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일 교직 일기
1. 3월 2일은, 교사인 나에게 사실상 새해를 맞이하는 1월 1일과 같은 날이다. 새로운 일 년이 시작되는 날, 올 한 해 함께하게 될 아이들을 만나게 되는 날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 긴장도 되고 동시에 설레기도 한다.
2. 사실 지난밤 뜬눈으로 지새웠다. 아마 준비가 내가 생각하기에 완벽하게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3월 한 달은 2월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나는 올 2월을 이사와 육아라는 큰 이벤트 때문에 새 학년 준비를 작년보다 꼼꼼히 하지 못했던 것이다.
3. 그래도 첫 만남은 중요하기에, 아무런 준비 없이 첫 날을 보낼 수 없으므로 지난 며칠 자료조사와 자료 제작에 꽤나 큰 시간을 들였다. 그리고 오늘 새벽 100프로는 아니지만 90프로의 준비된 모습으로 출근길에 임했다.
0교시: 치열한 눈치싸움
아이들의 등교 시간은 08:40~09:00 , 나는 30분 더 일찍인 08:10 학교에 도착했다. 포스트잇을 꺼내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쭉 정리하고, 자가진단 요청 알림장을 발송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아직 등교 시간 전인데 밖에서 아이들 소리가 들린다. 새로운 선생님, 친구들이 너무 궁금해서일까? 아니면 그래도 조금이라도 일찍 가는 게 예의라고 부모님께 이야기 들어서일까? 우리 친구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교실에 입장한다.
교실에 앉고 나서부터는 치열한 눈치싸움이 벌어진다. 새로 들어오는 친구는 과연 어떤 친구일지, 선생님은 무서운 사람일까 아닐까, 우리 반에 내가 원래 알고 있던 친구는 있나? 24개의 레이더가 가동되기 시작한다.
1교시: 시업식 방송 / 자기소개서 작성
내가 초등학생일 때도, 그리고 선생님이 된 지금도 새 학기 첫날 빠지지 않는 행사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입학식과 시업식.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 할지 눈치를 보는 아이들에게 손수 왼쪽 가슴에 손을 얹는 모습을 보이니 다들 잘 따라 한다. 새로 오신 선생님 소개,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진다. 교장선생님께서 앞에 계신 선생님에게 일 년 동안 잘 부탁드린다는 의미로 박수를 치라고 말씀하신다. 덕분에 나는 박수세례를 받게 되는데.. 살짝 부끄러워서 시선을 아래로 두면서 나도 함께 박수를 친다.
방송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나의 시간이 시작된다. 아이들에 대한 정보가 1도 없으므로 우선 아이들을 파악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질문이 담긴 자기소개서 종이를 나누어 준다. 좋아하는 말, 싫어하는 것, 다니는 학원, 친한 친구, 듣고 싶은 말, 선생님에게 부탁하고 싶은 내용까지.. 물론 누구는 열심히 쓰고 누구는 대충 쓴다. 이 종이는 3월 내내 살펴보게 될 것이다. 아이 얼굴만 봐도 종이의 내용을 모두 떠올릴 수 있는 경지가 되었을 때 종이는 세상과 작별 인사를 하게 될 것이다.
2교시: 자기소개/ 선생님 소개 /Q&A
성실히 작성한 자기소개서는 선생님에게 넘어왔다. 이제 선생님 말고 옆에 앉은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는 시간! 나를 어떻게 소개할지 생각할 시간을 준다.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을 하는 것이 좋을 수도, 부끄러울 수도 있기에 분량과 형식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무엇이든 자유롭게, 단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줘야 한다.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들이 훨씬 더 자기소개를 잘한다. 유튜브의 순기능이랄까? 센스 있게 말을 잘하는 아이들이 몇몇 보인다. 물론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내가 확성기 모드를 발동하면 되니까.
아마 아이들이 제일 궁금해하는 것은 선생님 소개 아닐까? 선생님은 ppt를 제작하는 준비성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오~ 하는 소리에 맞춰 첫 장을 딱 넘긴다. 이제부터 쇼 타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때로는 재미있게, 때로는 진지하게, 나라는 사람, 내가 바라는 우리 반의 모습, 일 년 동안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가치들을 전달한다. 소개가 꽤나 재미있었는지, 아니면 부족했는지 Q&A 시간 폭풍 질문이 몰려온다.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
Q: 선생님 여자 친구 있으신가요?
A: 아니 없어, 대신 애기는 있어.
(.... 아..)
3교시: 모나리자 삼각 이름표 만들기
한 달 동안 아이들이 서로의 이름을 익히기 위해서, 그리고 담임 선생님뿐만 아니라 전담 선생님도 아이들의 이름을 익혀야 하기에 3교시에는 삼각 이름표를 제작한다. 그냥 만들면 또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모나지라 삼각 이름표 만들기 활동을 준비했다. 아내가 전날 밤을 꼬박 새워가면서 제작한 자료를 우리 반 학생들과 처음으로 시도해본다.
역시! 생각 이상으로 잘한다. 6학년은 6학년만의 칭찬법이 잘 먹히기에, "우와, 너희들 역시 6학년이라고 삼각 이름표 꾸미기도 잘하고 마무리 완성까지 진짜 잘한다."라고 맞춤형 칭찬을 해 준다. 아! 칭찬은 진심에서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이 귀신같이 거짓 칭찬을 구분해 낸다.
4교시: 교과서 챙기기(체크리스트 작성), 알림장 쓰기(키트 1, 안내장 3)
첫날 마지막 교시 4교시. 새 학년 새 학기 교과서를 챙긴다. 무려 14권, 까딱하면 실수로 빼먹을 수 있기에 체크리스트를 미리 만들어 놓았다. 하나하나 체크를 하고, 이름까지 모두 쓴 것을 확인하면 그제야 사물함에 교과서를 넣을 수 있다. 아이들에게 어려워 보이는 과제는 항상 그 단계를 세분화해야 한다. 쉬운 과업을 통과하고 그다음 과업을 수행하면서 점차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게 되는 프로세스를 마련하면 좋다.
교과서 챙기기까지 마친 뒤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오늘의 알림장을 작성한다.
교과서 배부/ 신속항원키트 배부, 사용 안내 / 안내장 제출 등의 내용을 적다 보니 어느새 번호가 6번까지 갔네. 다행히 첫날이라 "다 적어야 돼요?"라는 말은 안 나왔다 휴..
새 학년 새 학기 첫날 활동들과 나의 생각들을 정리해 보았다. 짧게 쓰려고 했는데 또 굉장히 근 길이 되어버렸다. 매일매일 교직 일기를 쓸 수 있을까? 일단 최대한 기록해보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