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보 아빠의 육아일기>
1. 아내와 함께 잠시 외출해야 할 일이 생겨서 불가피하게 반나절만 듬뿍이를 장모님께 맡기기로 한 날. 오랜만에 맞이하는 육아 탈출 때문일까?(지난번에는 부모님께 신세를 졌다 ㅠㅠ) 아침부터 피곤함도 잊은 채 눈이 번쩍 뜨인다. 처가댁에 들고 갈 준비물을 분주히 챙기고 한번 더 점검을 한다. 젖병, 분유통, 기저귀, 여분의 아기 옷, 비장의 무기 쪽쪽이, 가끔은 아빠보다 더 효과가 좋은 알록달록 아기 책까지. 아기 수건과 기저귀는 지난번보다 넉넉하게 챙긴다. 필요한 것보다 배는 더 많이 가져가야 장모님의 괜한 걱정을 덜어드릴 수 있다.
2. 차를 타고 처가댁으로 가는 길, 15분 남짓한 시간이 평소보다 더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분명 아침에 아기 준비물을 챙길 때까지만 해도 "오늘 하루 휴가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는데 막상 듬뿍이와 헤어지려고 하니 무언가 마음이 불편하다. 며칠 안 보는 것도 아닌데, 고작 2-3시간 나갔다 오는 것인데, 드라마에서 아이를 어쩔 수 없이 친정에 맡기고 눈물 훔치며 발걸음을 돌리는 주인공 못지않은 마음이다.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듬뿍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뒷좌석에서 엄마와 눈 맞춤을 하고 있다.
3. 울적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려는데, 육아를 탈출한다는 생각으로부터 오는 쾌감이 다시 나를 지배한다. 그래, 매일 맡기는 것도 아닌데 / 어머님께서 손주를 얼마나 보고 싶어 하시겠어 / 듬뿍이도 하루쯤은 외할머니와 있고 싶을 수도 있겠지 / 오늘 하루 오랜만에 아내와 데이트..? / 이 정도면 나의 육아 탈출은 무죄다.
4. 아이를 맡기고 처가댁을 나온다. 차에 시동을 걸고 신나는 음악을 튼다. 오랜만에 맛보는 육아 탈출! 이제 즐기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아들 생각이 난다. 지금쯤 뭐 하고 있으려나? 울고 있으려나? 외할머니 품에 안겨서 엉엉 울고 있는 아들의 얼굴이 그려진다. 아니야, 잘 있을 거야 혼잣말을 하며 울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으로 고쳐 그린다. 분명 천천히 다녀오리라 다짐했건만, 엑셀을 좀 더 세게 밟으면서.
5. 원래 계획은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아내와 예쁜 카페를 들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결국 테이크아웃으로 커피를 주문한다. 밥을 먹을 시간은 한참 지났고, 지금쯤이면 낮잠을 자고 있거나 잠투정을 하고 있겠지? 돌아오는 길, 우리의 대화 주제는 어김없이 아들 또 아들이다. 이정도면 듬뿍이가 엄마 아빠가 잘 때 뇌 구조를 은근슬쩍 바꾸어 놓는 장난을 친 것이 아닌가 싶다. 오로지 아들만 생각하고, 아들 걱정만 하게 말이다. (물론 우리 아들은 아직 아무것도 할 수 없다 ㅎ..ㅎ)
6. 처가댁에 도착! 눈물은 없지만 눈물겨운 아들과의 상봉이 이루어진다. 녀석, 잠시 나갔다 온 사이에 더 커진 것 같네.(누군가 이렇게 말했을 때 정말 이해가 안 되었는데, 이제 내가 그런 이해 불가의 사람이 된 것 같다.)
7. 오늘 하루, 오랜만에 육아 탈출을 했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오늘 깨닫고 말았다. 나를 보며 옹알옹알 거리는 나의 사랑스러운 아들을 보면서.
"아빠, 제게 빠진 이상 더 이상 탈출할 곳은 없어요. 저만이 아빠의 유일한 탈출구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