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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라코알라 Mar 13. 2023

어른이 되기 싫은 아이

내가 그럴 수 있을까? 엄마처럼 살 수 있을까?


외출하고 집에 들어오니 대문에 노란 쪽지 하나가 붙어 있었습니다. 부재중이라 등기우편을 전달하지 못했으니 전화를 부탁한다는 집배원의 메모. 특별히 올 데가 없는데 생각하며 남편 아니면 제 것이려니 했는데 메모에는 큰아이의 이름이 적혀 었습니다.


우편받고는 뜯어보고 싶은 마음 간신히 참고 큰애의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길 기다렸습니다. 봉투 겉면 '주민등록증 발급 통지서'가 들어있다고 친절히 적혀 있었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아이가 제 손으로 열어보길 바랐니다. 아직 생일이 며칠 남았건만... 벌써 주민등록증 가질 나이가 되었다니... 감격스러운 맘에 혼자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제 나이 먹는  모르고, 딸아이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게 마냥 신기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반응과는 달리 딸애는 시크하게 '사진 찍으려면 살 빼야겠네'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우편물을 열어보지도 않은 채 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자려고 누웠는데 딸아이가 제 이불 속을 파고듭니다. 자신보다 늘 먼저 잠자리에 드는 엄마를 나무라지 않고 잘 자라고 인사를 건네던 아이가 오늘은 제 옆에 와서 눕네요. "엄마, 난 언제쯤 내 집을 가질 수 있을까? 침대, 세탁기, 냉장고, 소파, TV 이런 걸 다 갖춰 놓고 살 수 있을까? 엄마는 어떻게 그게 가능했어?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난 상상이 잘 안돼." 


아이의 현실적인 고민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제가 그만한 나이일 땐 무엇이든 꿈꿔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부는 하지 않으면서도 대학에 들어가서 4 대 4 미팅을 하는 상상을 했고, 가상의 내 방에는 작지만 꼭 필요한 것들이 아기자기 놓여있는 행복한 꾸었습니다. 시티팝이 흘러나오는 작은 방에 멋스러운 빨간색 키다리 스탠드니다. 명을 한껏 낮추고 그 아래서 밤늦도록 맥주를 마시리라 다짐했습니다. 그런 것을 상상할 때 냉장고에 맥주가 없을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고, 전기 요금 폭탄 따윈 전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상상 속에서는 모든 것이 얼마든지 가능했고, 손에 잡힐 듯 그려졌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기분 좋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딸아이는 그런 것이 그려지지 않는다니... 안쓰럽기도 하고 가엽기도 했습니다. 무엇이 내 아이를 꿈꾸지 못하게 한 걸까요? 딸애가 어른이 된다고 신나했던 조금  전의 행동이 너무 철딱서니 없느껴져 겸연쩍은 맘에 아이의 등만 연신 쓸어내립니다. "우리 딸, 그런 고민은 엄마가 할게. 뭐가 걱정이야? 엄마 아빠가 있는데..."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딸아이 실은 저보다 더 현실적인 고민을 하고 있었네요. 뭐든지 걱정 말라고, 때가 되면 다 이룰 수 있 엄마의 말이 아이에게 과연 위로가 될까 싶어 미안해집니다. 혹시 딸아이가 아무것도 꿈꿀 수 없게 된 게 제 탓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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