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사실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증거물들로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굴지는 않았을까?
오래 알고 지낸 친구라서,
매일 얼굴을 보는 동료라서,
가족이라서,
그 사람의 마음도 어느 정도는 읽힌다고 믿게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불쑥,
그 믿음이 얼마나 얄팍했는지 깨닫게 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가까움이 이해를 보장하는 건 아니라는 걸
조금 늦게 배우곤 한다.
타인은 절대적으로 타인이다.
철학자 레비나스는
타인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흐른다 해도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 말했다.
아무리 마음을 다해도,
바라보는 방향이 같아도,
타인의 세계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문이
하나쯤은 남아 있다는 이야기다.
사실 더 어릴 때는
누군가와 오래 지내면
그 사람의 마음도 어느 정도는
내 마음처럼 익숙해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내가 모르는 풍경이 있고,
내가 짐작할 수 없는 그림자가 있고,
나만 모르는 밝음이 있다는 걸
조금씩 인정하게 되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애써 맞추고, 이해하려고 애쓰던 나는
그 모르는 영역이 불편했다.
알아야 관계가 단단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가장 가까운 가족일지라도
그 마음 속에
내가 모르는 방이 하나쯤 있다고 인정해주는 건
거리둠이 아니라 예의일 수 있겠다 싶었다.
나를 키워왔던 부모님.
함께 자라왔던 형제들.
20살 때부터 함께 했던 남편.
내가 키워온 딸까지.
가장 가까울지라도 사람은 누구나
말하지 않은 사정이 있고,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있고,
기꺼이 보여주지 않는 풍경이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그사람만의 풍경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관계는 오히려 한결 부드러워진다.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마음보다,
모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마음이
훨씬 더 큰 품을 만든다.
내가 아닌 타인
서로의 세계 한가운데까지 들어갈 수는 없지만
문 앞에서 조용히 기다려줄 수는 있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