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를
마지막으로 듣던 때는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야자 시간에
좋아하는 가수가 라디오에 출연한다고 하면
친구들은 귀에 이어폰을 낀 채로
음악을 듣는 척하며 라디오를 듣기도 했다.
그런 친구의 모습이 신기해서,
따라서 라디오를 틀어보았다.
사실 듣다 보면 디제이가
말하는 것에 신경이 쏠려서
공부에 잘 집중이 안 되어
금세 그만두었다.
그 이후에는 운전하다가
블루투스 모드 전환할 때
몇 초간 라디오 디제이의
명랑하거나 다정한 목소리를
잠시 스쳐 지나가기만 했었다.
그 또한 자동으로 블루투스를 잡아주는
똑똑한 자동차로 바뀌고 나서는
그 다정한 목소리를 잠깐이라도
듣게 되는 일조차 없었다.
그렇게 잠깐 듣다가 말았던 것이
내 라디오에 대한 기억이 다다.
온 세상 사람들이
유튜브 보는 세상인데,
라디오 듣는 사람이 어딨어?
은연중에 사양 산업이라고
무시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내가 라디오를 듣게 되었던 건
아이를 키우면서부터였다.
21년도에 꼬마가 태어나고
그 당시는 다들 알다시피 코로나 시국이라서
누군가와의 교류나 대화, 만남이
강제로 삭제당하던 시절이었다.
고요한 집안에서
말 못 하는 아기랑 7시부터
짝꿍이 퇴근할 때까지 있었다.
분명히 둘이었는데, 혼자였다.
처음에는 조용한 집안이 편안했다가,
어느 날에는 고요한 그 적막이
차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기는 귀여웠지만
대신 그만큼 사람의 품을 많이 필요해했다.
충분한 대가가 필요한 귀여움이었다.
어쩔 때는 초보 엄마로서 동동 거리다가도
동동거리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시간을 보냈다.
아직 말을 못 하니
메아리 없는 내 목소리만
집안을 울렸다.
짝꿍은 일하고,
내 친구들도 모두 일을 했다.
엄마한테 전화를 하다가,
시어머님한테도 전화를 했다.
우리 엄마는 너무 멀리 있어서
올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있는
어머님한테 우리 집 방문을 재촉했다.
어머님 언제 오세요? 내일이요?
그냥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사람이 고팠다.
심지어 아기를 데리고
휴직했던 학교도 몇 번 찾아갔다(?).
쓸만한 패는 다 쓰고
더 이상 사람 만날 구실이 없어서,
듣기 시작했던 것이
라디오다.
짝꿍이 출근한 후
명랑한 김영철 님의 목소리부터 시작해서
김창완 아저씨, 박하선 님, 최화정 님까지.
꼬마가 낮잠을 자는 점심 즈음의 시간까지
라디오를 들었다.
사람들이 제각각 가지고 있는
사연들을 읽어주는 목소리가 따뜻했다.
오늘은 어땠어요, 하는
물어주는 게 반가웠다.
촌스럽기 짝이 없는 리듬의 광고는
꼬마 앞에서 나를 춤추게 했다.
종종 만나는 친구들에게
나 요즘 라디오 듣는다,라고 말하면
야, 요즘에도 라디오 듣는 사람이 있냐?라고
반응이 돌아오곤 했다.
그러다 내가 라디오 디제이의 말에
대답도 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친구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미안하지만, 나 라디오에 진심이야.
말을 잃은 친구들을 뒤로하고
나는 꽤 오랜 시간 라디오를 들었다.
라디오는 어쩌면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매체인가 봐.
별말이 아니어도,
날씨 너무 좋지 않아요?라고 건네는
그 흔하디흔한 말들에
누군가는 위로받는다.
나는 그 위로를 받아봐서 안다.
꼬마가 조금씩 말을 하고 나서는
아이와의 대화에 집중하기 위해서
더 이상 라디오를 듣지 못하고 있다.
범람하는 영상 매체 속에서도
아직 라디오가 버티고 있는 걸 보면
아직 외로운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싶다.
지금도
나는 외로우면 라디오를 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