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개 Jun 15. 2023

하나의 죽음이 지나치게 괜찮은 이유

알고싶지 않았다구요

2019년 9월, 나는 고시원과 게스트하우스를 전전하다가 정식으로 독립을 하게 되었다.

독립을 해서 이사를 하는 당일 취업을 했고, 다니려던 학원도 상담을 마쳐서 결제만 남은 상황이었다. 일하면서 멍청하게 굴기는 했어도 적응기간만 지나면 괜찮을 터였다. 모든 것이 새로운 시작이었다. 모든 게 잘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아빠가 쓰러지기 전까지. 고지서를 처음으로 받아봤을 때쯤, 아빠는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감정이 크게 일렁이지는 않았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잃어서 얼마나 큰 상실감이 들었을까?'라는 막연한 걱정을 하면서 응급실에 찾아갔던 기억만 어렴풋이 남아있다.

중환자실에 오갈 때는 엄마가 부서질 것 같은 모습을 처음 봤고, 여러 사람들이 와서 눈물을 흘리거나 손익을 따지거나 콩가루를 날리고 갔다. 우리 집은 간병인을 고용할 형편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집을 빼고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뇌사판정을 받기 직전에 호흡을 찾은 아빠는 당장 오늘내일할 것 같으면서도 또다시 소생되어 생을 연명했다. 아빠 당신이 그렇게 싫어하던 삶이었다.


나는 간절하게 빌었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게 미안하기도 했었으나 간절하게 빌었다. 제발 빨리 떠나 달라고. 우리 다 죽는다고. 아빠는 그렇게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다. 나는 그런 아빠의 옆을 두어 달 정도 지켰고, 그 모든 시간들은 아주 느리게 흘러갔다. 나는 그 시간 동안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에게 지긋한 환멸을 느꼈다. 때로는 사건 하나가 사회와 인간의 민낯을 보여준다. 이게 인간이 가진 생존 본능이구나 싶어서 별생각도 들지 않았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물음만 이따금씩 뇌리를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생존 본능을 누르고 숭고해지는 사랑이, 사람이 되려 인간 같이 느껴지지 않게 되어버렸다. 존경스럽지만. 그때부터 나는 인간과 사람을 나눠서 부른다. 물론 나는 인간이다. 딱히 알고싶진 않았지만 알아버린 걸 없는 사건으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나는 복귀해야 했다.

사회로. 어쨌든 자살하지 않는 이상 높은 확률로 내일도 살아있을 것이고, 숨 쉬는 것에도 돈이 필요한 세상이니까. 아르바이트를 다시 시작했고, 코로나가 판을 치고 있는 중에도 모임에 나가서 웃었다. 나는 잃어버린 나를 찾아야 했다. 그래야 살아있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옆에서 안아 드려야 했던 엄마와 소중한 관계들에 울고 웃고 했던 나의 어느 부분을 외면하고, 나아가기로 했다.


그 모든 것들이 아득해져서 모두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쯤, 돌아온 나의 생일에 아빠가 돌아가셨다. 최악의 생일이었다. 정말이지 더 슬픈 건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는 나의 무미건조함에 있었다. 좋은 일 보다 나쁜 일이 더 많았던 기억들이 과거가 되어서 다행이라고. 그렇게 안도했다. 어영부영 장례가 끝났다. 1년이 채 안돼서 당신은 연명을 끝냈다. 조금은 편안하시려나 모르겠다. 회고할 것이 남지 않아서. 헛헛함도 남지 않아서.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빠의 죽음이 실감이 나면 외면했던 모습들을 찾을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외면하고 나아가서 조금 자랐다.

변한 줄도 몰랐지만 정말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띄엄띄엄 쓰던 다이어리를 매일 작은 글씨로 한 면을 다 채우고 있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었고, 글을 썼으며, 울고 웃었고, 재능을 인정받았다.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도 조금이지만 생겼다. 그렇게 나의 1년이 지나갔다. 코로나에 태풍까지 겹치면서 암울한 사회 분위기지만.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나는 나아가겠다. 이번엔 스스로를 채우는 방법을 찾아가면서. 또 다른 방법으로 타인과 만나고 이별하면서 말이다.


밑바닥을 봤지만 두번 그럴 수는 없다.

나는 아직도 아빠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했는지 지나치게 괜찮게 살아가고 있다. 하고 싶은대로 살다 갔으니 제법 호상이라는 생각도한다. 지나치게 건조한 내 감정이 그를 사랑하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는 기분을 느끼게한다. 문득 '일부러라도 무너져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젠 무너져있을 시간이 없다. 감당해야하는 것들과 해야하는 것들, 하고싶은 것들이 더 많아졌다.

다만 살아가다보면 필연적으로 다른 삶의 끝을 마주해야할 것이다. 그때의 나는 누군가 떠났다는 것만이 슬펐으면 좋겠다. 순수한 슬픔을 느껴본지 너무 오래됐을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언젠가 사랑이었던 것은 갈수록 추잡해지기도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