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가 아주 구질구질하게 느껴진다.
이럴 때면 종종 네 생각이 나는 건 나도 유감이라고 생각한다. 툭 하고 떨어진다. 그래, 나는 너를 사랑했던 것 같다.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 나는 너를 사랑했다. 머리카락은 긴 주제에 묶는 것이 서툴러 자꾸만 흘러내리는 네 잔머리를 좋아했다. 보고 싶다고 간밤에 들어오지도 못할 고시원을 찾아온 것도, 몰래 좁은 방에서 시시덕 거리다가 벽이 얇아 옆방에서 조용히 하라고 짜증을 들어버린 것도 그땐 낭만이었다. 너는 가끔 나를 보고 이유 없이 웃었다. 나는 이유 없는 것이 좋아서 왜냐고 묻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아도 됐던 것은 아니었는데. 우린 헤어졌고, 그쯤부터 난 자꾸 삐걱거린다.
다가오는 사람들이 어렵고, 먼저 다가가기엔 지친 그저 그런 인간이 되어버렸다. 머리는 뜨겁고 가슴은 차가운. 삶을 이어간다. 이후에 만난 사람들에게는 사랑하는 척은 해도 마음을 주는 것을 삼갔다. 그래서 마음이 기우는 것 같으면 얼른 발을 빼버리고는 했다. 그렇게 종종 나는 지나간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특별한 날에는 너를 생각하는 일상을 살았나 보다.
유감스럽게도 인간을 한번 이해했다는 감각을 느끼고 나면, 그 특정한 인간을 미워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이해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하지는 않았다. 미워할 수 없다고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너는 거기에 있거라. 내가 가시밭길을 헤쳐서라도 너를 찾아갈 테니.’ 누가 했던 말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이 사랑이었다면 지켰을 것이고, 꿈이었다면 이루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이던 원하는 것을 갈망하는 마음을 이것보다 잘 표현한 문장이 있을까? 적어도 내 생에는 본 적 없다.
가지고 싶다면 그게 뭐든 태도는 일관적일 필요가 있다. 특히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해야 한다. 상투적이지만 사실인 것들. 나는 아직도 반항기가 빠지지 않았나 자꾸 머리는 뜨겁고 가슴이 차갑다. 정신 차려야지. 툭툭 얼굴을 가볍게 친다. 오늘만 해도 원하는 것을 하나 가져보겠다고 산 하나를 넘었다. 돈도 쓰고, 체력도 썼다. 원하는 결과를 얻었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다시 도전해 볼 만한 것은 아니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