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해진 것들을 내 손으로 놔버리는 것
날씨는 지랄 맞아서 쨍쨍하더니 하필 집 밖을 나와서야 소나기가 왔다. 별 재수가 없으려니까. 씹을 거리가 없다고 친절히 욕할 거리를 쥐어주는 신에게 원하시는 대로 욕을 지껄여준다.
맞아 보고 나니 퍽 달갑다. 걱정하는 동료분들께 컨셉이라면서 한번 웃어주고 툭툭 털어낸다. 아무 일도 없이 일상이 흘러간다.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하나만 빼면 살만한 삶이다.
그 하나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서 도망친다. 기어코 마음을 줘버렸구나. 개탄한다. 소중해져 버린 것들을 바라보며 짐짓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인다. 소중한 것들은 영원하지 않다. 사라지면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는다. 당연하다. 도망치기엔 단단히 매여있는 게 기쁠 정도니 이미 늦었다. 순간에 충실하게 행동하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
슬픔이 두려워 소중한 것을 만들지 않는 게 더 멍청한 짓이라는 것도 안다. 아는데도 잘 안된다. 슬프다. 예정되어 있는 슬픔을 미리 조금씩 상환한다. 작은 슬픔은 씁쓸하니 그것대로 즐길만하다.
표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들어와 속이 울렁인다. 언젠가는 이걸 설렘이라고 했던 것도 같다. 휩쓸리기엔 지난날 동안 너무 많이 흔들렸다.
익숙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자꾸 익숙해진다. 익숙해진다고 더 지혜로워지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이렇게 살아진다. 어딘가가 일그러진 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