾아보고, 혼자 머릿속으로 게임 시물레이션도 돌려본다는 웃지 못할 비밀도 가지고 있다.)
사회자 1명, 시민 15명, 경찰 2명, 의사 2명, 마피아 5명 / 나를 포함한 25명의 역할이 부여되면 게임은 시작된다. "네가 마피아지!" , "순신이가 마피아야!" 의심과 추측, 억울함과 당황스러움, 그리고 그 모습을 깔깔거리며 지켜보는 여유와 재미까지, 날이 밝고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는 시간 속에서 수많은 감정들과 언어들이 자유롭게 날갯짓을 한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선생님이 아니라 그냥 여러분 옆에 있는 '보통의 누군가' 와 같은 기분이 든다.
특별한 역할을 부여받지 못한 평범한 시민이지만,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늘 마피아 후보 1순위에 오른다. 별다른 활약을 해보지 못하고, 반론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한 채 순식간에 게임에서 아웃된다. 처참히 죽게 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더욱 신나 깔깔 웃는다. 나도 웃는다. 이제 관전자로 참여하니까, 오히려 좋아.
재미있게 게임을 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다 보니 문득 생각에 잠긴다.
'오랜만에 학교 나와서 신났구나. 그래, 많이 답답했겠지. 실컷 떠들고 놀아라 얘들아. 그냥 우리 이렇게 평범하지만 행복한, 보통의 날들을 보내자.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졸업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